등록 : 2006.10.08 20:32
수정 : 2006.10.09 01:40
체첸참상 고발·러시아 비판해온 여기자 피살
청부살해 의혹 짙어…숨진 날도 폭로기사 준비
숨진 날도 폭로기사 준비
“위험은 내 일의 일상적 부분이 됐다. 러시아 언론인으로서의 일, 내 임무이기 때문에 멈출 수 없다.”
체첸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며 러시아 정부를 줄기차게 비판한 중견 여기자가 청부살해가 분명해 보이는 총격으로 숨져 파장이 일고 있다. 체첸전쟁 현장을 누벼온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48)에게 총을 겨눈 세력이 누구인지를 두고 러시아와 친러시아적인 체첸 정부에 의혹의 눈길도 쏠린다.
7일 오후 4시30분(현지시각)께 모스크바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머리에 총을 맞아 숨진 채 발견된 <노바야가제타>의 폴리트코프스카야는 독보적인 언론인이다. 그는 1년 전 영국 <비비시>(BBC)와의 인터뷰에서 앞날을 예견한듯 일상화된 위협을 얘기했다. 그러나 폴리트코프스카야는 “의사가 환자한테 건강을 주고 가수가 노래하는 것처럼, 언론인의 임무는 본대로 현실을 쓰는 것”이라며 굴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옛 소련 관영지 <이즈베스티야>에서 언론계에 입문한 폴리트코프스카야는 1999년부터는 대표적 비판언론인 <노바야가제타>를 통해 2차 체첸전쟁 참상을 고발하기 시작했다. 다른 매체들이 눈귀를 닫을 때 폴리트코프스카야는 폐허가 된 체첸 수도 그로즈니 등지의 현장취재로 참상을 폭로했다. 러시아군과 체첸 정부군의 고문과 집단처형, 납치, 돈을 받고 주검을 가족한테 넘기는 행태 등이 밖으로 전해졌다. <더러운 전쟁> 등 두 권의 책으로도 수십만명이 희생된 전쟁 실상을 알렸다. <푸틴의 러시아: 실패한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삶>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비판했다.
영국 <옵저버>는 폴리트코프스카야가 러시아군 잔학행위만 부각시켰다는 주장도 있지만, 체첸 반군의 잔혹한 전술을 비판하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이런 활동으로 국내외 여러 언론상을 받은 폴리트코프스카야는 2002년 10월 체첸 반군의 모스크바 극장 인질사태 때 중재를 위해 극장에 들어가기도 했다.
숨지던 날에도 폴리트코프스카야는 체첸 정부의 고문을 폭로하는 기사를 마무리하는 중이었다. 지난 4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폴리트코프스카야는 고문 증거를 확보했다며, 람잔 카디로프 체첸 총리한테 직접 고문당했다는 사람의 증언도 있다고 말했다.
폴리트코프스카야는 폭로기사에 대한 경찰 간부의 보복 위협 때문에 2001년 오스트리아로 피신하기도 했다. 2004년에는 비행기에서 마신 차 때문에 위독한 상태에 빠졌다. 그와 동료들은 암살 시도로 추정했다. 그는 또 러시아와 체첸 정부의 최고위급 인사들이 자신을 제거하겠다는 위협을 일삼았다고 말해 와, 이번 사건이 러시아와 체첸 정부 중 어느 쪽과 관련됐는지를 두고 추측이 무성하다. 사건 발생일이 푸틴 대통령 생일이고, 이틀 전이 카디로프 체첸 총리의 생일이라는 점에서 그의 희생이 두 지도자의 ‘생일 선물’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2000년 이후 러시아 언론인 12명이 청부살해로 의심되는 사건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보도했다. 지난 6월 <노바야가제타>의 지분 5%를 인수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이번 사건이 “야만적 범죄”라고 비난했다.
범인이 머리에 권총을 난사한 점이나 희생자 곁에 총을 버리고 간 것은 청부살해의 전형적 흔적이다. 체첸 반러시아 세력과의 화해를 주창하다 1998년 피살된 갈리나 스트로모이바 두마(하원) 의원 피살사건과 이번 사건은 닮았다. 당국은 방범카메라에 잡힌 모자를 눌러쓴 범인의 모습을 단서로 추적에 들어갔다고 밝혔고, 유리 차이카 검찰총장은 수사를 몸소 지휘하겠고 밝혔다. 하지만 정치적 동기가 담긴 다른 청부살해처럼 이번에도 범행세력의 꼬리잡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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