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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3.15 20:30 수정 : 2007.03.15 20:30

1940년 10월 파시스트 연합전선 구축을 논의하기 위해 프랑스-스페인 국경도시 앙데에서 만난 아돌프 히틀러(왼쪽)와 프랑코 총통. (그래픽 안 사진)

스페인 개혁 꼬이는 이유


〈한겨레〉는 독자에게 다양하고 깊이 있는 국제뉴스를 제공한다는 뜻에서, 프랑스의 국제관계 전문 월간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한국판 기사 가운데 일부를 골라 매달 한 차례씩 싣습니다. 프랑스의 권위지 〈르몽드〉의 자매지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세계 56나라에서 22가지 언어로 발행되며, 미국과 차별적인 시각에서 세계 지성의 흐름을 이끌고 있습니다.

사회당 정부는 대화를 강조하며 민주화 진전에 힘을 쏟아왔다. 그러나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의 비타협적 태도, 국민당의 개혁 방해로 이런 노력이 제대로 성과를 거두기는 힘들어 보인다.


사파테로 총리 집권 3년
과거청산 뛰어다녔지만
야당등 비협조로 물거품

사회당의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총리가 집권한 지 3년,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긴장감이 스페인을 휩쓸고 있다. 야당인 우파 국민당은 ‘위기의 스페인’을 외치면서 종말론적인 선동에 나섰다. 지난해 12월30일에는 바스크족 분리주의 단체 ‘바스크 조국과 자유’(ETA)가 마드리드 바라하스공항에 설치한 폭탄으로 2명이 숨졌다.

그 전만 해도 상황은 달랐다. 지난해 정부와 ‘바스크 조국과 자유’의 평화협상이 마침내 재개됐고, 부패 척결도 효과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경제성장률은 높고 실업률은 1979년 이래 최저치를 보여, 정치 상황은 안정돼야 하는 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최근의 현실은 반대로 가고 있다.

어디서부터 꼬였을까? 스페인의 민주주의는 프랑코의 독재(1939~1975년)를 지지하는 세력과 이에 대항한 세력 사이의 협정으로 탄생했다. 1978년 양대 세력의 정치적 보복행위를 막는다는 명분 아래 신민주헌법이 제정됐고, 그 안에서 다양한 정치세력들이 공존할 수 있었다. 대사면 합의로, 프랑코 독재체제가 처형한 정치범 수만명에 대해서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희생자 명예회복도 없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의 부정이 현재의 정치 위기의 불씨가 됐다.

바스크 분리주의 운동도 풀리지 않는 숙제다. 제2공화국(1931~1939년)이 바스크와 카탈루냐 지방에 준 자치권은 프랑코 장군의 내전 승리로 몰수당했다. ‘하나의 스페인’을 내걸고 고유언어 사용금지 등으로 이들의 민족문화를 압살하려던 프랑코의 노력은 오히려 저항적 민족주의를 키웠다. 프랑코 사후 두 지방은 다시 자치권을 얻었지만, 계속되는 군사쿠데타 위협 속에 자치권은 줄어들었다. 때문에 바스크족 지도자들은 스페인이 민주화됐다기보다 독재가 조금 완화됐을 뿐이라는 생각을 품게 됐다. 프랑코 시대에 결성된 ‘바스크 조국과 자유’의 활동이 그의 사후에도 활발했던 이유다.

사파테로 총리는 지난 30년간 스페인을 괴롭힌 이런 난제들을 풀려고 달려들었다. 지난해 3월 ‘바스크 조국과 자유’가 발표한 ‘영구 휴전’을 계기로 평화협상을 재개했고, 바스크와 카탈루냐의 자치권 강화를 추진했다. 독재 희생자 명예회복 법안을 만들었다. 이를 위해서는 프랑코 시절에 자행된 재판의 무효화와 집단묘지에 이름없이 묻힌 민주인사들의 주검 발굴이 요구되고 있다.

사회당 정부는 또 모든 국민에게 가톨릭만을 강요하는 조처를 폐지하고, 동성애자들의 동등한 권리를 인정했다. 사파테로 총리는 개혁 성공을 위해 노동사회당, 좌파연합, 카탈루냐공화좌파당, 카탈루냐연합당, 바스크당 등과 공조를 추구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우파의 분노를 만났다. 국민당의 태도를 보면, 스페인의 현 우파와 프랑코 체제가 얼마나 감성과 이데올로기로 끈끈하게 연결됐는지 알 수 있다. 이들은 프랑코 시대의 정치 범죄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사법이사회 등 몇몇 국가 기관에 포진한 보수파를 이용해 개혁을 막고 있다. 국민당은 2004년 총선에서 사회당이 승리하자 더 강경해졌고, 정부와 ‘바스크 조국과 자유’의 평화협상이 실패하기를 내심 기대하는 눈치다. 총리가 국가안보에 해가 된다는 선전을 해대는 국민당의 모습은 갈수록 극우파를 떠올리게 한다.

국민당은 1977년 선거에서 승리한 민주중도연합당, 프랑코 정권 참여인사들이 참여한 국민연합당이 통합해 만들었다. 통합의 장점은 온건보수 성향을 유지하면서 극우 경향을 억눌렀다는 데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 당내에 극우 바람이 다시 불었다. 가톨릭교회와 당의 가톨릭 계열 지도자들이 이를 부추겼다.

동시에 카탈루냐에 ‘역사적 국가성’을 인정해준 사파테로 총리의 조처는 카탈루냐 민족주의 정당 등으로부터 부족하다는 비판을 듣는다. 바스크의 자치권 강화를 위한 평화협상은 지난해 말 테러 이후 답보 상태다. 우파는 이런 기회를 이용하고 있다.

사회당 정부는 대화를 강조하며 민주화 진전에 힘을 쏟아왔다. 그러나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의 비타협적 태도, 국민당의 개혁 방해로 이런 노력이 제대로 성과를 거두기는 힘들어 보인다.

호세 마누엘 파자르도/스페인 작가·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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