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 나는 13년 동안의 초등학교와 김나지움생활을 마감하고, 마지막으로 가장 오래 다녔던 사랑하는 이 학교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정들었던 교실과 친구들, 선생님, 후배들…….훌쩍훌쩍!” 뭔가 기발한 한마디를 기대했던 고별사의 서두는 예상과는 달리 구태의연하면서 감상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눈물 닦는 시늉을 하던 학생회장 녀석이 갑자기 눈을 번쩍 뜨고 뒤통수를 탁 치더니, “아참! 나는 14년이었지.
여러분, 죄송합니다.
아직도 제가 수학실력이 좀 부족해서 낙제한 것은 깜박 빼고 계산했네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친애하는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 나는 14년의 초등학교와 김나지움생활을....... ” “푸 하하하…….” 일순간 장내는 웃음바다가 되었고, 뒤쪽에서는 “야, 멋있다, 멋있어!”, “계속해라 계속해!”라며 지지의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재학생들이 죽 둘러 모인 큰 강당에서 메가폰을 잡은 그는 넘치는 유머감각과 번득이는 재치로 그날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으며 우리 아들과 친구들의 영웅이 되었다. 작고 평범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여학생들에게는 하늘을 찌르는 인기와 좌중을 쥐락펴락하는 통솔력과 리더십에, 어떤 선생님과 격론을 해도 막힘없이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킬 수 있는 논리력과 언변을 두루 갖춘 아이였다고 한다. 그러나 학생회장으로서는 부족함이 없었던 그였지만, 사실 공부는 그리 신통치 않았다. 그나마 졸업성적이 평균 3점을 유지한 것도, 3점 이하면 학생회에서 제적되는 엄격한 교칙 때문에 엄청 노력한 결과라고 스스로 떠들고 다녔다고 한다. 정치 과목을 제외한 나머지 수업시간에는 졸기가 일쑤였고 작은 기회만 주어지면 담론을 일삼아 수업을 방해하곤 했던 이 녀석이 학교를 좋아했던 유일한 이유는 학생회 때문이었다. 수업태도와는 달리 학생회장으로서의 그는 이미 생경한 아마추어를 넘어선 프로수준이었다. 성적이 부실한 단점이 마치 제도권 교육에 도전하는 자신의 강한 의지라도 되는 듯, 공식석상에서 자랑스럽게 떠벌일 수 있는 것이 또 그의 뻔뻔하면서도 탁월한 재주이기도 했다. 공부벌레도 날라리도 아닌, 카리스마 넘치는 달변가였던 이 녀석의 꿈은 역시 유명한 정치인이 되는 것이다. 독일 수상 정도는 맡겨주면 얼마든지 소화해 낼 수 있다고 벌써부터 은근히 선거운동을 하는듯한 발언을 일삼았다고 한다. 꿈은 멀리 밤하늘의 달 옆에 걸어두고, 당장은 열심히 책상을 지켜야하는 소임에 충실한 것이 옳은지, 일찌감치 시행착오를 경험하며 꿈과 함께 커가는 것이 옳은지 솔직히 판단이 정확히 서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애완동물을 키우며 수의사를 꿈꾸고, 슈퍼마켓에서 아르바이트 하다가 CEO를 생각하고, 양로원에서 실습을 마치자 사회사업가가 되겠다는 독일 아이들을 보면 우리 보다는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성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한겨레 블로그 내가 만드는 미디어 세상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