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을 잘하는 한국인 아빠의 피를 물려받은 덕분인지 큰아이는 어릴 때부터 유독 수학이라면 지치지 않고 좋아했었다. 초등학교까지는 그래도 가끔 숙제를 봐주곤 했었는데 구구단을 외우지 않고 하는 곱셈도 신기했지만 특히 나눗셈으로 들어가면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끝까지 밑으로 내려쓰는 계산법을 가르쳐주지 않으니 나 같은 사람은 ‘어쩌란 말이냐!’가 입에서 자동적으로 튀어나온다. 그래도 신기한 것은 처음엔 간단한 문제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점점 속도가 나는 것 같더니 나중엔 종이에 써서 계산하는 것만큼이나 정확하고 빨랐다. 드디어 큰 아이의 수학숙제를 도와주지 못하게 된 단계에 이른 것은 곱셈과 나눗셈을 계산하다가 내가 연필과 종이를 찾아 헤매는 동안 아이가 정답을 먼저 술술 써내기 시작하면서였다. 아이는 점점 엄마에게 물어보는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엄마의 수학실력이 형편없다는 것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혼자서 해결하려 했다. 요즘은 둘째 녀석 때문에 독일 산수 문제를 6년 만에 다시 감회가 새롭게 보고 있다. 둘째는 큰아이에 비해서는 느린 편이라 내가 아직도 큰소리 좀 치고 있다. 그러나 머지않아 또 그날이 오고야 말리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답답해서 복장이 터질 지경이지만 함부로 구박하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10학년이 된 큰아이는 아직도 나눗셈을 가로로 계산한다. 빠르고 확실한 우리식 방법을 가르쳐줘도 자신의 계산법에 익숙해져서인지 그 방법이 더 어렵다고 툴툴거린다. 세 자리 수가 아니라 네 자리 수가 된다 하더라도 척척 풀어나가는 것을 보면 그 복잡한 머릿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보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고 그저 신기할 뿐이다. 물론 큰아이는 독일 학교에서 수학성적이 가장 좋은 학생 중의 한 명이기 때문에 독일 아이들의 평균 수준과는 거리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속도가 약간 차이 날 뿐이지 대부분의 독일 아이들의 계산법이기 때문에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기초를 다루는 초등학교 수학학습법을 열거했지만, 고학년에 올라가도 수준이 다를 뿐 방법은 같다. 처음부터 지름길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한참을 헤매고 둘러가게 내버려 두었다가 그 단원이 끝날 때 마지막에 가르쳐주는 것이 공식이다. 그것도 ‘이런 방법도 있다’ 정도로 가볍게. 시험도 마찬가지다. 100% 주관식 문제만 출제되는 시험답안지 채점방식은 정답보다는 풀이하는 과정을 더 중시한다. 10점짜리 문제일 경우 과정은 모두 맞았는데 정답이 틀렸을 경우 2점 정도가 감점되지만 정답은 맞았으나 과정이 틀렸다면 8점을 잃게 된다. 독일 학교의 수학수업을 보면서 여기 아이들이 수학을 못한다고는 하지만 창의적인 분야의 수학에 들어간다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과연 대학교 수학과에 다니는 아이들을 비교해도 그럴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처음부터 질러가는 길을 익혀서 공부한 사람과 느리기는 하지만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자신의 방법을 찾아간 사람은 수학을 학문으로 연구하게 되면 무엇인가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보니 한국 중고등학생들의 수학실력이 세계 어디다 내놓아도 우수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대학수학은 다른 나라에 비해 어떤지 궁금해진다. 수학이라면 예나 지금이나 워낙 문외한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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