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배 긍정성 부각 법안 통과
교과서도 ‘만행 부분’ 한 줄도 없어
알제리 국민 프랑스 학계 맹비난 프랑스가 식민지 알제리에서 저지른 대학살 사건 60주년을 맞아 논란에 휩싸였다. 1945년 5월8일 알제리를 지배하고 있던 프랑스 군인들은 알제리인들의 연합군 승전 축하 행사가 독립 시위로 발전하자, 수많은 알제리인들을 학살했다. 프랑스 쪽은 당시 사망자가 1만5000∼2만명이라고 주장하지만, 알제리 당국은 4만5000여명이 희생됐다고 공식 집계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이에 대해 단 한번도 사과를 하지 않다가 올해 처음으로 정부 고위 인사가 사과의 뜻을 밝혔으나, 프랑스 의회에선 반대로 식민지배의 긍정성을 부각시키는 법안이 통과됐다. 이 때문에 나라 안팎에서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둘러싼 역사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프랑스 사과 요구하는 알제리=위베르 콜랭 드 베르디에르 알제리 주재 프랑스 대사는 최근 이 학살 사건이 발생한 현장을 방문해 “용납할 수 없는 비극”이라며 조의를 표했다. 이 사건과 관련한 프랑스 쪽의 첫 사과였지만, 이는 오히려 프랑스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불을 질렀다. 압델 아지즈 부테플리카 알제리 대통령은 이 사건을 ‘나치의 가스실 대학살’에 비유하면서 “프랑스 정부가 프랑스의 명예와 이익을 위해 유럽 전선에서 싸운 뒤 돌아온 알제리 전사를 환호하는 사람들에게도 총부리를 겨누었다는 게 이 대학살의 패러독스”라고 꼬집었다. 그는 “알제리는 프랑스가 이 사과 이상의 확실한 태도를 보여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알제리 ‘1945년5월재단’ 회장인 모하메드 엘 카르소는 “프랑스와 국제 사회는 프랑스가 1945년 5월에 인종대학살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며 “독일은 프랑스의 용서를 구했는데 왜 프랑스는 알제리에 용서를 구하지 않느냐”며 호통쳤다. 이달 초 수천명의 알제리인들은 알제리와 프랑스 파리에서 시위를 벌이며 “시라크는 아프리카의 희망을 죽이고 있다”며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역사학자들 “식민역사 잘 가르쳐라”=프랑스 의회는 지난 2월 ‘학교 프로그램은 외국, 그 중에서도 북아프리카에서 프랑스가 긍정적인 구실을 했음을 인정하고, 이 지역에서 프랑스군에 협력한 알제리 등 아프리카 전사들의 탁월한 업적을 인정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프랑스 역사학자 수백명은 탄원서를 내 이것은 “프랑스가 저지른 범죄, 특히 대학살과 노예제, 인종주의에 대해 공식적으로 거짓말을 하라는 것”이라며 이 법안을 폐기하라고 요구했다. 파리대학의 프랑스 식민지배 전공 역사학자인 클로드 리오쥐는 “(이 법안에는) 식민지배의 고유 속성인 인종주의와 범죄를 숨기려는 위험한 면이 있다”며 “이런 종류의 부정 행위는 극단적인 민족주의를 부활시키려는 자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알제리(1830~1962년) 뿐 아니라 카메룬과 세네갈, 마다가스카르 등 다른 아프리카 식민지를 혹독하게 지배했지만, 현재 프랑스 교과서들은 이를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 알제리인 대학살은 물론, 프랑스 군대가 1947년 마다카스카르에서 발생한 폭동을 진압한다는 명분 아래 수천명을 학살한 사건도 역사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다. 알제리 전문학자인 뱅자맹 스토라는 “프랑스는 단 한번도 식민지배 역사를 정직하게 다룬 적이 없다”며 “이것이 식민주의 연구가 모든 대학에 개설돼 있는 앵글로-색슨 국가와의 차이이자 우리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강김아리 기자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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