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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유럽헌법 부결 파장과 헌법의 운명 |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프랑스의 국민투표 결과와 상관없이 다른 회원국의 비준 절차는 정상적으로 진행돼야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해 왔다.
27일 최종 비준한 독일까지 이미 9개국 2억2천200만명이 유럽헌법을 승인한 마당에 EU 시민의 절반 가까운 사람들의 목소리가 무시될 수 없다는 게 집행위의 지적이다.
한 나라라도 거부할 경우 후속 비준 절차가 필요없다는 주장이 일부 대두되고는있다.
하지만 모든 회원국에서 비준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데 기본 원칙이어서 이변이 없는 한 비준 표결은 계속 진행될 전망이다.
영국과 아일랜드도 비준 계속 진행 방침을 이미 밝혔었고 잭 스트로 영국 내무장관은 29일 프랑스의 부결 직후 영국은 계획대로 비준 절차를 밟아 나갈 것이라고밝혔다.
그러나 이날 프랑스의 큰 표차 부결로 유럽의 정치 통합에 대한 회의감이 증폭되고 6월 1일 네덜란드 투표 등 향후 타국의 비준 과정에서 부결 도미노 현상이 발생할 우려가 높다.
때문에 유럽은 네덜란드를 주시하겠지만 이미 여론조사에서 부결이 예고된 이 나라에서도 역시 부결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엄청난 후폭풍이 몰아치게 되고 6월 16~17일로 예정된 정례 유럽이사회(정상회의)에서 유럽 통합의 속도조절을 포함한 향후 대책이 심도있게 다뤄질것이다.
헌법안 부속선언은 헌법이 서명으로부터 2년이 지난 뒤 1개 또는 몇몇 국가가비준에 어려움을 겪을 때 정상회의가 이 문제를 논의하자고 명시했다.
현 유럽헌법안의 운명은 부결시키는 나라의 수가 어느 정도가 되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질 전망이다.
부결국이 소수에 그칠 경우 상황에 따라서는 해당 국가의 재투표도 예상 가능한시나리오다.
아니면 민감한 내용이 삭감된 채 헌법안이 채택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를 포함한 주축들에서 부결이 이어질 경우 헌법안은 구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어떤 경우라도 유럽통합에 관한 기존의 니스 조약이 계속 적용돼 일단 EU의 제도적 위기는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유럽 통합 주축국인 프랑스 등의 헌법 부결은 유럽 통합에 관한 심각한회의론을 만연시키고 합중국을 목표로 한 정치통합 노력을 크게 후퇴시킬 것이 뻔하다.
EU는 프랑스 유권자들로부터 표출된 △ 초자유적인 시장 구조 출현과 서유럽식복지 모델의 상실 △ 동유럽 저가 노동력의 서유럽 유입에 따른 실업 우려 △ EU 중앙 권력 비대화에 따른 개별국가 주권및 정체성 상실 △ 터키의 추가 가입 등 통합경계의 목소리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서부 발칸국들과 터키, 우크라이나로 뻗어가려는 EU의 확장 야망도 당분간 불투명해질 수도 있다.
실제로 프랑스 여론의 추이를 보면 지난해 5월 중.동부 유럽 10개국이 대거 EU에 신규 가입한 이래 일자리 상실 등 자국의 손실을 이유로 거대 유럽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다.
경제적으로는 유로화의 약세가 초래되고 유로화 사용국(유로권) 확대에도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미국과 신흥 경제국들에 밀리고 있는 유럽 경제가 통합 시너지없이 스태그플레이션에 직면할 것이란 경고도 나오고 있다.
프랑스 국내적으로는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위신이 손상되고 내각 개편과 정계역학구도 변화 등 후폭풍이 예고돼 있다.
이미 여론 지지도가 바닥인 장-피에르 라파랭 총리는 투표 결과와 상관없이 경질될 것으로 예견돼 왔으며 후임으로는 도미니크 드 빌팽 내무장관 등 시라크 대통령의 측근과 집권 대중운동연합(UMP)의 니콜라 사르코지 총재 등이 거론된다.
시라크 대통령도 이미 행정부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 줄 것이라며 내각 개편을시사한데 이어 29일 부결 시인 뒤 거듭 내각 개편 의사를 표명했다.
또 찬반 진영으로 분열된 사회당이 심한 후유증을 겪을 전망이지만 민족주의 성향의 극우정당, 극좌 정당 등의 정치적 입지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시라크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 약화에 따라 2007년 대권을 둘러싼 UMP내 유력 인사들의 대권 경쟁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파리/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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