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12.08 11:55
수정 : 2009.12.08 11:55
처음 스웨덴에 도착해서 학교 오리엔테이션을 받을 때 성인들을 대사으로 소방교육 및 안전교육을 '너무 심각하게' 하는 스웨덴 문화에 너무 놀란 적이 있다. 학교에서는 신입생을 모아두고 그룹별로 앉혀, 학교 곳곳의 비상구와 비상시 도피할 대기실, 또 불이 났을 경우 비상구를 통해 밖으로 대피하여 정해진 소집장소에 모이되, 절대로 집에 가면 안된다는 이야기 등등 구구절절이 '불이 났을 경우'를 되풀이하며 소방교육을 시켰다.
사실 소방교육을 거의 처음 받아 본 나는 '왜 나지도 않을 불' 이야기를 20분 동안이나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모두 성인인데 불나면 알아서 초록색 비상구를 따라 나가는 것은 상식이 아닌가? 정 알려주고 싶으면 비상구 위치정도만 알려주면 될 것을... 나는 학교가 너무 심각하게 소방교육을 시키기에 '예의상' 잘 모르겠는 부분에 쓰윽 손을 들고 질문도 하나 해 주었다.
"불이 났을 때 밖으로 대피해서 왜 집에 가면 안되는거죠?" 그러자 소방관도 아닌 학교 담당자가 아주 자세히 대답해 주었다. "모두 다 무사히 대피했는지 반드시 체크를 해야 하기 때문이죠. 모두 대피한 것을 빠르게 확인되면, 소방관이 목숨을 걸고 불속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되잖아요."
스웨덴의 소방관념은 매우 철저하다. 호텔에서 일하는 친구를 보면, 매 게스트가 올 때마다 호텔에 머무는 게스트의 목록을 새로 프린트해서 소방전안에 넣어 둔다. 혹시라도 불이나면 누가 어디에 머무는지 정확히 알아야하기 때문이다. 소방당국에서도 이를 매우 엄격히 관리하기 때문에 불시에 검사나왔을 때 실제 거주하고 있는 게스트와 리스트상의 게스트 수, 이름이 조금이라도 다를 경우 호텔측에 상당한 타격이 온다고 한다.
학교나 직장, 호텔 등 사람이 많이 모인 곳 뿐 아니라 개인들의 소방관념도 대단하다. 집집마다 사비로 분말 소화기는 꼭 구비해 두는가 하면, 아파트 계단이나 입구에는 자전거도 들여다 놓지 않는다. 친구가 집에 자전거를 타고 놀러왔기에 아파트 입구 우편함아래에 묶어두라니까 절대 안된다면서 '만약 불이났을 경우' 혹은 '누군가가 아파서 실려나갈 경우'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며 정해진 장소까지 걸어나가서 묶어 두었다.
스웨덴의 철저한 소방관념에도 놀랐지만, 내가 더 놀란것은 안전관념이 거의 없는 나의 모습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초, 중,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다니며 소방교육을 받아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학교에서 비상구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 준 적도 없고, 그저 일 년에 한 번 정도 소방관아저씨가 소방차를 끌고와 운동장에서 물을 쏘아주면 매우 좋아했던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 학생 때는 그렇다고 쳐도, 내 스스로가 학교 선생님이 되는 교육을 받았지만, 아이들을 책임지는 선생님으로써도 소방교육이나 안전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다. 불이나면 학생들을 어디로 대피시켜야 하는 지, 짜임새 있고 효율적으로 빨리 대피시키는 법도 몰랐다.
더 문제인 것은 내가 선생으로써 그런 유사시 문제를 알아야 한다는 자각조차 없었다는 점이다. (사실 난 시간을 할애하여 안전교육을 시키는 스웨덴을 보고 '시간 낭비'하고 있다며 은근 답답해 하기 까지 했다!) 작년에 한국에 방문했던 독일 학자 울리히 벡 교수가 제창한 '위험사회'라는 개념을 설명하는데 우리나라와 꼭 맞아 떨어지는 것이 기억난다.
'위험사회'의 개념은 산업발전과 함께 위험요소도 증가하고 불확실한 사안에 대한 불안도 늘어나는 것이 불가피 하다는 것이였는데, 그 불안을 이겨내기 위해 현대인들은 각종 보험도 들어놓는다고 했다. 울리히벡 교수는 이에 대한 해결로 결국 '국가'가 그 안전장치마련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했다. 당시 그가 말했는지, 그를 취재했던 한국기자가 덧 붙였던 것인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에 대한 기사 속에 한국은 '위험 사회'보다 한 단계 위인 '위험불감증'의 나라라고 말했던 것이다. (울리히 벡 교수에 대한 정보 : 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txc&where=people&ie=utf8&query=%EC%9A%B8%EB%A6%AC%ED%9E%88%20%EB%B2%A1&os=217361)
안전교육, 소방교육, 나아가 휴전중인 우리나라가 유사시 대비교육에 무관심한 것이 단순히 경제적으로 성장하느라 바빴던 우리나라가 안전교육에 신경쓸 틈이 없었던 것 때문인지, 아니면 마냥 긍정적인 민족성을 가지고 있어서 인지는 잘 모르겠다. 같은 유럽안에서도 게르만족 국가들보다 이탈리아나 스페인, 프랑스와 같은 라틴문화 국가에서는 안전교육에 무관심한 편이니 말이다. 긍정적인 것은 좋지만 일년에 몇 차례씩 벌어지는 대형 화재사고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나라도 학교 및 직장에 시간을 할애하여 심각한 소방교육을 연습시켜야 하지 않을까 싶다. 불조심 포스터만으로는 절대 충분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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