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5.31 20:35
수정 : 2011.05.31 22:26
‘메르켈 실험’에 세계 주목…원전없는 경제번영 시험대
대체 수단으로 풍력 꼽아…원전사수파 “무모한 도박”
독일 정부가 2022년까지 모든 원자력발전소를 폐쇄하겠다고 발표하자, 주요 산업국가로는 처음으로 진행하는 이 실험이 모범이 될지 또는 실패로 끝날지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지난 30일 원전들을 폐쇄한다는 옛 사회민주당 정권의 약속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하면서 “이것은 에너지 공급 혁명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 “우리는 재생에너지 시대로의 전환을 이뤄내는 첫 주요 산업국가가 될 것”이라며, 이번 발표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한 반응을 뛰어넘는 구상임을 강조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전했다.
유럽에서 인구 규모와 경제력이 가장 큰 독일의 원자력 폐기 선언은 세계적 파급효과를 낳을 수 있는 조처다. 원자력 없이도 경제가 번영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험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독일은 이미 태양광과 풍력 발전 등에서 앞선 기술력을 보여왔다. 독일 정부는 전기 생산의 23%를 담당하는 원자력을 대체할 수단으로 풍력을 꼽는다. 북해 해상의 풍력발전단지들이 화석에너지나 원자력을 대신할 수 있다는 말로, 남부 대도시 뮌헨은 지난해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에너지 수요를 전부 해결한다는 야심찬 계획까지 내놨다. 에너지 소비효율이 좋아져 앞으로 10년 동안 수요가 10%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원전을 포기하더라도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게 독일 정부의 계산이다.
원전이 없는 주변국들이나 반핵 세력은 이번 발표를 반기고 있다. 독일의 이웃나라로 원전을 보유하지 않은 오스트리아의 니콜라우스 베를라코비치 환경장관은 “독일의 결정은 원자력 폐기가 가능하고 바람직하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독일의 방침은 또 스위스 정부가 2034년까지 원전을 완전히 폐쇄한다고 밝힌 것과 함께 원전 퇴출 요구에 큰 힘을 보태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유럽연합의 27개 회원국 중 14개국이 원전 보유국이다.
‘원전 사수파’는 유럽의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이 원전 사고에 놀라 도박을 벌이고 있다는 비난을 내놓고 있다. 독일 일간 <디벨트>는 “원자력 포기는 독일을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들 중 하나로 만든 경제모델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값싼 에너지인 원자력을 포기하면 3인 가구 기준으로 연간 전기료가 225유로(약 35만원) 올라간다는 추정도 나왔다. 전기 생산의 78.8%를 원자력에 의존하는 프랑스 정부는 31일 비용 문제를 들며 원전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화석연료가 원자력의 빈자리를 채울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다. 현재 수력과 풍력은 독일 발전량의 10%를 맡는데, 재생에너지 생산이 도약하지 못하면 석탄을 더 써야 한다. 안드레아스 칼그렌 스웨덴 환경장관은 이런 문제를 거론하며 “독일은 매우 불균형한 에너지 정책을 택했다”고 말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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