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0.27 21:02
수정 : 2011.10.27 21:02
유럽 부채위기 해법 합의
그리스 채권 50% 삭감 등 타개책 합의했으나
유럽금융안정 기금 확충 위해 중국 도움 절실
개도국 지원하던 유럽, 구걸하는 처지로 반전
10시간 동안 밤샘 협상을 마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27일 짧은 기자회견을 한 뒤 첫 일정으로 후진타오 중국 주석과의 전화를 잡았다. 이날 타결된 유럽 부채위기 해결책에 필요한 자금 지원을 요청하기 위한 것이다. 부채위기 해소의 소방수 역할을 부여받은 클라우스 레글링 유럽금융안정화기구(EFSF) 총재도 28일 중국으로 향한다. 베이징 당국이 이 기구의 기금 확충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논의하기 위한 것이다.
유럽 부채위기 해결을 위한 ‘그랜드 플랜’은 타결됐으나, 유럽이 가야할 길은 이제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사르코지 등의 행보는 유럽이 처한 궁색한 상황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개발도상국에 차관 등 자금을 지원하던 유럽이 이제 중국 등 신흥국에 자금을 ‘구걸’해야 하는 처지로 반전된 것이다.
이날 합의가 2년간 지속돼온 유럽 부채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지난 7월 이후 계속된 진통 끝에 타결된 ‘그랜드 플랜’임에도 시장이 열광적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은 이를 잘 드러낸다. 며칠 전부터 1.39달러 내외에서 1.4달러를 넘보던 유로화는 이날 타결 뒤 아시아 장에서 1.4달러선을 넘나드는 반응을 보이다 유럽 장이 개장되자 1.4달러를 밑돌기도 했다.
이날 타결된 합의는 ‘세 갈래 합의’라고 불리는 것처럼, 크게 세가지 뼈대로 구성돼있다.
첫째, 그리스 채권에 투자한 유럽 은행 등 민간투자자들이 투자 원금의 50% 손실을 떠안는다는 것이다. 즉, 헤어컷이라고 불리는 채권원금 상각을 민간투자자들이 자발적 형식으로 떠안게 됐다. 막판까지 민간투자자들은 이 손실 부담율이 과다하다고 저항했으나, 독일은 60%까지 내세우며 밀어붙였다. 이런 합의로 그리스는 1천억유로나 채무를 삭감받게 됐다. 이 삭감이 없을 경우, 그리스는 오는 2020년까지 채무가 국내총생산 대비 180%까지 치솟을 것으로 우려됐으나, 이번 결정으로 120%로 줄이게 됐다.
둘째, 지난 7월 합의된 유럽판 국제통화기금인 유럽금융안정화기구의 기금 4400억유로를 다시 1조유로로 증액키로 했다. 당초 2조유로까지 증액이 논의된 사안이다. 이 기금은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재정상황이 어려운 유로존 국가들의 채권 발행 때 지급보증에 활용된다. 채권 발행국의 금리도 낮추고, 투자자를 유인하기 위한 것이다.
셋째, 그리스 투자 손실로 부실화된 유럽 은행들의 자본 확충이다. 그리스로부터 받아야할 채무 원금의 절반을 깎아준 유럽 은행들이 부실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1060억유로가 투입된다. 그래서 내년 6월 말까지 은행들은 의무자기자본비율 9%를 충족하도록 했다.
결국 남은 것은 돈 문제이다. 지금까지 이런 합의에 진통을 겪은 것은 누가 이런 돈을 낼 것인가 하는 논란 때문이었다. 논의를 주도한 독일은 민간투자자들이 부담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랑스는 그리스 투자에 가장 많이 물린 자국 은행들을 의식해 더 많은 공적 자금 투입을 주장했다. 독일 쪽이 돈을 더 내라는 것이었다 .
어쨌든 타결은 됐으나, 유럽안정화기구 기금 확충을 위해 중국 쪽의 기여를 끌어들이는 문제나 이 기금 활용의 방안 등 구체안은 여전히 논란거리로 남아있다. 유럽 부채위기는 이제부터 본격적인 수술대에 오른 것 뿐인 셈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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