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루스코니 사임 발표
증시 폭락…리더십 공백·경제 불확실성 반영
거국내각이냐 조기총선이냐…경제해법 ‘난망’
실비오 베를루스코니(75) 이탈리아 총리가 8일 사퇴 의사를 밝혔음에도 국채수익률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이탈리아 경제가 요동치고 있다.
이탈리아의 10년 만기 국채수익률은 9일 한때 7.48%까지 치솟으며 역대 최고기록을 세웠다. 국채금리 급등의 직격탄을 맞은 이탈리아 증시도 전날보다 4% 넘게 폭락했다. 이는 향후 이탈리아의 정치의 리더십 공백과 불확실성에 대한 시장의 극심한 불안감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채수익률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해당 국채의 신용이 낮고 위험이 크다는 뜻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국채 수익률 7%선을 국가가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질 수 있는 경계선으로 여긴다. 자금조달 비용이 급증해, 정부의 장기적인 재정 운용이 지속불가능한 상태에 빠지기 때문이다.
유로존 3위의 경제대국인 이탈리아의 국가부채 총액은 1조9000억유로(약 2930조원)에 이른다. 이런 천문학적 빚더미는 유럽연합이나 국제통화기금 등의 구제금융으로 수습하기엔 너무 규모가 크다. 높은 국채수익률 부담도 구제금융이나 부채상환 연장의 위험성을 키우고 있다.
시장은 이탈리아 국채수익률의 고공행진이 얼마나 지속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제 컨설팅업체 ‘아이에이치에스(IHS) 글로벌 인사이트’의 위험분석가인 잰 랜돌프는 <에이피>(AP) 통신에 “국채수익률 급등세가 전반적으로 확산되기까진 시간이 걸릴 것”이라면서도 “(10년 만기 국채수익률) 7%가 낮아지지 않으면 모두가 위험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사임이 사태 해결은커녕 불확실성을 부추기고 있을 뿐 아니라, 어떤 정부가 새로 들어서더라도 당장 상황이 나아지진 않을 것이란 점이다.
앞서 8일 베를루스코니는 사실상 의회의 신임투표였던 재정지출 승인안 표결에서 과반수 확보에 실패한 뒤 사의를 표명했다. 총리 또는 내각이 사퇴할 경우, 대통령은 새 총리를 지명해 의회 과반 구성을 요구하거나 조기총선을 실시하게 된다. 조르조 나폴리타노 대통령은 “수정 예산안이 의회를 통과하는 대로 모든 정파와 협의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향후 이탈리아 정치권의 시나리오는 우파연정의 확대, 거국내각 구성, 의회 해산과 조기총선 등 3가지 정도로 내다볼 수 있지만 분명한 건 아무것도 없다.
중도좌파 야당인 민주당은 모든 정파의 의원들이 참여하는 과도정부 구성을 거듭 제안했다. 반면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자유국민당은 거국내각 구성보다 조기 총선을 선호한다. “모든 정파가 참여하는 거국내각은 2008년 총선 결과를 무시하는 비민주적 쿠데타”라는 논리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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