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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학문을 사게 된 영국 대학 풍경 |
대학의 자유로운 등록금 인상을 허용한 첫 해인 올해 영국에서 대학지원자수가 8.7%나 급감했다. 또 학생들이 의학 등 ‘돈이 되는’ 과에만 몰리고 예술이나 인문학과는 외면하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 등은 30일(현지시각) 대학입학서비스 기구인 유카스(Ucas)가 발표한 통계를 인용해 2012년도 가을학기 입학 신청자수가 급락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58만4000여명에서 올해 54만여명으로 줄어든 것으로, 통계가 집계된 이후 가장 큰 하락폭이다. 20009년 이후 크게 증가세를 보이던 지원자수 추세도 완전히 꺾였다.
하락세의 주원인은 급등한 등록금이다. 새 수업료 시스템이 처음 적용된 올해 연간 등록금 상한선은 3275파운드(580만원)에서 9000파운드(1600만원)로 올랐고, 평균수업료도 8000파운드(1420만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등록금 동이 거의 없는 스코틀랜드와 비교해보면 등록금 탓이라는 게 더 분명해진다. 스코틀랜드의 대학지원자수는 올해 1.1% 하락에 그쳤다. 영국 교육전문가들은 “(오른 등록금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이 이유가 됐을 것”이라면서도 “그것보다는 (대학교육의) 투자 대비 수익성이 떨어졌다는 인식이 퍼진 것이 가장 컸다”고 <파이낸셜타임스>에 말했다.
이런 인식은 영역별 지원자 수를 보면 알 수 있다. 졸업 뒤 취업하기가 비교적 수월한, 의학을 포함한 물리학 계열의 지원자 수는 지난해에 비해 2.5%만 줄어들었지만, 예술·인문학·사회과학 계열은 14%나 급감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과학·의학·기술을 전문으로 하는 임페리얼 칼리지의 입학지원자수는 거의 변동이 없었지만, 런던의 크레이티브 아츠 대학은 지원자수가 30%나 줄어들었다. 명문대인 캠브리지대의 지원자수는 2% 줄어든 수준에서 크게 변동이 없었다.
영국 교원협회의 마틴 프리드먼은 <인디펜던트>에 “높은 잠재력을 가진 학생들이 (등록금 때문에) 지원을 포기해 결국 경력에 오점을 남길 수도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면서 “지원자 급감으로 재정의 대부분을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는 대학의 어려움도 가중 될 것”으로 내다봤다.
영국 학생들은 아예 눈을 바깥으로 돌리고 있다.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대학은 29일 지원 영국학생이 600여명이나 지원해 지난해에 비해 152%나 늘어났다고 밝혔다. 이 대학의 등록금은 1년에 1500파운드(270만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영국 대학부 장관 데이비드 윌레츠는 “지원자수가 조금 줄었지만 여전히 예년처럼 경쟁은 치열할 것”이라고 말해, 등록금 인상에 따른 여파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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