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종교적 혐오 금지법’ 상원 통과 불투명
무슬림의 공격이 무슬림을 곤경에 빠뜨리고 있다? 영국에서 무슬림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법안이 잇단 테러로 된서리를 맞고 있다. 지난달 11일 영국 하원을 통과한 ‘종교적 혐오 금지법안’은 상원을 무사히 통과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런던테러가 터지고 영국내 반 무슬림 정서가 확산되면서 통과 전망이 매우 불투명해졌다. ‘종교적 혐오 금지법안’은 방송과 문서, 공공장소에서 특정 종교에 대해 ‘혐오’를 ‘자극’하는 말과 행동을 금지하는 법으로, 이를 위반하면 최고 7년 징역형에 처해지도록 돼 있다. 유대인과 시크교도는 기존의 ‘인종적 혐오 금지법’에 따라 보호를 받고 있지만, 인종이 아닌 종교적 정체성으로 구분되는 무슬림을 따로 보호하는 법안은 없는 상태다. 무슬림들은 “9·11 동시테러 이후 반무슬림 감정이 높아져 보호막이 필요하다”며 법안 제정을 요구해 왔다. 지난 1월 <가디언>의 여론조사에서는 이 법안에 대한 찬성률이 57%에 이르렀으나 <비비시방송>이 7·7 런던테러가 발생한 뒤인 지난달 8∼11일 벌인 조사에서는 찬성률이 51%로 줄어들었다. 반면 반대는 36%에서 43%로 늘어났다. 그러자 영국 언론들은 일제히 “이 법안과 테러의 상관관계가 흥미롭다”며 상원 통과가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영국 정부는 “다종교 사회인 영국에서 특정 종교를 가졌다는 이유로 공격받는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한 법”이라고 제정 배경을 설명한다. 그러나 기독교계를 비롯해 시민단체와 법조계 등은 이 법안이 ‘표현의 자유’와 배치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영국 성공회와 가톨릭계는 지난달 11일 정부에 탄원서를 보내 “이 법안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종교간 반목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며 법안 폐기를 요청했다. 탄원서는 또 “코란과 성경에서 상대 종교를 언급하는 구절만 인용해도 처벌받을 수 있다”며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특정인을 고소할 수 있게 만드는 법”이라고 밝혔다. 특히 전도 활동을 왕성히 벌이는 복음주의 기독교계는 전도를 하면서 다른 종교와 비교하는 발언을 많이 하기 때문에 이 법안에 가장 극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변호사 등 법 전문가들은 ‘혐오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는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데다 ‘혐오’와 ‘혐오를 자극한다’의 정의가 막연하다고 비난했다. 전국세속학회, 영국휴머니스트연합과 시민권단체 ‘자유’뿐 아니라, 영국의 유명 배우, 저술가, 예술가도 비판에 동참했다. 런던테러 뒤 <비비시방송>이 홈페이지에 이 법안을 둘러싼 토론방을 개설하자 ‘다음 차례로 정치적 견해를 표현하는 것도 막을 것인가?’ ‘법안의 ‘혐오’라는 표현이 너무 모호해 처벌이 남용될 가능성이 높다’ ‘종교는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비판에 열려 있어야 한다’ ‘표현의 자유는 어떤 무엇에도 희생될 수 없는 중요한 가치다’라는 등 반대하는 글이 월등히 많이 올라오고 있다. 런던 테러 뒤 무슬림에 대한 공격이 증가한 것 역시 이 법안에 대한 반감이 커진 것과 맥락을 함께 한다. 영국 경찰은 지난달 발생한 7·7테러 이후 무슬림 혐오 범죄가 269건 발생해 지난해 같은 기간의 40건에 비해 크게 늘었다고 지난 2일 밝혔다. 특히 7·7 테러 직후 3일간은 67건이나 일어났다.한편, 2002년과 올초에도 이 법안을 통과시키려다 실패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이런 반발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법안을 밀어붙이고 있는 이유는 이라크전쟁 이후 사이가 틀어진 무슬림 공동체로부터 표심을 얻기 위한 것이라고 영국 언론들은 분석했다. 강김아리 기자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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