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6.09 20:59
수정 : 2013.06.09 22:35
좌파 활동가 사망 사건 계기
대통령·총리 강력 대처 지시
우파 주도 횃불집회도 금지
프랑스 정부가 동성결혼 합법화에 반대하는 시위 도중 좌파 활동가를 때려 숨지게 한 극우단체에 해산조처를 내렸다. 프랑스 정부는 ‘공화주의적 가치를 위협하는 극우세력들은 발붙일 곳이 없을 것’이라며 극우세력의 폭력에 무관용 대처를 다짐했다.
장마르크 에로 총리는 8일 좌파 활동가 클레망 메리크(19)의 사망과 관련된 ‘혁명적 민족주의 청년’(JNR)을 해산하는 즉각적인 조처를 취하라고 내무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마뉘엘 발스 내무장관은 “슬프게도 인종주의, 반유대주의, 반동성애 등 그런 움직임들이 다시 일고 있다”며 단호한 대처를 약속했다. 앞서 발스 내무장관은 “극우세력들의 특징을 보여주는 이러한 폭력을 박멸할 단호한 결의”를 강조한 바 있다. 메리크 사망 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도 “가장 강력한 어조로”로 그 공격을 비난한다고 말해 강력한 대처를 시사했다.
프랑스 명문대학 시앙스포의 재학생이자 반파시즘 활동가인 메리크는 지난 5일 파리 중심가에서 진행된 동성결혼 반대 시위 도중 벌어진 극우단체 회원과 반파시즘 활동가 사이의 충돌 와중에 맞아 숨졌다. 파리검찰청의 프랑수아 몰랭 검사는 메리크의 사망과 관련해 5명이 조사를 받고 있으며, 에스테반이라는 20살 청년이 살인 혐의로 조사받고 있다고 밝혔다.
몰랭 검사는 “에스테반이 메리크를 맨손으로 두번이나 때려서 땅에 쓰러뜨렸다고 경찰에 인정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목격자들은 에스테반이 손에 브라스너클(손가락 관절에 끼우는 금속 무기)을 하고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몰랭 검사도 에스테반의 집에서 브라스너클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메리크의 사망과 관련된 ‘혁명적 민족주의 청년’은 극우파 운동단체인 ‘제3의 길’의 폭력 전위조직이다. 2010년 레바논 출신의 세르주 아유브(49)가 창립을 주도한 이 단체는 회원들의 삭발 및 야구방망이로 반대자들에게 가하는 폭력 따위로 유명하다. 이 단체는 과거 이탈리아 파시스트 운동의 구호인 “믿어라, 싸워라, 복종하라”를 차용하고 있다. 삭발 머리를 한 스킨헤드 청년들과 축구장 난동 세력들을 주된 구성원으로 모집하는 이 단체는 ‘탐욕적인 자본주의와 멍청한 좌파’ 사이에서 제3의 길을 선포하며 반미·반공·반유대주의를 내걸고 있다. 지도자인 아유브는 이 단체가 메리크의 사망과 관련되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검찰은 용의자들 모두가 ‘제3의 길’과 관련이 있다고 밝혔다.
메리크의 사망 뒤 프랑스 남부 툴루즈 시 당국이 중세 때 이슬람 세력의 유럽 침공을 저지한 툴루즈 전투를 기념하는 우파 주도의 횃불집회에 대한 금지령을 내리고, 좌파 단체들은 항의시위를 벌이는 등 프랑스 전역에서 반극우 분위기가 뜨거워지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이 1986년 의회 선거에서 35석을 얻고, 2002년 대선에서 결선투표에 진출하는 등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2007년 이후 내부 분열과 극단적인 우파 정책으로 의회 의석을 모두 잃는 등 제도정치권에서 힘을 잃었다.
프랑스에서는 최근 동성결혼 합법화 이후 우파 세력들의 대대적인 반대 시위로 좌우파 사이에 긴장이 고조돼 왔다. 최근 극우 역사학자 도미니크 베네(79)가 동성결혼 합법화 조처에 항의하며 자살하자, 극우세력들이 활발한 반대 시위를 벌여왔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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