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0.28 20:08
수정 : 2013.10.29 08:56
50년만에 드러난 영국 핵실험 참여 장병
의회, 대책 등 공식 논의 시작
남태평양서 40여년간 핵실험
2만여명 가운데 1천명 생존
대책 마련한 미·프랑스와 달리
“배상 시효 지나” 정부 발뺌
반세기 넘게 철저히 가려진 영국 핵실험 참여 장병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 마침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인디펜던트>는 27일 “1950~60년대 남태평양 일대에서 실시한 핵실험에 참여했다가 방사능에 노출돼 오랜 세월 고통에 시달려온 장병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의회가 29일 이에 관한 공식 논의에 들어가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미국(1945년)과 소련(1949년)에 이어 1952년 10월 사상 세번째로 핵무기 보유국이 된 영국은 1991년 11월 마지막 핵실험 때까지 40년 가까이 핵실험을 해왔다. 실험이 집중된 시기는 1950~60년대, 장소는 오스트레일리아 남·서부 인근 해역이다. ‘영국 핵실험 참여 장병협회’(BNTVA·장병협회) 쪽은 이 기간에 핵실험에 동원된 장병이 줄잡아 2만명에 이른다고 지적한다.
“그동안 우리는 유령이나 마찬가지였다. 정부엔 우리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은 존재였다.” 제프 리디어트 장병협회 부회장은 <인디펜던트>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브리스톨 출신인 리디어트 부회장은 1960년대 공군 소속으로 오스트레일리아 남부 마랄링가 해역에서 핵실험에 참여했다. 그는 50대 초반부터 간 질환과 퇴행성 근골격 질환 등으로 고통을 받아왔다. 자녀 3남매도 희귀 암과 선천성 골격 기형 등을 앓고 있다는 그는 “핵실험 당시엔 방사능에 노출되는 게 건강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실제 <인디펜던트>는 “실험 참여 당시 장병들은 방사능의 위험성에 대한 사전 경고를 전혀 받지 못했다. 대부분 반바지와 슬리퍼 차림으로 핵실험 직후 생겨나는 ‘버섯구름’을 구경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스물셋 나이에 해군 조리병으로 오스트레일리아 서부 크리스마스 섬 인근 해역에서 진행된 핵실험에 참여했다는 더글러스 헌(75)도 마찬가지다.
그는 “핵실험이 끝나면 방사능의 효과를 확인해야 한다며, 인근 바다로 낚시를 나가라고 했다. 잡은 물고기는 방염복을 입은 과학자들이 가져가고는 했다”고 말했다. 병사들에겐 방염복이 지급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과학자들은 남은 물고기를 지역 주민들에게 식용으로 나눠주라고 했다”며 “이런 사실을 아는 건 극소수뿐”이라고 덧붙였다.
일부 책임을 인정하고 보상 대책을 마련한 미국·프랑스 등과 달리 그간 영국 정부는 “핵실험과 참여 장병의 건강 이상은 과학적인 상관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며 버텨왔다. 설령 관련이 있다고 드러나더라도, 이미 손해배상 책임의 시효가 지났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리디어트 장병협회 부회장은 “3년 전만 해도 2천명을 넘던 협회 회원이 지금은 1천명도 안 된다”며 “정부는 살아남은 우리마저 죽어 아무도 더는 귀찮게 굴지 못하게 될 때를 기다리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병협회는 우선 핵실험 참여 장병의 ‘희생’을 정부 차원에서 공식 인정받기를 원한다. 또 2500만파운드 규모의 자선기금을 조성해, 이를 종잣돈 삼아 참여 장병은 물론 건강 이상으로 고통받는 2세와 3세도 의료·생계 지원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장병협회 활동을 지원해 온 존 배런 하원의원(보수당)은 “핵실험 참여 장병들은 국가를 위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위험을 감수했다”며 “이제는 국가가 그들의 노고를 인정하고, 밀린 빚을 갚을 때가 됐다”고 말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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