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정부가 지난 9월 초 자국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에 참가한 각국 대표단에게 나눠준 기념품이 ‘정보 수집용’이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러시아 쪽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31일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러시아 정부는 9월 5~6일 상트페테르스부르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 정상회의가 끝난 뒤 각국 대표단 전원에게 기념품이 담긴 가방을 나눠줬다. 가방 안에는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로고가 찍힌 유에스비(USB) 메모리스틱과 휴대전화 충전기 등이 들어있었다.
그런데 이들 제품이 뭔가 수상쩍다고 느낀 헤르만 반롬푀이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전문가들에게 기술적인 분석을 맡겼다. 분석작업에는 독일 정보기관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유에스비를 사용하면 컴퓨터에서, 충전기를 사용하면 휴대전화에서 각각 정보가 빠져나가는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라스탐파>와 <일코리에레델라세라> 등 이탈리아 언론이 29일 보도하면서 알려졌다. 이들 매체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유럽연합 고위 관계자의 말을 따 “반롬푀이 의장은 이같은 분석 결과를 비밀리에 주요 20개국 회원국에 귀띔해준 것으로 안다”며 “현재 추가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외교소식통의 말을 따 “정상회담 같은 행사에서 공짜로 나눠준 메모리스틱을 함부로 사용하는 건 어린 아이같은 짓”이라며 “보안문제에 관한 훈련을 받은 외교관이라면 어느 누구도 선물로 나눠준 제품을 검증없이 함부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러시아 쪽은 이같은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정부 대변인은 “어떤 근거로 이런 보도가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의도만큼은 뻔해 보인다”며 “현재 유럽 각국과 미국 사이에 불거진 (국가안보국의 도·감청) 문제에서 다른 쪽으로 관심을 돌리기 위해 만들어낸 어설픈 주장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관련영상] [한겨레 캐스트#187] 엿듣는 미국, ‘9·11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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