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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총리 민주주의’와 역대 총리 |
지난 1949년 서독 지역에 독일연방공화국이 수립된 이후 56년 동안 역대 총리는 초대 콘라트 아데나워부터 게르하르트 슈뢰더에 이르기까지 모두 7명이다.
독일은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연방하원에서 과반수의 찬성으로 총리를 선출한다. 지역구 의원과 정당 투표에 의한 비례대표 의원을 절반씩 뽑는 연방하원 선거제도 때문에 늘 다양한 군소정당이 의회에 진출, 제 목소리를 내왔다. 단 한 번도 어느 한 정당이 단독으로 집권하지 못하고 항상 연립정권을 구성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6년 동안 총리가 6번 밖에 바뀌지 않은 것은 독일 정치를 안정되게 한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여러 정당 중에서도 우파인 기민-기사당 연합과 좌파인 사민당 2개 정당이 중심 역할을 하며 사실상의 양당 체제를 이끌어왔기 때문이다. 또 하원이 과반수의 찬성으로 후임 총리를 선출할 수 있을 경우에만 총리 불신임을 가능케 한 건설적 불신임 제도도 정국 안정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독일의 경우 내각제를 채택 중인 다른 나라에 비해 총리가 더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독일은 `총리 민주주의'를 꽃피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2차대전 후의 잿더미에서 `라인강의 기적'이라는 경제발전을 이룩한 데 이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아우른 `사회적 시장경제'를 뿌리내리게 하고, 동-서독 통일의 대업을 넘어 독자적 목소리를 내는 강국으로 발돋움하기까지는 다음 7명 총리의 지도력이 큰 몫을 했다.
▲초대 콘라트 아데나워(1949-1963) : 1949년 연방하원은 당시 73세인 아데나워 기민당수를 초대 총리로 선출했다. 아데나워는 이후 4번 연속 집권했으나 4번째 임기 도중 자민당을 연정에서 탈퇴시키며 사임했다.
▲2대 루트비히 에르하르트(1963-1966) : 아데나워 사퇴 후 기민당 부당수를 지낸 에르하르트 경제장관이 의회에서 후임 총리로 선출됐다. 에르하르트는 65년 5대 총선에서 재선됐으나 중도우파 연립내각이 66년 11월 붕괴됨에 따라 도중 하차했다.
▲3대 쿠르트-게오르크 키징어(1966-1969) : 66년 12월 기민당과 사민당이 좌우 대연정을 구성, 집권하면서 기민당 소속 키징어 총리와 사민당 빌리 브란트 부총리 겸 외무장관 체제를 출범시켰다. 사민당은 이때 연방정부에 처음 진출했다.
▲4대 빌리 브란트(1969-1974) : 중도좌파 연립내각이 탄생하면서 브란트가 사민당 출신의 첫 총리가 됐다. 브란트 총리는 72년 재선됐으나 보좌관이 동독 정보기관 슈타지를 위해 간첩활동을 한 것으로 드러나자 74년 사임했다.
▲5대 헬무트 슈미트(1974-1982) : 사민당 소속 헬무트 슈미트가 브란트의 후임 총리로 의회에서 선출됐다. 슈미트는 76년과 80년 총선에서 연속 재선되며 장수했으나 82년 사민-자민당 연정이 해체되자 물러났다.
▲6대 헬무트 콜(1982-1998) : 슈미트 정권 붕괴 후 기민-자민당 정권이 들어 서면서 기민당의 콜이 의회에서 총리로 선출됐다. 콜은 83년, 87년, 90년, 94년 연속 총선을 통한 재선에 성공해 전후 최장기 집권 총리가 됐다. 동-서독 통일을 이루고 16년간 집권한 콜은 98년 총선에서 기민당 총리 후보로 출마했으나 패배했다.
▲7대 게르하르트 슈뢰더(1998-현재) : 슈뢰더는 독일 보수 정치의 거목 콜을 꺾음으로써 유권자들의 직접 투표에 의해 사상 처음으로 여당에서 야당으로 정권을 교체시키며 총선을 통해 바로 집권한 최초의 사민당 출신 총리가 됐다. 또 적-녹연정 구성으로, 환경정당인 녹색당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집권당에 참여하게 됐다.
송병승 특파원 songbs@yna.co.kr (베를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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