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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자유대학 한국학연구소 이은정(51) 소장. 사진/ 야지마 츠카사 photo2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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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좌표, 독일서 찾다
독일 베를린자유대학 한국학연구소 이은정 소장
“독일 겉모습에 집중하지 말고 맥락을 이해해야”
“독일을 ‘배운다’는 개념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적 맥락에서 작동하는 제도를 그대로 ‘배우면’ 뭐합니까”
2008년부터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의 한국학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이은정(51) 소장은 최근 한국에서 불고있는 ‘독일 배우기’ 열풍을 매섭게 비판했다. 바깥에 보여지는 독일의 겉모습에만 집중한 나머지, 정작 그 현상이 나오게 된 배경과 방법론에 대해선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지금 중요한 것은 독일의 제도를 한국적 맥락에 맞춰 ‘번역’하고 재창조’하는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 독일서 한국의 ‘앞날’을 묻지마라 “몇 년 전에 한국에서 교통 신호체계를 독일 방법으로 바꾼다고 했다가 한 달 만에 원상복구한 일이 있었어요. 독일 시스템 자체는 합리적이고 좋다고 하면서 들여왔지만, 우리나라 교통 문화, 운전자는 전혀 이해를 할 수 없는 시스템이었죠.” 이 해프닝은 한국적 맥락을 무시한 일방적인 ‘배우기’의 결과다. 이 소장은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이른바 ‘문화 번역’이라고 강조한다. 독일의 어떤 제도가 있기까지의 배경을 이해한 뒤, 그 아이디어를 가지고 우리 맥락에 맞게 번역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최근 (윤 일병 사건 이후) 한국 언론에서 독일의 군사 옴부즈맨 제도가 언급되고 있는데, 모병제에다 군사 시스템이 전혀 다른 독일의 제도를 그대로 가져올 수 없다”며 “독일에서 그 제도가 왜 도입됐고,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맥락과 방법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방식을 고려하면, 독일뿐 아니라 다른 문화권의 제도도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
이 소장은 독일을 방문하는 한국의 공무원과 언론 등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한국이 무엇을 해야 하냐’는 질문을 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지켜봐온 이른바 ‘독일 배우기’는 독일인 전문가를 불러놓고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하냐’고 묻는 방법이었어요. 독일 사람들이 가장 난감해하고 당황하는 질문입니다. 한국 사회의 맥락을 모르는 독일인들이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니까요.” 그 대신 어떤 문제와 고민을 가지고, 왜 그렇게 했는지를 물어야 한다고 했다. “한국에 대해 모르는 사람에게 답을 물을 수 없어요. 답은 한국 사회에서 우리가 직접 찾아야 합니다.”
1990년대 만해도 한국사회에서 독일은 ‘유럽의 병자’로 치부됐지만, 최근에는 가장 ‘이상적인 국가’로 여겨지고 있다. 그때와 지금의 독일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 사이 독일 사회의 시스템이 획기적으로 변한 게 아닙니다. 오히려 한국 사회 내부의 필요에 따라서 독일에 대한 이미지와 평가가 변했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는 독일 열풍이 일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독일에서 한국을 향하는 관심은 그리 크지 않다. 학술분야에서 한-독 교류의 중심에 있는 이 소장은 하지만 쌍방향 교류가 더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10년 전만해도 한국에서 독일을 향한 관심이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독일 내에서도 한국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 학생과 학자들의 교류 프로젝트는 매우 활발한 편이고, 통일이나 외무부 등 여러 분야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현상은 한국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결과다. 그 외에도 한국 기업이 독일 기업의 경쟁상대가 되거나, 한국이 시장으로 인식되면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고 이 소장은 분석했다. 독일의 정당 재단 뿐 아니라 폭스바겐, 베텔스만 재단 등 독일의 기업 재단들도 한독교류 사업에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고 한다. 베를린자유대 동아시아대학원도 8월 중순 박사과정 학생과 교수들과 함께 한국에서 여름학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한국학의 ‘불모지’였던 독일에서도 한국학과가 하나 둘 생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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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자유대학 한국학연구소 이은정(51) 소장. 사진/ 야지마 츠카사 photo2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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