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1.26 20:27
수정 : 2015.01.26 22:50
그리스인들 왜 급진좌파 선택했나
채권단 긴축 강요에
청년실업률 58%·공공부문 대량 해고
전국 곳곳서 ‘역사적 승리’ 환호
같은 고통 국가들에 영향 미칠 듯
“5년 동안의 굴욕과 고통은 끝났다.”
25일 그리스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시리자의 알렉시스 치프라스 대표는 이날 밤 아테네대학 앞에서 승리를 축하하는 연설을 하면서 이렇게 단언했다. 이날 밤 아테네 곳곳은 ‘역사적 승리’에 환호하는 그리스인들로 넘쳐났다.
왜 그리스인들은 사상 최초로 급진좌파 정당 시리자를 선택했을까. 영국 <가디언>은 아테네 중심의 클라프트모노스 광장에서 열린 축하행사에서 환호하는 그리스인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그들의 목소리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고, 희망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라는 메시지로 요약된다. 자영업자 파나지오티스(54)는 “경제는 붕괴했고, 빈곤은 한계치에 도달했다. 당신과 나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먹을 음식을 찾으려 쓰레기통 주위를 뒤지고 있고,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을 수 없다. 시리자는 그리스의 희망”이라고 말했다. 이리니 모카(38)는 “지난 5년은 너무 힘들었고 우울했고 잔인했다”며 “시리자는 무리하지 않을 것이며 최저임금과 연금 등 최소한의 것부터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위기로 2010년 110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받기 시작한 이래 그리스는 채권자 ‘트로이카’(유럽중앙은행, 유럽연합, 국제통화기금)로부터 내핍을 강요받았다. 그리스 정부는 채권단의 요구대로 각종 복지정책과 공공서비스를 축소하고, 공공부문 인력 수만명을 정직·해고하는 등 긴축정책을 실시해야 했다. 그 결과 2009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15.2%에 이르던 재정적자를 2013년엔 1.8%까지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부작용으로 실업률은 2010년 12.5%에서 지난해 10월 25.8%로 두 배나 뛰었고, 특히 청년실업률은 2010년 32.2%에서 지난해 57.5%까지 치솟았다고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전했다.
임금과 연금도 지속적으로 삭감됐다. 보건 예산이 크게 삭감돼 기초 의료서비스는 무력화됐다. 전기가 끊기는 가정집들이 늘었고 많은 어린이들이 영양실조에 허덕였다. 허리띠를 졸라맸음에도 경제 상황은 더 악화해 국가부채는 2009년 국내총생산 대비 130%에서 지난해 175%로 오히려 늘어났다. 체감경기가 수렁에서 벗어날 기미가 없는데도 채권자인 트로이카는 예산 삭감과 연금에 대한 추가 삭감을 강요했다.
이런 상황에 대한 해법으로 시리자는 ‘긴축 중단, 부채 탕감, 구제금융 조건 재협상’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특히 국가재정을 쥐어짜는 긴축정책이 아닌 일자리 창출, 최저임금 인상, 복지 확대 등을 통해 그리스 경제를 되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재정지출을 늘려 내수와 일자리를 확대하고 공공서비스도 보장해야 경제가 활성화되고 사회도 붕괴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시리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가 독일의 빚을 탕감해줬던 경험을 그리스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런 주장이 그리스 시민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2004년 13개 군소 좌파정당 연합으로 출발한 시리자는 대안 세력으로 급부상했다. 치프라스 대표는 선거 전 유럽 좌파 언론 <트랜스폼 네트워크>와의 인터뷰에서 “시리자가 도약한 것은 단순히 그리스 경제 쇠락에 책임이 있는 주류 정당에 대한 심판만이 아니다. 시리자가 대안을 가진 유일한 정당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시리자의 반신자유주의 정책의 성공 여부는 그리스뿐 아니라 같은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는 유럽 전역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탈리아에서 시리자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아테네로 왔다는 니콜라 코멘탈레는 <가디언>에 “유럽에서 긴축정책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그리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해 매우 중요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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