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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동부 아드리아 해변에 놓인 파라솔들. 무료인 바다에서 나와, 찬란한 하늘을 바라보려면 파라솔과 일광의자를 구입해야 한다. 사진 이나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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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이나라의 풍경의 감각
원색의 ‘대여’ 파라솔이 해변을 가득 채운 이탈리아 해변과
각자의 비치 타월을 깔고 누운 프랑스의 해변
프랑스에서 30대를 다 보내고 마흔이 넘어 서울과 파리 사이에서 엉거주춤 가정을 꾸리고 일을 하는 나는 프랑스에서 알프스산맥을 넘어 이탈리아로 들뜬 여행을 떠날 때면 프랑스 사람 흉내에 꽤 능해졌다는 생각을 한다. 이국의 문화이자 이해 가능한 문화, 이탈리아 문화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선망을 모방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꼭 서울 일부 일식 우동집이나 라면집 직원들이 큰 소리로 일본어 인사를 외치듯 이탈리아 사람이 피자를 굽는 파리 시내 식당 주인이나 직원도 흔히 아무에게나 천연덕스럽게 이탈리아어로 말을 건다.
처음 본 동해바다의 푸른빛처럼
(충분히 익숙하여) 이해 가능한 (이곳이 아닌) 이국의 소리들이 이곳에 이국의 판타지를 생산한다. 비록 잔해이더라도 고대 로마제국의 유적이 도처에 남아 있는 로마, 피렌체의 박물관뿐 아니라 토스카나 어느 작은 도시의 교회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르네상스 화가들의 작품, 코페르니쿠스며 갈릴레이 같은 이들이 실험을 하고 강의를 했다는 대학, 지방 귀족들이 투박한 ‘성’ 대신 지어올렸던 곳곳의 화려한 ‘궁’(Palazzo·팔라초), 프랑스 샴페인과 와인의 명성에 도전하는 프로세코와 이탈리안 와인, 올리브나무와 포도를 심은 산비탈, 사이프러스나무를 심은 능선이 만드는 토스카나 언덕의 풍경, 선명하게 푸른 하늘에 작열하는 태양, 지중해, 베스파(Vespa)라는 이탈리안 스쿠터에 두 발을 올리고 유유자적 출퇴근을 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이미지가 상징하는 ‘라 돌체 비타’(달콤한 인생)의 낙관, 파솔리니, 비스콘티, 안토니오니, 이루 다 셀 수 없는 이탈리아의 감독들이 모두 내게 이탈리아의 어떤 이미지를 구성한다. 대문호 괴테, 스탕달부터 스페인 내전에 참여하고 2차 세계대전 때 레지스탕스 운동을 펼쳤던 철학자 시몬 베유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이곳 인간의 풍경과 자연의 풍경을 기록한 문인, 지식인, 저명한 인사들의 이름은 다 꼽기조차 힘들다.
지난해 여름엔 이탈리아 동부 아드리아 해변에 잠시 들렀다. 지중해 ‘아드리아’ 해변이라니 얼마나 멋진 낱말인가. 마치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보았던 동해바다의 짙은 푸른빛이 그리 놀라웠던 것처럼, 아드리아 바다의 잔잔한 옥색도 나를 설레게 했다. 그러나 나를 더 설레게 했던 것은 옥색 바다가 아니라 바닷가 모래사장을 가득 채운 원색 파라솔과 일광욕 베드들이었다.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의 아드리아 바닷가에도 원색은 아니지만 그렇게 간이 텐트와 의자들이 있었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세기말 부르주아지의 휴양지였던 리도섬을 배경으로 한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 중절모를 쓰고 정장을 갖춰 입은 주인공은 바닷가 간이 텐트 옆 책상에 앉아 일기를 적곤 했다. 역병이 돌아 모두 떠난 텅 빈 바닷가의 간이 의자 위에서 주인공이 숨을 거두던 마지막 장면은 이해할 수 없는 생소한 시대와 장소의 감각적 이미지로 내게 남았다.
지중해 하늘을 올려다보려면
사람 없는 해수욕장에 남아 무상하게 자리를 지키던 영화 속 무채색의 간이 의자들과 달리 21세기 아드리아 해수욕장의 파라솔과 의자들은 하나같이 원색이었다. 한쪽에서 수십 개의 짙은 푸른색과 노란색이 태양을 받아 빛났다. 바로 옆에는 초록색과 오렌지색이 배합된 파라솔들이 경쟁하듯 빛났다. 그 아래에서 원피스 수영복을 입었던 영화 속 100년 전 부르주아 가문의 금발 소년과 사뭇 다른 평범한 체격과 차림의 이탈리아 남녀노소가 거의 온몸을 다 드러내고 오일을 바르고 있었다. 모래사장은 원색의 파라솔과 일광욕 베드로 정말 발 디딜 틈이 없었기에 이탈리아 해수욕장을 잘 알지 못하는 나와 프랑스인 식구는 혹시 이 파라솔과 일광욕 베드가 한강 시민공원의 체육시설처럼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인가 싶었다. 좌르륵 색을 맞춰 해변을 빈틈없이 차지하고 있던 수십~수백 개의 파라솔과 일광욕 베드들은 그러나 모두 유료였다. 내 눈을 사로잡던 파라솔 일군의 푸른색과 초록색은 서로 다른 파라솔 임대 사업자를 상징하는 기호였다.
지중해 바다에 들어가기 위해 입장료를 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바닷가 해변이다. 바다 입장료는 없지만 몇만원의 파라솔과 일광의자 사용료를 내지 않고는 모래사장에 누워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푸른빛 하늘을 올려보기 힘든 것이 이탈리아 바닷가 사정이었다. 유료 시설이 바닷가 모래사장 대부분을 차지하는 곳이 많은 탓에 이탈리아 휴양지는 옥색 바다에도 불구하고 사유화된 곳이 많고 비싸다는 평판을 얻었다고 한다.
알프스산맥 너머 프랑스 바닷가의 사정은 이와 다른데, 프랑스에서 해변은 사회적 평등의 원칙이 강조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해수욕장 모래사장에는 각자의 비치 타월을 깔고 누운 사람들이 대다수다. 그다지 눈길을 끌지 못하는 파라솔 무리는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비아리츠 같은 프랑스 남서부의 호사스런 휴양지 해수욕장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스페인 국경에서 멀지 않은 비아리츠 해수욕장 바로 옆에는 19세기 프랑스 제2제정의 나폴레옹 3세가 향수병에 시달리는 스페인 출신의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지은 적색의 황궁이 있다.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황제는 갯벌 옆 단단한 땅 위에 새로 궁을 짓고 조금 떨어진 곳에 예배당을 지었다. 이 황궁이 지어진 이후 근방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그 뒤 비아리츠는 값비싼 휴양지로 개발되었다. 제국이 사라지고도 한참이 지난 지금, 황궁은 근처에서 제일 비싼 임페리얼 호텔이 되었다.
황궁이었던 호텔이라 하더라도 바로 앞 모래사장이나 바다 일부를 마음대로 사유화하지 못한다. 루이 14세 치하였던 1681년, 재상 콜베르가 해변(밀물 시기 바닷물이 들어오는 땅)은 프랑스 국가의 땅이라는 칙령을 선포한 이후, 해변이 사적으로 소유될 수 없다는 지금도 유효한 원칙 때문이다. 프랑스 법규는 “특수한 조치를 요구하는 환경 보호나 국가 방위, 보안의 정당한 이유”가 없다면 모든 보행자는 해변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고 “해변은 근본적으로 양식이나 어업의 목적과 마찬가지로 공중이 자유롭게, 무료로 사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존재한다고 명시한다.
프랑스 평범한 서민의 무료 모래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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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센 강변의 모래사장은 사회당 출신의 파리 시장 들라노에가 휴가를 떠나지 못하는 파리지앵을 위해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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