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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유 쓰농 할머니. 나비의 꿈 미디어지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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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평화기행 ‘나비의 꿈’/쓰농 할머니의 오하두흐 학살 증언
“마을이 불에 탄 연기로 가득…운좋게 살아난 사람은 총으로 쏴
문제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차별을 정당화하느냐 아니냐에 있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진심어린 위로와 연대의 메시지를 보낸다. 할머니들 중엔 다시 세상에 나와 증언하시는 분이 있는 것으로 안다. 나 역시 증언의 아픔을 알기 때문에 그분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아픔을 함께 하고 싶다.”
까미유 쓰농 할머니는 오하두흐를 찾는 이들이 원하면 언제든 그들에게 학살의 진실을 증언한다. 19살 때 목격했고, 그로부터 75년 가까이 지났지만 할머니는 아직도 꿈에서건 생활 속에서건 악몽을 꾸곤 한다. 그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숨이 막힌다. 그럼에도 그가 지금까지 수천 번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은, 진실을 세상에 알려 다시는 이런 학살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지구 반대편 일본군에 의해 처절하게 유린당한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관심을 표명한 쓰농 할머니는 천천히 그러나 또박또박 그때의 진실을 전했다. 다음은 할머니의 증언.
“주말을 맞아 오하두흐에 사는 부모님을 뵙기 위해 전철을 타고 마을로 가던 도중 마을에서 올라오는 검은 연기를 보았습니다. 전철은 갑자기 앞을 막은 군인들에 의해 멈춰졌고, 군인들은 오하두흐가 목적지인 사람들은 내리라고 했습니다. 20여명이 내렸고 그 자리에서 나치군인들이 히죽대며 마을사람들을 모두 죽였다는 충격적인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당시에 우리는 모두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이유는 모르지만 군인들이 우리들을 놓아주었고 우리는 근처 다른마을에 가서 하룻밤을 묵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가족들과 마을 사람들의 생사는 알 길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머물렀던 그 마을에 있는 부모들이 우리에게 오하두흐에 있는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아직도 집에 오지 않아 굉장히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근처 작은 마을의 아이들은 학교가 없어 나름 큰 도시였던 오하두흐에 있는 학교로 등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이 아이들도 모조리 학살당했습니다. 토요일, 두려웠지만 꼭 가야한다는 생각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오하두흐로 간 저는 며칠간 악몽에 시달렸습니다. 온 마을에 미처 수습하지 못한 시체의 썩는 냄새와 불에 탄 연기로 가득했습니다. 살아남은 몇 명의 사람들은 왜 이러한 악몽이 평화로운 작은 마을에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났는지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고 학살의 방법까지 사람들을 속여 한 곳에 몰아넣은 뒤 불을 질러 죽이고 거기서 운 좋게 살아난 사람들을 다시 조준해서 총으로 쏴 죽이는 등 인간이 어찌 이렇게 잔인할 수 있는가에 대해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이 경험은 저에게 엄청난 트라우마로 남게 되었다. 지금도 그 악몽에 잠을 설치는 일도 있습니다. 이 트라우마는 나중에 제가 일자리를 구하고 너무도 당연하게 노동조합과 만나게 되면서 그 많이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여성인권의 문제 사회적 약자가 만들어지는 구조의 문제 등등 이런것들을 배워나가는 과정이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이었습니다.전범재판이 열렸지만 기소된 60여명중에 21명만 법정에 세울 수 있었고 이 조차도 명령을 내렸던 사람들은 숨어버렸습니다. 법정에 선 사람들도 7명 외에는 나치 점령하게 있던 알자스로렌지방의 프랑스인 출신들이었습니다. 결국 프랑스 내 알자스 차별문제로 불똥이 튀게되며 나중에 다 사면받게 되었습니다.”
“힘든 몸에도 이렇게 제가 나오는 이유가 있습니다. 증언을 하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희망을 주고받으며 나는 이것을 극복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증언은 과제이자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독일인에 대한 개인적은 분노는 없습니다. 증언하며 이것이 감정적인 방향으로 가선 안 되고, 전범재판을 위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나치즘에게 가장 먼저 희생된 것은 독일 민족입니다. 독일에 있던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노동조합 활동가 등이 가장 먼저 학살하거나 강제 수용 당했습니다. 그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할머니가 거듭 강조한 것은 히틀러가 법절차에 따라 권력을 잡았다는 사실이다. “히틀러도 민주주의를 통해 합법적으로 당선되었습니다. 문제는 민주주의냐 아니냐가 아닙니다. 차별을 정당화 하느냐 아니냐입니다. 차별의 정당화 속에서 나치즘은 태동했고, 전쟁 범죄가 저질러졌고, 학살도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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