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0.31 18:26
수정 : 2005.11.04 00:26
통신원 리포트 [파리]
“상업주의가 축제 뜻 훼손”
속을 도려낸 ‘호박등’으로 상징되는 핼러윈데이(10월31일)를 보내는 파리 사람들의 속이 편치 않다. 미국에서 건너온 핼러윈데이 상술로 치장된 파리의 상점 쇼윈도가 문화적 자부심이 강한 이곳 사람들의 자존심을 긁고 있기 때문이다.
검은 눈의 섬뜩한 호박 탈과, 변장을 한 채 달콤한 사탕을 얻으러 돌아다니는 아이들 모습으로 대표되는 ‘핼러윈데이’ 축제를 맞아 파리 시내 많은 상점들은 이 행사에 쓰일 물품들을 앞다퉈 내놓으며 사람들을 잡아끌었다.
원래 11월1일이 ‘가톨릭의 모든 성인을 기리는 공휴일(대축일)’이어서 프랑스인들은 10월의 마지막 밤을 경건한 마음으로 보내왔다. 그러나 1990년대 말부터 유입된 미국식 핼러윈축제로 인해 갈수록 시끌벅적하고 요란한 밤이 되고 있는 것이다.
40대의 한 주부는 “아이들이 핼러윈축제를 맞아 변장을 해야 한다고 해서 물건들을 고르고, 동네 아이들을 위해 사탕을 사려고 마지 못해 나왔다”며 “대축일 전날은 사실 조용히 보내는 날 아니냐”고 불편한 마음을 드러냈다.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에 어린 시절을 보낸 생물학 전공 대학원생 마치(24)도 지금의 핼러윈축제에 익숙하지 않다. 그는 “경건하고 조용하게 맞는 대축일은 프랑스 뿐 아니라 유럽 전체의 축제”라며 “미국의 상업적인 축제가 유럽에 들어와 아름다운 명절을 변질시키고 더럽히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어린이들이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대축일 대신 핼러윈데이만 기억하게 될까봐 걱정된다는 것이다.
파리/김건희 통신원
rainmaker0220@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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