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딸이 중2로, 아들 놈은 초등 5학년으로 편입했어."
"그런데... 한국에 오니까 장난이 아니네. 우리 옆집 중학생은 매일 학원 갔다가 밤 12시 돼서야 온대."
"처음엔 태연하려고 애썼어. 하지만 갈수록 겁이 나는 거야. 하도 주변에서 대학, 대학 하니까."
"그래서... 한국에 온 지 한 달 쯤 되었을까? 중학교 다니는 딸내미를 불러 얘기를 했어. '한국에선 대학가는 게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적이 잘 나와야 한다.','지금부터 1등을 해야 한다.','그리고 계속 그 성적을 유지해야 대학갈 수 있다.' 나로서는 큰 맘 먹고 얘기를 했지."
"그런데 말이야. 한참 내 얘기를 듣던 딸애가 그러는 거야.'아빠 1등이 뭐야?'"
"아 그렇지 독일에는 1등이라는 게 없지... 잠시 당황한 나머지 난 지금 생각해도 너무 어리석은 대답을 하고 말았어."
"1등? 1등은 좋은 거야."
"그러자 딸애가 이렇게 말하더군. '아빠, 1등은 좋은 건데 나만 하라는 건 언페어(unfair)해요!'"
" 난 더 이상 어떻게 설명을 할 수가 없었어. 한국과 독일은 다르니까..." 그 친구와 나는 잠시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우리 교육과 독일 교육 사이의 어떤 격(格)의 차이가 느껴졌다. 경제 이야기에서나 많이 듣던 '경쟁력 강화'라는 말이 교육의 지표로 등장하고. 친구를 이겨야 내가 사는 것처럼 비장한 분위기로 가득찬 학교, 그 속에서 배우고 자란 우리 아이들이 미래에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우리가 술잔을 단숨에 비운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도심의 밤공기는 서늘했고, 우리 둘은 상가의 입간판에 기대서서 술로 달궈진 호흡을 식히고 있었다. "OO학원"이란 간판이 붙어있는 5층짜리 건물에서 아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봉고차 한 대가 아이들을 싣고 어디론가 쏜살같이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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