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팽 총리, "진실의 순간 맞았다"..이민자 차별 인정
프랑스 정부가 8일 자정(이하 현지시간)부터 필요한 지역에서 야간 통행금지령 발령을 허가한 가운데 폭력사태가 13일째 이어지면서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도심의 소요는 통행금지령으로 잦아드는 것 같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폭력상황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도미니크 드 빌팽 프랑스 총리는 이날 프랑스 사회가 이민자들을 동등하게 처우하지 못했다는 점을 시인했다.
◇ 계속되는 폭력사태= 8일 자정부터 통행금지령이 발령된다는 예고에도 불구하고 이날 프랑스 곳곳에서는 상점 약탈과 신문사 방화, 지하철 소이탄 설치 등 폭력사태가 계속됐다.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이 방문한 남서부 툴루즈에서는 이날 청년들이 버스 1대와 승용차 21대에 불을 질렀으며, 북부 릴과 동부 스트라스부르 근처에서도 승용차가 불에 타는 등 폭력사태가 이어졌다.
니스에서는 한 남자가 최근 폭력사태가 발생했던 고층 건물에서 떨어진 역기에 맞아 중태에 빠져 당국이 조사에 나섰다.
남부 리용에서는 이날 지하철역 한 곳에서 소이탄이 폭발해 지하철 교통이 차단됐다고 리용시 당국 대변인이 밝혔다. 그는 이 폭발로 부상자는 없다며 9일 오전 지하철 재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파-드-칼레 지방의 아라스에서는 소요군중들이 가구,가전 상점과 카펫 상점을 약탈하고 불을 질렀다고 경찰 대변인 파트리크 라이디가 밝혔다.
알프스와 해안을 접한 남동부 지역의 그라스에서는 니스-마탱 신문사가 방화 피해를 입었으며 쥐라주 동부 돌에서는 버스정류장에서 버스 9대가 불에 탔다고 라이디 대변인이 전했다.
남서부 보르도 인근 바셍에서는 버스에 소이탄이 날아들어 폭발했다.
이런 가운데 미셸 고댕 경찰청장은 "폭력의 강도가 약해지고 있다"며 특히 파리 외곽 지역에서는 지난 7일 밤부터 큰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프랑스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9일 오전 1시 현재 방화된 차량은 327대, 체포된 사람들은 139명으로 전날 밤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지난달 27일 소요사태가 시작된 후 지금까지 모두 6천대 이상의 차량이 방화피해를 입었으며 1천600여명이 최소 24시간 이상 구금됐다고 전했다.
한편 프랑스 역사학자들은 이번 소요사태가 1968년 프랑스 전역 대학생들이 시위를 벌였던 '68혁명'보다도 재산상의 피해가 더 크고 광범위하다고 지적했다. 당시 학생시위는 노동자 1천망명의 파업을 몰고 와 샤를 드 골 대통령의 의회 해산과 조르쥬 퐁피두 총리 경질을 야기했다.
◇ 비상사태법 발동= 프랑스 정부는 이날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참석한 비상 각료회의에서 1955년 제정된 비상사태법을 발동키로 결정, 각 지역 도지사들이 필요할 경우 통행금지령 발동권을 행사할 수 있게 승인했다.
그러나 일각에서 가능성이 제기된 군 동원 결정은 나오지 않았다.
통금령은 필요한 지역에 한해 8일 밤 자정부터 시행됐다. 프랑스 영토에서 통금 령이 발효된 것은 지난 1981년 태평양 섬 누벨 칼레도니에서 폭력사태 해결을 위해 취해진 이후 처음이다.
또 이번 조치로 경찰은 영장없이도 무기가 은닉됐다고 판단되는 곳을 급습해 불 시 단속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할 수 있으며 공공 회합장소를 폐쇄할 수 있다.
법무부는 통금령을 어기는 사람이 최고 2개월의 징역형이나 3천750 유로 벌금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1955년 제정된 비상사태법에 따르면 내각이 비상사태 조치를 일단 12일간 시행 할 수 있고 연장 여부는 의회에서 표결에 부쳐진다. 1955년 법은 당시 식민지였던 알제리내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도입됐다.
정부 발표 이후 북부 도시 아미앵에서 처음으로 비상사태법에 따른 통금령 실시 를 결정했다. 시 당국은 매일 오후 10시부터 오전 5시까지 동행인이 없는 16세 미만 청소년의 통행을 금지하게 된다.
아미앵은 또 캔에 든 휘발유를 미성년자들에게 판매 금지했다.
내각 결정과는 별도로 파리 북동쪽의 소요 진원지 인근 도시인 랭시의 시장은 이미 7일 밤부터 시 차원의 통금령을 발동했다. 8일에는 중부 도시 오를레앙과 파리 교외의 사비니-쉬르-오르주가 통금령을 내렸다.
그러나 정부의 비상조치 발동 직후 야권에서 비판이 잇따랐다. 공산당 지도자 장-마리 뷔페는 포고령으로 소요사태가 격화될 것이라고 지적했고 사회당의 로랑 파 비우스 전 총리는 비상 조치들이 면밀히 통제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장-마르크 애로 사회당 원내대표는 비상사태령 적용을 주의깊게 감시하겠다면서 "통행금지는 (이민자들의)고통을 감출 수 없으며 분리의 또다른 징조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 빌팽 총리, 차별축소 방안 공개= 빌팽 총리는 이날 오후 하원에 출석해 "환경이 어려운 교외 지역에서는 차별이 일상적,반복적으로 일어나 젊은이들이 프랑스에 소속돼 있지 못하다는 좌절감을 안겨 준다"면서 평등의 이상이 실패했음을 암묵적으로 시인했다.
빌팽 총리는 "프랑스가 진실의 순간을 맞았다"면서 "프랑스 통합모델의 효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폭력사태 진정이 "절대적인 최우선"이라고 강조하면서도 의원들에게 이번 사태를 "경고와 호소로 받아들이라"고 말했다.
빌팽 총리는 "우리의 집단 책임은 어렵게 사는 지역을 공화국의 다른 곳들과 같은 종류의 영토가 되도록 하는 것"이라며 일련의 저소득층 지원대책도 내놨다.
빌팽 총리가 공개한 정책에는 반차별기구 설치, 교외 저소득층을 위한 일자리 2 만개 제공, 교외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회단체에 1억 유로 지원, 감세 혜택이 주어지 는 15개 특별 경제구역 창설 등이 포함됐다.
이와 함께 빌팽 총리는 "사회적 불평등의 원인은 부분적으로는 제대로 통제되지 못한 이민정책에 있다"면서 불법 이민를 더욱 강력하게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이성섭 특파원
leess@yna.co.kr (파리=연합뉴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