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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파리 시내에서 열린 평화시위에 참가한 튀니지 출신인 인권운동가 부지리 사이드와 파리 교외 ‘민감지역’에서 30년째 역사를 가르쳐온 여교사 몽포흐 뮈리엘은 프랑스 정부의 강경대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파리/최정민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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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 집단촌 내몬게 사태 발단” “그들은 괴물 아니라 똑같은 사람”
“폭력소요는 어쨌든 끝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사회 전체가 그들이 왜 그랬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연일 방화사건 보도로 그들을 완전히 폭도로 내 몰았다. 분노가 심했던 것은 감전사에 대한 명확한 발표나 사과 없이, 무조건 방화사고 관련자에 대한 처벌만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소요사태가 진정국면으로 들어선 19일 파리 도심에서 벌어진 평화시위 현장에서 만난 튀니지 출신 인권운동가 부지리 사이드(59)는 사회내 의사소통의 단절이 사태의 심각성을 불러왔다고 진단했다. 사이드는 66년 프랑스로 건너와 리용에 정착하여 회계학을 공부하던 중, 외국인 고용과 사회 속에서의 불평등을 목격하고 68년부터 ‘아랍 노동자연맹’에 가입해 활동하다, 지금은 프랑스 인권연맹에서 외국인 불평등 문제와 싸우고 있는 운동가이다. 야간통행금지 법령의 3개월 연장법안의 국회통과와 소요사태 관련자의 국외추방 등과 관련된 사태의 본질을 외면한 정부의 일방적 강경대응방안의 자제를 촉구하는 평화시위가 파리 시내에서 연일 이어지고 있다.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플래카드와 함께 파리 시내를 행진했던 지난 16일의 인종 차별 반대 평화 시위에 이어, 지난 주말에는 이번 사태의 원인이기도 했던 외국인에 대한 고용 불평등의 문제와 맞물려, 이번 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기업 사유화와 공공 민간시설의 지원 감소 등 자유시장경제 정책을 비판하는 평화행진이 열렸다. 사이드는 “계속 이야기되어 온 실업과 주거 교육 등의 부재와 불평등으로 축적된 불만의 폭발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60년대에 부족한 노동력 충당하기 위해 들여놓고도 도시교외의 집단촌에 몰아버리고 돌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나의 활동을 보는 교외지역의 사람들은 ‘당신은 몇 년째 우리를 위해서 싸우지만, 정부는 듣지 않으며, 우리에게 변한 것은 없다’라고 말한다”고 덧붙였다. 시위대열에 함께 한 여교사 몽포흐 뮈리엘은 정부의 교외지역 방임에 대해 사이드의 말을 거들고 나섰다. 그는 지난달 27일 감전사고 전날 사르코지 내무장관이 문제의 “라카이유(racaille, 인간쓰레기)를 쓸어버리겠다”고 발언했던 아르장테이유에서 가까운 즈네빌리의 중학교에서 30년간 역사를 가르쳐왔다. “정부, 30년간 교외지역 방치”“지난 30년간 정부는 교외지역을 방치했다. 교사들은 정부의 대책을 줄기차게 요구해 ‘교육 우선 지구’라는 대책을 이끌어냈지만, 그것은 ‘폭력 다발지역’이라는 꼬리표가 되어버렸다. 내가 일한 곳에선 지난 10년간 2만여개의 유리컵이 깨져 나갔다. 교장과 직접 조사하여 얻은 통계였지만, 어디에도 발표할 수 없도록 금지되어왔다. 그런 현실을 외면하던 정부가 정당한 분노를 표출한 젊은이들의 발언을 강경 진압으로 일관하고 있다.” 뮈리엘의의 견해에 대하여 사이드는 “결국 이번 사태는 교외의 젊은이들이 그 동안 갇혀있던 문제를 수면위로 올려놓은 것”이라며 “그들이 원하는 것은 남들과 같이 평범하게 사는 최소한의 조건, 사회적 관심을 원했다”고 말했다. 철저히 무시되어 온 그들은 ‘우리가 자동차에 불이라도 지르니 우리를 돌아보는 것 아닌가? 불이라도 지르지 않았으면 보기라도 했겠는가?’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교외지역 이민자 2세들의 사회적 불평등은 이미 심각한 수준을 넘어선 것이 사실이다. 프랑스 평균 실업률이 10퍼센트 대인 반면, 교외지역은 40퍼센트를 웃돌고 있다. 교육의 문제 또한 한 학급당 문제가정의 비율이 평균 80퍼센트를 웃돌고 있다. “사르코지가 발언한 ‘라카유’란 말은 교외지역의 젊은이들조차 이 말을 그들만의 식으로 단어의 앞뒤를 바꾸어 '카이예라’(caillera)라고 말하지 직접 그 단어를 쓰지 않는다. 그들 자신을 일컫는 말인 줄 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취급받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이 다른 사람도 아닌 현직 내무부장관의 입에서 나왔으니 그들의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지난 대선 때 시라크 대통령이 르펜을 물리치고 82%로 재선되었을 때 소외지역의 이민자들은 그 82%에 자신이 속해 있다고 믿었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그 속에 속해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결국 소외지역의 젊은이들은 그들의 존엄성을 지키고 싶었던 것이다. 가난하고 음침한 지역이지만 그들은 자신의 지역에 대해 애착을 지니고 있다. 외지인의 시선을 못 견디는 것이다.” 이러한 시선의 문제에 대해 뮈리엘은 “그들은 그들만의 옷차림 말투 습관들이 있다. 그런데 외부인이 그것을 따라 하거나 이야기 하면 그것을 놀림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뮈리엘은 강경일변도의 정부대응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강경대응엔 두 가지 큰 문제가 있다. 첫째, 그 동안의 교외지역의 폭력문제에 대해선 20여 년 방관하던 정부가 이제는 그 원인도 보지 않고 완전 진압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2007년 대선과 관련된 정치인들의 계산에서 온 것이다. 2002년 이후 프랑스인들은 민감지역, 자동차 방화, 치안 위험수위라는 말을 귀가 따갑게 들어 모두 겁을 먹고 있다.” 사이드는 “결국 정부는 국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어 지지를 받고 이번 기회에 교외지역을 쓸어 버리려는 것”이라며 골이 깊은 이런 현실은 결국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한다. 무조건 실형을 주어서 될 일이 아니다. 다른 시위에서 행해지는 주장과 폭력에 대해선 관대한 정부가 왜 유독 이들에 대해서만 강경한가? 물론 폭력은 엄단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어린이들이고 미성년일 때는 신중해야 한다. 소요사태는 특정 지역에서 일어났고, 전체가 아니었다. 이런 사정을 프랑스 국민 대다수는 모르고 있다. 더군다나 그들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선 더 많은 국민들이 모르고 있다. 그런 장애물을 걷어내야 한다.” “시위자 무조건 실형 안돼” 뮈리엘은 자신의 경험을 들어 정부의 실천적 행동을 촉구했다. “30년 전 처음 민감지역에 발령받았을 때, 2년 가까이 나는 밤마다 울었다. 줄기차게 전근을 요청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몇년이 지나면서 그곳 아이들을 이해하게 됐다. 그들은 일대일로 그들의 객체를 존중해주면 늘 친절하고 예의 바른 아이들이다. 그들은 괴물이 아니라 남들과 똑 같은 사람들이다. 다만 가난하기에 대접 받지 못하는 것이다. 앞으로의 10년이 중요하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낙관적이지 못하다. 정부의 새로운 대책에 대해선, 30년 동안 말만 들었다. 실천과 행동을 보고 싶다.” “대화를 해야 한다. 그들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사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사이드는 시위행렬에 전단을 돌리기 위해 자리를 뜨면서 다시 한번 강조햇다. 이날 시위는 자체 추산 2만명이 참여해 파리 남쪽의 이탈리아광장에서 시내 중심가까지 이어졌다. 시위행렬 후미에선 경찰차와 3대의 대형 청소 차량이 시위의 흔적을 말끔히 치우며 따라오고 있었다. 평화 시위가 보장되는 프랑스의 선진사회의 일면이라기보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문제를 다시 수면 아래로 감추려는 것이 아닌가라는 씁쓸한 우려를 낳게 했다. 글·사진 파리/최정민 통신원 jungminchoi73@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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