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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28 14:59 수정 : 2005.11.28 15:36

미크 캐쉬 영국 철도노조 사무차장이 지난 14일 런던 철도노조 사무실에서 철도노조를 찾은 한국 기자들에게 영국 철도노조가 처한 현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노동부 사진 공동취재단 제공

유럽노사현장을 가다(상)-영국편

노사정 관계가 어느 때보다 냉랭하다. 노정 관계는 서로의 뜻을 주고받을 통로마저 막힌 지 오래이며, 지난 10월 노사 대토론회를 기점으로 훈풍을 기대했던 노사관계도 노조간부의 비리 등의 암초에 부딪혀 진전이 없다. 비정규직 관련 법안,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로드맵) 등 우리 사회 발전을 위해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노사정의 과제는 산적해있지만 노사정 관계는 여전히 답보상태를 넘지 못한다. 최근 한국언론재단 후원으로 영국, 프랑스, 독일을 방문해 이들 나라들의 노사정 관계자를 만날 기회를 가졌다. 이를 계기로 이들 나라의 노사관계 및 노사분쟁해결 제도 등이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을 두차례 걸쳐 나누어 싣는다. (편집자)

(상) 노사자율주의 전통-영국
신자유주의 거센 강풍에 앞에 선 노조

신자유주의의 거센 강풍이 세계의 노조를 위협해 온 이래 유럽 각국의 노사관계 시스템에도 변화와 개혁의 바람이 일고 있다. 한 때 ‘세계의 공장’을 자처하던 나라, 영국도 지난 90년대 신노동당(New Labour)을 자처하는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이 당의 현대화를 내걸며 당 내에서 노조의 힘을 약화하는 조처를 취한 이래, 노조의 조직력은 물론 투쟁력도 갈수록 약화하고 있다.

지난 11월 14일 런던의 하늘은 전날의 우중충한 날씨와는 달리 어느 때보다 쾌청했다. 하지만 이날 방문한 철도노조(RMT=철도,항만, 운송산업 등) 쪽 관계자가 전하는 철도노동자들의 날씨는 ‘흐림’에 가깝다. 그들의 삶의 질은 여전히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되려 철도 민영화 이전보다 훨씬 못하다는 게 철도노조 쪽의 얘기다. 철도노조의 미크 캐쉬 사무차장은 특히 “대처(복지 비용 삭감과 과감한 민영화를 추진한 보수당의 철혈총리, 마가렛 대처)이후 철도민영화 여파와 대량해고 등에 따른 고용불안 등으로 노동자들의 삶의 질은 더욱 좋지 않아 왔다”고 말했다. 미크 캐쉬 차장은 현재 철도노조의 목표는 다시 철도산업의 공영화라고 말했다.


이날 현지 언론의 톱 뉴스도 영국 노동자 세력의 처지를 잘 보여주었다. 이날 보수 성향의 일간지 <더 타임스>는 영국 노동당이 당내 노조세력의 약화를 위한 또다른 조처를 계획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 노조의 힘은 근년들어 지속적으로 약화하고 있다. 노동조합 수만도 1979년도 454개에서 2000년에 이르러 218개로 줄었다. 노조 안에서도 합병이 잦다. 현재 대단위 노조인 아미쿠스(Amicus=108만명, 제조업, 기계공업, 에너지, 건설 등), 유니손(Unison=127만명, 지방정부, 의료, 수도, 가스 전력산업 등), TGWU(84만명, 행정직, 사무직, 기술직, 운송, 항만, 운하 등, GMB(68만명, 공공서비스, 국영의료기관, 지방정부, 교육 등) 등 4개 대단위 산별노조가 전체 조합원 수의 53.3%(2001년)를 차지하고 있다. 철도노조의 노조원 수도 현재 7만여명에 이르나 하락추세다. 영국노총(TUC)의 영향력도 약화되긴 마찬가지다.

블레어 정부의 노동정책도 이런 기조에 한몫하고 있다. 블레어 정부는 몇몇 개혁적 조처가 없지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대처 시대의 보수당 정부의 노동정책의 큰 틀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다시말해 보수당 정부 당시 도입한 노동조합을 규제하고 제한하는 법들을 바꾸지 않고 유지하고 있으며, 파업제한 법 조항도 큰 틀에서 변한 것이 없다는 게 대체적인 학자들의 평가이다. 토니 블레어 정부의 노동유연성을 높이기 위한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어느 정도의 성장추세 유지와 독일 등에 비해 낮은 실업률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영국 사회 전반의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 현상을 일으키는 요인이기도 했던 것이다. 철도노조 미크 캐쉬 사무차장은 이와 관련해 “파업을 하기 전에는 7일전에 반드시 알려야 하며, 대체근로도 전면적으로 허용돼 있으며, 노조 하부단위에서 파업을 하더라도 동조파업을 하지 못하게 법으로 규정돼 있다”며 이는 “불공평한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철도노조를 비롯해 영국 노조들이 겪고 있는 이런 안팎의 모습은 11%의 낮은 노조조직률에다 간부비리와 신자유주의 경제구조 등 내우외환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의 노조 조직에도 던지는 시사점이 적지 않다.


미크 캐쉬 영국 철도노조 사무차장이 지난 14일 런던 철도노조 사무실에서 철도노조를 찾은 한국 기자들에게 영국 철도노조가 처한 현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노동부 사진 공동취재단 제공

노사분쟁 해결은 대결보다 알선

노사관계 모델로서로만 본다면 영국은 기본적으로 노사 자율주의 전통이 강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배규식 박사는 영국 노사관계를 들어 노동조합, 단체교섭, 사용자단체 등 영국 노사관계제도는 수십년 혹은 몇세기에 걸쳐 점진적으로 발전해 와 ‘역사적 침전물 혹은 역사의 박물관’으로 불린다고 말했다. 그는 영국의 노사관계 특징으로 국가가 노사관계에 개입하지 않고 특히 단체교섭의 형식, 수준과 구조 등을 규율하지 않고 노사관계를 노사 자율에 맡기는 전통이라고 지적한다. 이 때문에 영국에선 다른 많은 나라에서 존재하는, 중요한 단체협약이란 개념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고 집단적 합의로서 단체협약만이 존재한다는 게 배 박사의 설명이다.

노조와 사용자단체의 명부를 작성하거나 노사 양쪽단체들한테서 연례적으로 회계보고를 받는 영국 CO(Certificate Office)의 제럴드 워커가 지난 15일 런던 브루 하이스트리트에 있는 사무실에서 “80년대 광산노조의 (회계)불투명 문제가 불거지면서 이런 기관이 생겼다”며 기관 탄생 배경을 설명하고있다. 런던/노동부 사진 공동취재단 제공
이런 노사자율주의적 관행은 노사분쟁 해결에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물리적인 대결이나 법적인 절차에 앞서 노사 양쪽의 자체 조율과, 이를 위한 시스템이 매우 발달돼 있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은 특히 물리적 충돌이 잦은 우리의 노사분쟁 문화에 견줘 시사하는 바가 적잖다. 영국에선 고용심판소(employmnet tribunal)가 노사분쟁을 심판하기에 앞서 자발적 분쟁해결을 앞서 이루도록 하는 ‘조정전치주의’가 발달돼 있는 것이다. 특히 이를 위한 기관으로 ‘조언·알선·중재위원회(ACAS)’의 구실은 매우 주목된다.

1960년의 노사관계위원회(Industrial relations service)에서 발전해, 1976년 고용보호법(Employment protetion act)에 의해 설립된 이 기관은 90년대 이후에는 개별적노동분쟁이 늘면서 개별노동분쟁 해결에 주 역할을 하고 있다. 고용심판소에 접수된 분쟁 건의 75% 정도가 ACAS에서 해결된다. 2005년 현재 런던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에 11개 지역사무소를 두고 있다. 채준호씨(영국 워릭대 정치학과 박사과정)에 따르면, ACAS는 비록 예산이 통상산업부(DTI)로부터 지원되지만, 정부조직이 아닌 독립기구로 이 기구의 조정절차에 대해 정부의 공무원은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다.

특히 이 기관의 가장 중요한 분쟁해결 방법은 알선(Conciliation)이다. 2003년 총 알선 건수 10만여건이 접수됐는데 이 중 24%가 고용심판소로 갔고, 76%가 알선단계에서 해결됐다. 특히 집단알선의 경우 알선 성공률은 90%에 이른다. 알선단계에서 ACAS는 노사 양쪽이 법적인 절차에 들어가면 결국 모두 불리하다는 점을 인식시켜 알선단계에서 서로 합의하는 것이 더욱 좋다는 점을 집중 설득한다고 한다. 이 기관은 또 전화상담(Helpline)을 운용해 노사분쟁 예방을 위해서도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는 점도 주목됐다. 14일 방문한 철도노조쪽도 ACAS의 구실에 대해 물어보니 “매우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알선과 함께 ACAS는 중재와 조정을 통해서도 노동쟁의를 해결한다. 노사간의 상생을 진지하게 모색하기 이전에 물리적 충돌 위주로만 치닫는 우리의 노사문화 속에 ACAS와 그 기능은 진지하게 연구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 하겠다. 하지만 이런 조정전치주의가 한편으로는 노조의 파업권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로 악용될 소지가 있기에 경계해야할 대목도 적지 않다고 현지 노조관계자들은 지적한다.

노사 투명성을 위한 감시 제도화

노조와 사용자단체의 명부를 작성하거나 노사 양쪽 단체들한테서 연례적으로 회계보고를 받는 영국 CO(Certificate Office)의 제럴드 워커가 지난 15일 런던 브루 하이스트리트에 있는 사무실에서 “80년대 광산노조의 (회계)불투명 문제가 불거지면서 이런 기관이 생겼다”며 기관 탄생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런던/노동부 사진 공동취재단 제공
ACAS와 함께 눈길을 끄는 영국의 특이한 노사관계 관련 기관은 바로 CO(Certificate Office)이다. 15일 방문한 이 기관은 런던 보루 하이스트리트에 위치하고 있으며, ACAS, CAC(노조의 교섭단체 인정 여부를 가리는 일을 주 업무로 하는 기관)와 같은 빌딩을 사용하고 있다. 역시 통상산업부의 예산지원을 받는 이 기관은 노조와 사용자 단체의 명부를 작성하는 일을 하며, 노조와 사용자단체들은 반드시 CO에 연례적으로 회계보고서와 정치기부금 내역을 제출해야 하도록 돼 있다. CO는 이들 노사 양쪽 기관에 대한 조사도 가능하다. 또, 노조와 사용자 단체가 합병을 할 때도 이 기관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이 기관의 제럴드 워커(Assistant Certicate Ofiicer)씨는 “80년대 광산노조의 불투명성이 불거지면서 노조의 투명성이 요구되는 등 영국의 역사적 배경에 의해 이런 제도가 생겼다”며 1993년부터 CO가 이런 권한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노사의 회계 등에 대한 투명성을 강제하는 기관으로서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 기관 또한 최근 간부의 금품비리로 어려움에 처한 우리나라 두 노총에 시사하는 바가 없잖다. 하지만 노사문제에 대한 지나친 국가개입과 사용자들의 노조에 대한 전근대적인 인식 등이 여전한 한국적 상황에선 이를 그대로 적용하긴 무리라는 게 노동전문가들의 일반적인 해석이다. 런던/<한겨레> 사회부 이창곤 기자 goni@hani.co.kr


2005년 11월15일 런던 시내의 한 골목에 위치하고 있는철도노조 사무실을 기자들이 들어서고 있다. 런던/노동부 사진공동취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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