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2.18 19:58
수정 : 2005.12.18 19:58
2007~2013년 8623억 유로 합의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51) 총리가 숨은 공헌자
2007~2013년 유럽연합 예산안이 우여곡절 끝에 17일 새벽 극적으로 타결됐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25개 회원국 정상들은 이틀간의 줄다리기 협상을 벌여, 2005년 하반기 의장국인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가 제안한 최종 수정안을 받아들이기로 합의했다. 회원국들간 의견차가 커 합의가 어려울 것이란 애초 예상을 깨는 데 숨은 공헌을 한 인물은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51) 총리였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가 18일 보도했다.
이날 타결된 예산안은 △전체 예산규모를 25개 회원국 국민총소득(GNI)의 1.045%인 8623억 유로로 늘리고 △영국이 받을 환급금은 애초 80억유로를 덜 받는 것에서 105억 유로를 덜 받기로 했으며 △중·동유럽 10개 새 회원국들이 받을 지원금액을 영국의 제안보다 70억유로 늘어난 1570억유로로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농업 보조금 축소 문제는 프랑스가 끝까지 버텨 2008~9년에 삭감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프랑스는 유럽연합 농업보조금의 최대 수혜자로, 연간 100억 유로의 혜택을 받고 있다.
예산분담금 환급금을 예전과 똑같은 규모로 받으려 하는 영국, 농업보조금 축소에 반대하는 프랑스, 새 회원국 개발 지원 규모를 늘리라고 요구하는 폴란드 등 각기 주장과 이해관계가 다른 회원국들 사이에서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유럽연합 내에서 늘 정면으로 맞부닥치는 블레어 총리와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분담금 환급금 추가 축소’와 ‘농업보조금 감축을 위한 예산안 재검토’ 방안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조용히 두 정상을 밀어붙인 것이 바로 메르켈 총리였다. 협상의 돌파구는 16일 점심때 메르켈 총리가 새 회원국들의 지원금을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열리기 시작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총리는 시라크 대통령과 함께 영국을 압박하곤 했었다. 반면 메르켈 총리는 두 나라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아, 중재자로서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볼프강 쉬셀 오스트리아 총리는 “메르켈이 막후에서 놀랍게도 중요한 일을 했다”고 말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전했다. 트라이안 바세스쿠 루마니아 대통령은 “메르켈 총리가 교착상태를 깨고 처음부터 끝까지 협상을 중재했다”고 말했다.
신규 가입국 지원금 축소를 골자로 한 블레어 총리의 수정안에 반대하는 나라들의 중심에 있었던 폴란드의 마르친키에비치 총리는 “메르켈 총리가 마지막 순간에 폴란드에 1억 유로가 넘는 예산을 안겨줬다”며 “이는 가장 아름답고 멋진 연대의 손짓”이라고 말했다.
외교관들은 메르켈 총리가 정상회의 데뷔무대에서 자국의 재정적자가 늘어난다는 우려가 있음에도, 유럽연합 전체 예산규모를 늘리자고 제때 제안함으로써 중개자 구실을 훌륭히 해냈다고 평가했다. 메르켈 총리로선 독일 내에서 또 유럽의 돈줄을 자임했다는 비난 대신 유럽을 위기에서 구했다는 명성을 얻는 것으로 감수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블레어 총리는 분담금 환급금 규모를 양보한 것을 두고 국내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환급금 규정은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두번째로 가난했던 시절인 1984년 마거릿 대처 전총리가 확보한 것으로, 영국이 유럽연합에 낸 분담금과 유럽연합에서 받은 지원금의 차액의 3분의 2를 돌려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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