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2.20 19:16
수정 : 2005.12.20 19:16
벨기에 총리 “‘유로화 쓰는 나라’ 먼저 통합” 저서
유럽연합이 잇단 악재로 통합 작업에 브레이크가 걸리더니, 급기야 ‘핵심 유럽’끼리만 뭉치자는 ‘분할론’이 나오고 있다. 분할론은 프랑스, 독일, 벨기에 등 ‘옛유럽’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은 19일 “25개 회원을 가진 유럽 클럽은 너무 부피가 크다”며 “해법은 ‘클럽 안의 클럽’을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잡지는 “지난해 5월 중·동유럽 10개국을 새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기 전에는 유럽연합의 모습과 나아갈 방향에 대해 근본적인 의견일치를 찾을 수 있었다”며 “지금은 부피가 너무 커져, 희망이 없는 혼란만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기 베르호프스타트 벨기에 총리는 최근 펴낸 저서 <유럽합중국, 새 유럽을 위한 선언>에서 유로존(유럽연합에서 유로화를 공식적으로 쓰는 나라들-오스트리아·벨기에·핀란드·프랑스·독일·그리스·아일랜드·이탈리아·룩셈부르크·네덜란드·포르투갈·스페인)에 가입한 12개 나라를 중심으로 유럽통합 논의를 이어가는 것이 정체에 빠진 유럽통합 논의를 살릴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유로존이 현존하는 체제이고 △회원국들이 자국 통화정책 기능을 포기하며 통합의 수위를 높였고 △기준을 충족시키면 누구든 받아들일 수 있으며 △저성장·고실업이라는 공통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이런 분할론이 나온 배경으로는 정치·경제적 통합 수단 마련 작업이 큰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데다, 유럽연합을 대하는 회원국들간 시각 차이가 확연히 갈라지고 있는 점 등이 꼽힌다. 지난 5월과 6월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유럽연합 헌법 비준이 결렬된 뒤, 회원국들은 정치적 통합을 위한 틀을 잃었다며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주말 수차례 결렬 위기를 맞다 극적으로 통과된 2007~13년 예산안에는 공동 경제정책 관련 논의는 아예 빠진 채 큰 틀의 예산 규모만 명시됐다. 역내 공동 안보정책도 별 진전이 없다.
유럽연합이 경제침체에 빠진 최근에는 그 해법을 두고 회원국들간 시각 차이도 크게 벌어지고 있다. 회원국들은 북유럽식·대륙식·영국식·지중해식 등 4가지 모델을 놓고 서로 자신들의 방식의 우월성을 주장하고 있다. 영국과 북유럽은 유럽연합을 거대한 ‘자유무역지대’쯤으로 여기는 반면, 독일·프랑스·벨기에·룩셈부르크는 역내에서 시민 복지나 사회적 가치들을 강조하려 한다. 폴란드와 체코 등 옛 공산권 국가들은 유럽연합 기구들에 일부 주권을 이양하기를 꺼려 하며, 특히 안보 관련 공동정책에 동참하는 데는 더욱 조심스런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유럽중앙은행(ECB)에 통화정책을 넘긴 유로존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핵심 유럽’끼리 공동체를 형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떠오르고 있다. 경제정책에서 다른 영역들로 통합 수위를 넓혀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파이낸셜타임스> 칼럼리스트 볼프강 문초는 지난 11일 “프랑스와 독일이 이 주장을 지지할 것으로 보이고, 내년 봄 이탈리아 총선에서 전 유럽연합집행위원장인 로마노 프로디가 총리에 당선되면 여기에 동참할 것”이라고 보았다. 벌써 내년 하반기에 첫번째 유로존 정상회의를 여는 것이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장-클로드 융커 룩셈부르크 총리는 이 주장에 공감하면서도 적어도 2007년까지는 이 논의를 발전시키기에 시기상조라는 견해를 밝혔다. ‘핵심 유럽’의 주축이 될 프랑스와 독일에서 어떤 변수가 생길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2007년에 임기가 끝난다. 또 지난주 유럽연합 예산 논의에서 성공적인 중개자 구실을 했던 독일이 2007년 상반기 유럽연합 순번제 의장국이 된다.
<한겨레> 국제부 윤진 기자
mind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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