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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들의 격렬한 항의 유럽 신문들의 마호메트 풍자 만화 게재에 항의하는 인드네시아 무슬림 사위대가 3일 자카르타 덴마크대사관에 난입하자 경찰이 이들을 막고 있다. 150여명의 시위대는 경비원들을 제치고 덴마크 국기를 불태웠다. 자카르타/A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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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각국 신문 게재 맞서 무슬림 봉기 양상
대사관 습격·불매운동·시위 촉구 등 잇따라
“문화존중·표현의 자유 한계 성찰을” 지적도
이슬람 예언자 마호메트 풍자만화를 둘러싼 이슬람과 서유럽의 갈등이 정면대결로 치닫고 있다. 스페인·이탈리아·프랑스·독일·네덜란드·노르웨이·스위스 신문들이 잇따라 문제의 만화를 게재하고, 프랑스의 <르몽드>도 1면에 마호메트를 묘사한 만화를 싣자, 이슬람권의 항의가 ‘비등점’을 넘어섰다. 인도네시아 이슬람주의자 150여명은 3일 자카르타의 덴마크대사관을 습격했다. 이들은 경비원들을 제치고 대사관 안으로 들어가 덴마크 국기를 불사르고, “덴마크 대사를 죽이자”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대사관 정문에 내걸었다. 파키스탄 의회는 이날 문제의 만화를 실은 유럽 언론들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아크바르 라프산자니 전 이란 대통령은 테헤란에서 열린 금요기도회에서 “이번 사태는 이슬람 교도에 반대하는 (서방의) 조직적 전략”이라고 비난했다. 이슬람권의 분노는 1988년 마호메트를 냉소적으로 그린 영국 작가 살만 루슈디의 <악마의 시> 파문 이후 가장 격렬하게 표출되고 있다. 당시 이란 최고지도자 호메이니는 전세계 무슬림들에게 루슈디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루슈디는 결국 도망자 신세가 됐다. 이번에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선 2일 무장세력들이 유럽연합 사무실을 에워싸고 유럽인들을 납치하겠다고 위협했다. 중동 지역에선 덴마크 유제품 회사 아를라와 장난감 회사 레고, 제약회사 노보 노르디스크 등 덴마크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이 번지고 있다.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덴마크 총리는 2일 아랍 위성방송 <알아라비아>에 출연해 “덴마크인들은 이슬람을 포함해 모든 종교를 존중하며 이슬람을 모욕할 의도가 결코 없다”며 진화작업에 나섰다. 그러나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은 “유럽 신문들이 문제의 만화를 다시 실어 무슬림들의 감정에 불을 질렀다”며 “테러리스트들에게 공격의 빌미를 주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내무장관인 나예프 왕자도 “이 만화는 모든 무슬림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사태는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는 유럽과 ‘이슬람 전통과 원칙’을 지키려는 이슬람 세계 사이의 넓은 문화적 간극을 상징한다. 이슬람 전통에선 신은 물론 마호메트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것은 ‘우상화’의 위험 때문에 금기다. 게다가 무슬림들에게 이번 만화는 마호메트를 테러리스트로 묘사한 ‘신성모독’으로 받아들여진다. 세속주의와 근대주의 영향으로 ‘신성모독’이란 개념이 사라진 서구와 달리 이슬람권에선 정교일치가 강하게 유지되면서 종교가 삶의 모든 영역에 큰 영향을 끼친다. 이라크 침공으로 서구와 이슬람권의 갈등이 커진 상태에서 무슬림들의 분노에 불을 붙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부터 서유럽 곳곳에서 확산된 반이슬람 정서도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지난해 이슬람의 여성차별을 비판한 네덜란드 영화감독의 피살, 런던 폭탄테러, 파리 교외 이민자 소요사태 등으로 무슬림 공동체 문제가 유럽의 가장 큰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민감한 시기에 이번 사태가 터졌기 때문이다. 유럽의 무슬림 인구는 1500만명을 넘어섰다. 이번 만화가 처음으로 실린 덴마크에선 이민자 규제를 강하게 주장하는 우파 정당들이 큰 영향력을 갖고 있어, 이번 사태를 단순히 문화적 충돌로만 볼 수는 없다. 영국 <가디언>은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해서 나치의 반유대 만화나 포르노를 싣지 않는 것처럼 표현의 자유도 한계가 있다”며 “일부 유럽 언론들이 도전적으로 문제의 만화를 싣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언론의 자유는 종교적 믿음과 교리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행사되어야 한다”고 논평했다. 박민희 유강문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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