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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살·가즈프롬 등 인수합병 공룡기업 탄생
재국유화도 가속화…‘국가자본주의’ 지적
성장하고 있는 러시아 경제와 ‘세계 챔피언’을 키우려는 러시아 정부의 의지가 또 공룡 기업을 만들어냈다. 러시아 1·2위 알루미늄 생산업체인 루살과 수알이 최근 합병을 발표해, 세계 금속산업계에 판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러시아 1위가 세계 1위=루살은 수알과 함께 스위스 금속업체인 글렌코어의 알루미늄 사업부도 인수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러시아는 세계 알루미늄의 11.7%를 만드는 1위 업체를 갖게 된다. 루살 경영진은 추가적인 외국기업 인수 등으로 덩치를 불려, 세계 최대 광산업체인 비에이치피빌리톤과 같은 기업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루살은 국영기업은 아니지만, 이번 인수는 러시아 정부의 의도에 따라 이뤄졌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에너지를 비롯한 전략산업에서 세계 최대 기업들을 만들려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얘기다.
천연가스를 생산·유통하는 국영기업 가즈프롬은 지난해 민간 석유업체 시브네프트를 인수하고, 지난 5월 엑손모빌과 제너럴일렉트릭에 이어 시가총액 3위에 올라 주목을 받았다. 가즈프롬이 보유한 석유와 배럴로 환산한 천연가스 양은 1160억배럴로, 나라로 치자면 사우디아라비아(2630억배럴)와 이란(1330억배럴)에 이어 3위다.
러시아의 방대한 석유자원은 3만5천여㎞의 송유관을 운영하는 트랜스네프트를 세계 1위의 송유관업체로 키웠다.
2004년 탈세와 횡령사건에 휘말리면서 어려움에 빠져 지난달 파산선고를 받은 민간업체 유코스의 핵심사업 부문을 인수한 국영 석유업체 로즈네프트는 가즈프롬, 트랜스네프트와 함께 에너지산업의 삼각축을 이루며 성장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이밖에 철강, 자동차, 원자력, 항공 등의 분야에서 ‘재국유화’를 가속화하며 세계적 규모의 기업들을 만드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1990년대 파산 지경에 빠진 국가경제 상태에서 싼값에 민간에 넘어간 기업들이 정치적·경제적·사법적 수단을 이용하는 정부의 ‘품’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러시아 경제에서 국영기업들의 비중이 지난해 30%에서 올해는 35%로 늘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내각 구성원 11명이 6개 회사의 회장을 맡으며 12개 회사의 이사회에 포진하고, 고위관료 15명이 6개사 회장과 24개사 이사진에 들어가 있는 점 때문에 ‘기업 국가’ 또는 ‘국가 자본주의’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외국업체 인수…마찰도=몸집을 불린 러시아 거대기업들은 외국업체들을 탐내고 있다. 가즈프롬은 영국 가스업체 센트리카 인수를 시도하고 있다. 이에 영국 정치권에서 에너지안보 위기론을 들고 나오면서, 영국과 러시아가 외교 마찰을 빚기도 했다. 가즈프롬 경영진은 세계 4위의 전력업체인 프랑스의 가즈드프랑스와 수에즈의 합병 과정에도 개입할 의향을 내비쳤다.
미국 5위, 이탈리아 2위의 철강업체를 인수한 러시아의 세베르스탈은 세계 1위 철강업체로 발돋움할 기회를 아쉽게 놓쳤다. 세베르스탈은 애초 세계 2위인 룩셈부르크 아르셀로의 유력한 인수 후보로 떠올랐으나, 막판에 미탈스틸에 고배를 들었다. 유럽 언론 등은 정부의 직·간접 영향 아래 놓인 러시아 거대기업들에 대해 투명성이 부족하다며, 국유화 과정에 불법이 동원된다는 비난을 내놓고 있다. 주요 산업들의 외국인지분을 50% 미만으로 해놓은 것도 불만을 사고 있다. 크레믈린궁의 드미트리 페스코프 부대변인은 전략산업들이 “러시아와 같은 크기의 나라에서는 죽느냐 사느냐를 결정짓는 산업”이라고 반박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외국 기업들은 자원 확보를 위해 이들 기업의 주식을 사는 데 열심이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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