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5.21 17:56
수정 : 2007.05.21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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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인수·합병 거래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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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들 무차별 합종연횡, 올들어 2조달러 돌파 60% 상승
절반이 가치창출 실패, 거품붕괴 우려
현기증 나는 인수·합병(M&A)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자고 나면 대형 인수·합병 소식이 언론의 머릿기사로 장식하는 날이 허다하다. 국적과 업종을 안 가리는 인수·합병 바람의 이유는 무엇이고 종착점은 어디일까?
사상 최대 인수·합병 바람=이탈리아 최대 은행인 유니크레딧은 20일 캐피탈리아은행을 295억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유로화 사용 경제권의 최대 은행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날 투자업체인 골드만삭스와 텍사스퍼시픽그룹은 미국 이동통신업체 알텔을 275억달러에 사들이기로 했다.
이런 움직임에 힘입어 올해 세계 인수·합병 규모는 이달 들어 2조달러(약 1868조원)를 돌파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0% 늘었다. 지난해 3조4900억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갱신한 데 이어 올해 4조달러를 훌쩍 넘길 것으로 보인다. 이달 들어서만 경제정보업체 톰슨이 로이터를 172억달러에, 하이델베르크시멘트가 핸슨을 155억달러에, 사모펀드 서버러스는 크라이슬러를 74억달러에 사들이기로 했다. 알루미늄 생산업체 알코아는 알칸을 269억달러에 매수하려 하고, 마이크로소프트와 야후의 합병 소문까지 나돈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몇백억달러의 인수·합병을 준비 중이라고 말해 달아오른 시장에 기름을 부었다.
1999~2000년 미국을 중심으로 분 인수·합병 바람과 견줘 최근 흐름은 여러 면에서 다르다. <블룸버그> 통신은 올해 유럽의 인수·합병 거래총액이 1조2000억달러로 미국(9610억달러)보다 많다고 집계했다. 특히 영국 바클레이은행 등의 네덜란드 은행 에이비엔(ABN)암로 인수전은 870억달러 규모로 사상 최대의 금융업 인수 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열기는 아시아로도 전해져, 기업 매매에 돈을 대는 서구 금융업체들의 진출이 눈에 띄고 있다. 1~4월 국경을 넘는 인수·합병 규모는 전체의 46%로 역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정보기술산업이 중심이던 1990년대 말과는 달리 최근 인수·합병은 업종을 가리지 않는다. 업종별 세계 최대 규모의 기업이 뛰어들거나, 최대 기업을 탄생시키는 합종연횡이 이뤄지고 있다. 사모펀드가 적대적 인수·합병을 주도하고 나섰다는 점도 눈에 띈다.
‘광풍’의 끝은?=지금처럼 조건들이 기업 사고팔기에 최적인 때는 드물다. 저금리에 유동성이 풍부하고, 세계화 속에 투자장벽은 낮아졌다. 인수·합병 기대가 피인수기업은 물론 인수 세력 주가까지 끌어올린다. 높은 주가가 인수·합병에 에너지를 대고 인수·합병은 다시 주가를 띄우는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하지만 언젠가는 ‘파티’가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경고음도 나온다. 인수·합병의 절반 가량이 애초 기대한 가치 창출에 실패한다는 추계도 있다. 크라이슬러를 360억달러에 샀다가 74억달러에 되파는 다임러의 실패 사례가 대표적이다.
더 큰 문제는 열기의 급속한 냉각이 개별 자본의 실패를 뛰어넘어 금융시장에 두루 악영향을 끼치는 ‘M&A발 경기침체’다. 시티그룹 통계로, 2000년까지 50%에 못 미치던 인수·합병 시장의 현금 사용 비율은 지난해 75%에 달했다. 주식교환 방식보다는 싼 이자와 미래 이익을 믿고 차입으로 인수 자금을 마련하는 경향이 강화됐다는 얘기다. 헤지펀드나 사모펀드 등 인내심 부족한 자본이 불안정성을 높인 점도 걱정거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일 낸 보고서에서 사모펀드의 활동이 국제 금융질서의 왜곡을 불러오고 있다고 지적하고, 미국 의회도 최근 사모펀드의 인수·합병 시장 참여의 악영향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이코노미스트>는 “대부분의 은행가들이 겉으로는 (인수·합병 성사를 축하하며) 계속 잔을 부딪히겠지만, 사적으로는 인수·합병 행진이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얘기한다”고 전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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