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6.04 18:53
수정 : 2007.06.04 20:48
|
런던주식거래소의 한 중개인이 전화를 받으며 시황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
뉴욕, 증시 상장기업 수 곤두박질
런던, 유럽 금융시장 약진
‘세계의 금융 수도’ 뉴욕에 황혼이 깃들고 있다.
엘리엇 스피처 뉴욕주 주지사는 지난달 29일 “세계 금융자본 수도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노력을 돕기 위해” 전문가들로 자문위원회를 꾸리겠다고 밝혔다. 그는 규제·정책 재검토와 입법활동으로 뉴욕의 ‘영광’을 지키겠다고 선언한 것으로 <블룸버그> 통신이 보도했다.
지난 1월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과 찰스 슈머 상원의원이 “엄한 규제와 높은 피소 위험”이 뉴욕 금융시장을 런던 등의 경쟁도시들보다 불리하게 만들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낸 데 대한 응답이다. 산업혁명 이래 ‘세계의 금융 수도’로 군림하다가 1차대전 이후 뉴욕에 자리를 내준 런던으로선 100여년만에 예전의 영화를 되찾을 호기를 맞았다는 얘기가 된다.
뉴욕의 거듭된 ‘S.O.S’ 요청은 런던을 필두로 한 유럽 금융시장의 약진에서 비롯했다. 지난해 미국 증권시장의 기업상장 규모는 458억달러(약 42조5천억원)에 그쳤다. 530억달러를 기록한 중국은 물론, 483억달러에 이른 영국한테도 뒤졌다. 그 격차는 올해 더욱 벌어져, 지금까지 유럽은 378억달러, 미국은 212억달러로 집계됐다. 런던증시 상장기업 수는 2004년 이후 14.8% 증가한 반면, 뉴욕증시는 0.6% 줄었다.
|
2004년 이후 상장기업 수 증감 / 기업 인수·합병 규모 / 표시 통화별 재권잔액
|
미국 증권업계에서는 2002년 기업 투명성 강화를 위해 마련된 사베인스-옥슬리법이 국내외 기업들을 뉴욕증시에서 멀어지게 한다는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뉴욕증시가 빛을 잃어가는 데는 달러화 약세 행진 등 미국 경제의 전반적 영향력 약화 조짐도 관련이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러시아와 중국, 중동 기업들이 뉴욕보다는 런던증시 시세판에 이름이 오르기를 원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올해 런던증시에서는 러시아 은행 등이 70억~80억달러 규모 기업공개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뉴욕증시에서는 사모펀드 블랙스톤의 47억5천만달러 규모 기업공개가 올해 최고액이 될 전망이다.
은행 쟁탈전도 흥미롭다. 스코틀랜드왕립은행 컨소시엄은 최근 영국 바클레이은행의 제시액보다 85억달러 많은 955억달러에 네덜란드 은행 에이비엔암로를 사고 싶다고 밝혀, 사상 최대의 은행 인수전이 더욱 달아올랐다. 유럽 은행들의 몸집불리기는 세계시장의 판도 변화를 예고한다. ‘사냥감’인 에이비엔암로는 그 자회사를 포함해 미국 등 세계 53개국에서 영업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제도를 고쳐가면서까지 회원국의 인수·합병 간섭을 제동시켜 금융 강자 만들기에 힘을 보태고 있다. 한 미국 은행 분석가는 <비즈니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유럽 은행들이) 왜 (미국의) 시티그룹에 먹히기를 기다리고 있겠느냐”고 말했다. 유럽 은행들의 움직임에는 미국 자본에 대한 견제 의도가 깔려 있다는 얘기다.
금융시장 열기는 인수·합병시장과도 연결된다. 지난달까지 유럽의 인수·합병 거래총액은 1조2000억달러로 미국(9610억달러)보다 많다. 단일시장 유럽의 자본 이동과 금융시장 발달의 결과다. 유로화 표시 채권잔액은 지난해 달러화 표시 채권잔액을 앞질러, 채권시장에서는 유로화가 으뜸가는 통화로 올라섰다.
헨리 폴슨 미국 재무장관은 증권 관련 법률을 간소화하고 주주소송을 제한해야 미국 금융시장이 외국과 경쟁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아메리칸대의 하워드 워치텔 교수는 “월스트리트는 어떤 규제도 경쟁에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항상 주장하는데, 나는 그런 주장에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그보다 미국 금융시장의 세계 제패에는 유럽보다 높았던 경제성장이 주효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로화를 사용하는 13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2.7%로, 미국(2.1%)을 앞지를 것으로 내다본 지난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보고서는 미국 금융시장에 더욱 불길한 소식이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