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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외 인수·합병 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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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들어 벌써 120조원…‘먹고 먹히기’ 판세 올 첫 뒤집힐듯
‘자본의 역류!’ 전세계 인수·합병 시장에서 개발도상국들의 공세가 심상찮다. 시장조사업체 딜로직의 집계를 보면, 올해 개도국 업체들의 선진경제권 기업 사들이기 규모는 1280억달러(약 119조원)에 이른다. 선진경제권의 개도국 기업 인수(1300억달러)와 비교해 20억달러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뱅크오브아메리카 자산운용의 수석시장전략가 조지프 퀸런은 올해 양쪽 진영의 상대에 대한 인수·합병 규모가 처음으로 역전될 것으로 내다봤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17일 보도했다. 이런 상황은 브릭스를 비롯한 신흥개발국과 중동 기업들의 왕성한 식욕에서 비롯했다. 카타르의 국영투자펀드가 지난 7월 218억달러를 들여 영국 3위의 유통업체인 세인즈베리를, 브라질 발레도리오도세가 캐나다 니켈 업체 인코를 인수했다. 대만의 에이서는 미국 피시 업체 게이트웨이를 인수한다고 발표했고, 인도의 타타그룹은 포드자동차의 재규어·랜드로버 브랜드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고성장·고유가 힘입어 브릭스·중동 기업이 주도미국 신용경색도 호기…정서적 반감 직면하기도 개도국 진영의 외국 기업 사냥에 가속도를 붙이는 것은 높은 경제성장과 고유가, 주가 상승 등이다. 눈에 띄게 늘어나는 굵직한 거래들은 에너지와 선진 기술, 숙련 노동력을 확보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외환보유고가 두둑한 나라들이 국가 차원에서 대외 확장에 나선 것도 큰 몫을 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카타르 투자청이 런던증권거래소 지분 30% 인수도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이 신설한 국가외환투자공사의 일거수일투족에도 눈길이 쏠린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이 불러온 신용경색도 개도국 기업들한테 호기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기록을 경신할 것으로 보였던 세계 인수·합병시장 규모는 이번 사태의 충격으로 움츠러들 기색이다. 인수·합병 열풍을 주도해 온 미국 사모펀드들은 대출금리 상승과 신규대출의 어려움으로 섣불리 나서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자금조달이 쉬운 아시아 기업 등은 경쟁자가 줄어 비교적 싸게 외국 기업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됐다. 달러 약세는 미국 기업들의 값을 더 낮춘다. 골드만삭스의 아시아 지역 인수·합병지사 대표 요한 레벤은 “신용 위기 발생 뒤 아시아 기업들의 상대적 입지가 강화됐다”며 “이들에게 미국과 유럽의 인수 목표물이 더 매력적인 조건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개도국 쪽의 선진경제권 기업 인수에는 늘 정치적 반발이 따른다. 일본의 미쓰비시부동산이 1989년 미국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뉴욕 록펠러센터를 사들였을 때 나온 “제2의 진주만 공습”이라는 반응과 비슷한 정서적 반감도 일고 있다. 일본 정부는 무기 제조에 쓰일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의 지분을 외국 기업이 10% 이상 인수하려면 30일 전에 신고하도록 법을 고쳐 28일부터 시행한다. 신일본제철·소니·도시바 등 일본 기업들의 10%가 적용 대상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정치적 동기의 인수·합병에 맞서려면, 미국의 외국인투자위원회처럼 안보 분야의 외국인투자를 심사할 기구를 유럽연합(EU)이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에너지시장 경쟁 촉진을 추진하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내부문건에서 러시아와 알제리 국영기업들이 유럽 가스유통 사업에 진출하려는 데 우려를 나타냈다고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이 18일 보도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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