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1.23 19:32
수정 : 2007.11.23 19:32
오일머니 빨아들이기…이자 대신 수익·손실 나누는 방식
유가 상승으로 이슬람권에 오일 달러가 넘쳐나면서 서구 주류 은행들의 이슬람 금융업 진출이 활발하다.
<뉴욕타임스>는 22일 시티그룹, 에이치에스비시, 도이치뱅크 등 대형은행들이 샤리아(이슬람 율법)에 따라 운영되는 이슬람식 은행 개설에 뛰어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세계적으로 이슬람 금융기관 300여곳이 자산 5천억달러(약 464조원)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의 자산규모는 해마다 10%씩 성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슬람 은행의 증가는 유가 상승으로 아랍권에 오일 달러가 넘쳐난 데 따른 것이다. 현재 1조5천억달러에 이르는 이들 자금을 두고 국제 금융권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오일 달러는 그동안 미국과 영국, 스위스 등 서방국가에 주로 예치됐다. 그러나 2001년 9·11 동시테러 이후 미국 등 서방국가들이 자금 흐름에 대한 통제와 감시를 강화하면서 아랍의 부호들이 아시아 등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아시아 경제의 급성장이 이런 추세를 부추겼다. <뉴욕타임스>는 그동안 8천억달러의 오일 달러가 미국과 유럽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간 것으로 추정했다.
특히 말레이시아가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현재 12%를 차지하는 이슬람 금융의 비중을 2010년까지 20%로 늘린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세계 자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중국에 맞서 오일 달러 유치로 특화하겠다는 것이다. 1990년대 초 첫 이슬람 채권 ‘수쿠크’를 개발한 말레이시아는 2002년 국제금융 시장을 상대로 6억달러 규모의 수쿠크를 발행한 바 있다. 현재 국제금융 무대의 수쿠크 시장은 822억달러 규모로 커졌다. 유가의 고공행진과 함께 수쿠크를 포함한 이슬람 금융시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돈놀이를 엄금한 코란의 율법에 따라 이슬람 은행에는 ‘이자’ 개념이 없다. 대신 이슬람 은행은 채무자와 함께 ‘수익’과 ‘손실’을 나눈다는 개념에 따라 자금을 운용한다. 예컨대 집을 사기 위해 대출을 받으면, 대출자는 매달 원금 일부와 이자를 은행에 갚아나가는 것이 아니다. 은행이 대출자 대신 집을 사서 대출자에게 약간의 이익을 덧붙여 되판 뒤 대출자에게 매달 갚아나가도록 한다는 개념을 사용한다. 기업에 대출할 때도 마찬가지다. 기업에 적용되는 금리는 금융시장의 금리가 아니라 대출받은 기업의 ‘수익률’에 연동된다. 은행이 투자자처럼 기업의 수익 중 일부를 받는다는 개념이다. 또 이슬람 은행은 술과 마약, 도박, 무기 등에 대한 투자가 금지되고 있다.
박병수 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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