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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2.09 21:03 수정 : 2007.12.09 21:05

원유결제 독점하려…미 정치·군사압박 ‘30년 전쟁’
보유달러 타격우려…베네수엘라 빼곤 유보적 자세

석유거래의 달러 결제를 완전 중단했다는 이란의 선언으로, 약세에 시달리는 달러의 지위에 또다른 흠집이 나게 됐다.

달러가 누려온 기축통화의 위상은 상당부분 달러가 독점적 원유결제 통화라는 점에서 비롯한다. 따라서 석유와 달러를 분리하려는 이란의 시도는, 그러지 않아도 추락하고 있는 달러의 위상에 타격이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란의 ‘탈 달러’ 선언의 표면적인 명분은 경제적인 이유다. 원유수출로 벌어놓은 달러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가만히 앉아서 손해만 보는 상황을 두고만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달러는 올해 들어서만 주요 통화 바스켓 대비 16% 이상 떨어졌다. 그러나 핵개발을 놓고 대립하는 미국에 경제적 타격을 입히는 정치적 목적도 크다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나온다.

달러가 원유시장의 결제통화이기 때문에 누리는 혜택은 엄청나다. 모든 나라들이 산업의 생명선인 원유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양의 달러를 확보하지 않을 수 없다. 달러는 전세계 외환보유고의 70% 남짓을 차지한다. 천문학적인 재정적자를 겪는 미국은, 이러한 막대한 달러 외환보유 덕에 싼 값에 채권을 발행해 적자를 메워 왔다. 원유 결제 통화가 다른 통화로 바뀌어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이 보유한 3조 달러를 대량 내다파는 상황은 미국으로서는 악몽이다.

미국은 달러의 독점적 지위를 지키려고 정치·군사적 압력도 불사했다. 1971년 미국이 달러의 금태환을 정지하자, 한때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들은 달러 결제를 거부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당시 리처드 닉슨 행정부는 이를 막으려고 엄청난 외교적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몇몇 전문가들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원인이, 3년전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석유수출 대금 결제를 달러에서 유로로 바꿨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은 이라크 점령 뒤 석유수출 대금 결제를 달러로 되바꿨다.

이란은 향후 뉴욕상품거래소(NYMEX)와 런던국제석유거래소(IPE)와 경쟁할 만한 국제 석유시장 건립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상품거래소와 런던국제석유거래소의 경우 서부텍사스 중질유와 브렌트유, 두바이유 등이 달러로 표시되는 기준 원유 노릇을 하고 있다. 이란은 여기에 유로로 표시되는 네번째 기준 원유를 만들 계획이다.

그렇지만 이란의 ‘탈 달러’ 시도가 달러 패권에 당장 어떤 영향을 끼칠지 속단하기는 이르다. 열쇠는 다른 산유국의 동참이다. 이란은 41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는 세계 4위 산유국이지만, 세계 수출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에 그친다.

아직까지 ‘반미국가’ 베네수엘라 등을 빼고는 반응이 시큰둥하다. 지난달 석유수출국기구(오펙) 정상회의에서도 이란은 원유가치 표시를 달러가 아닌 복수의 바스켓 통화로 하자는 제안을 내놓았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달러 가치의 폭락을 우려한 것이다. 올해 유가상승으로 오펙 회원국이 벌어들인 6580억 달러가 자칫 한순간에 ‘반토막’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펙 내부에서도 달러 하락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 쿠웨이트는 지난 5월 달러 하락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을 견디다 못해, 달러 고정환율제를 버리고 복수 통화 바스켓제를 도입했다.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연합도 달러 고정환율제 포기를 검토하고 있다. 지난달 오펙 정상회의도 이란의 바스켓 통화 제안을 거부하면서도 “일부 정상의 제안을 포함해 오펙 회원국간 경제 협력을 증진하는 방법을 연구할 것”이라며 달러 약세에 대한 공동대응의 여지를 남겨 놓았다.

박병수 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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