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1.16 20:24
수정 : 2008.01.16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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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분기별 국내 총생산 증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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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쇼크에 소비·고용 둔화’ 위기징후 동시다발
서브프라임 영향 본격화…스태그플레이션 우려도
미국 경제가 연초부터 뚜렷한 경기 둔화 내지 침체의 증상을 보이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파동에 ‘면역’을 보이던 영역들에 ‘감염’의 징후가 분명해져, 가장 덩치가 큰 경제의 부진이 세계 경제에 끼칠 영향이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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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체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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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그룹이 196년 역사에서 최대 규모 손실을 봤다는 소식은 메릴린치를 비롯한 다른 대형 투자은행들도 지난해 3분기에 이어 4분기에 대규모 투자 손실을 발표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월가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월가 투자은행들의 서브프라임 투자 손실은 1천억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투자은행들이 주주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전례없는 규모의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는 것은 그만큼 사정이 다급함을 뜻한다. 일각에서는 월가 은행들이 1930년대 대공황 수준의 수익률을 나타내기 시작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시티 쇼크’가 휘청이는 미국 경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면, 미 상무부가 같은 날 발표한 소매판매 실적 부진은 본질적인 우려를 키운다. 지난해 6월 소매판매가 0.8% 감소한 적이 있어, 이번 수치가 일시적인 심리적 위축의 결과이기를 바라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2006년의 주택경기 정점에 견줘 6~7% 떨어진 집값이 15~20% 추가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에서, 이번 하락은 지출 여력이 급감한 결과라는 해석이 붙고 있다. 카드업체 아메리칸익스프레스의 대변인 마이클 오닐은 “집값이 가장 많이 떨어진 플로리다와 캘리포니아에서 지출이 가장 줄었다”고 말해, 주택경기가 소비에 본격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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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민이 15일 ‘50% 할인’광고가 내걸린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상점 앞을 지나가고 있다. 샌프란시스코/A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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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는 미국 경제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소비가 서브프라임 사태 와중에도 ‘최후의 보루’ 역할을 했기 때문에 소비 부진이 주는 충격파는 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분기 기준으로 보면, 미국인들은 닷컴거품 붕괴에 이어 9·11테러가 일어난 2001년에도 소비를 줄이지 않았다. 퓨리서치센터 조사에서 경제에 대한 소비자 만족도는 15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12월 미국 실업률은 전달보다 0.3% 치솟은 5.0%로 집계돼 고용마저 불황의 늪에 빠지고 있다. 소비-고용-성장률이 영향을 주고 받으며 서로를 끌어내리는 전형적인 경기하강 국면의 모습이다. 시티그룹이나 아메리카은행 등은 수백~수천명 규모의 감원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이 판국에 도매물가는 지난해 26년 만에 최고치인 6.3% 상승해, 경기는 후퇴하는데도 물가는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까지 예고하게 한다.
이에 따라 미국 경제가 후퇴를 넘어 2분기 이상 마이너스 성장을 의미하는 침체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목소리들이 늘고 있다. 골드만삭스와 메릴린치는 이미 지난해 말부터 침체가 현실화됐다고 밝혔다. 메릴린치의 북미 수석분석가인 데이비드 로젠버그는 “문제는 경기침체가 다가왔느냐가 아니라 그 깊이와 기간”이라고 말했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경기침체를 예고하는)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최대 소비국인 미국의 경기침체는 세계 경제에 큰 악재다. 신흥시장의 성장으로 완충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도 있지만, 중국이나 인도 등의 수출 의존율을 고려하면 이는 아직은 희망 섞인 관측이라는 지적이 많다. 미국 경제가 뒷걸음친 1991년과 2001년 세계 경제 성장률도 반감됐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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