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E-ECB-뉴질랜드 ‘엇박자’…인민은행 계속 인상할듯
인플레 타개 우선순위…FRB ‘미 금리카드’ 회의론 확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경제위기 타개를 위해 이례적인 비상 조치를 통해 25년여 만에 가장 큰 폭으로 금리를 낮춘데 이어 이달말의 정례 회동에서도 추가 인하가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꼬리를 물고 있다. 그러나 정작 시너지 효과를 내줘야 하는 유럽과 아시아의 주요 중앙은행들은 꿈쩍하지 않는 엇박자를 보이고 있다.
영국 중앙은행인 뱅크 오브 잉글랜드(BOE)와 유럽중앙은행(ECB), 중국 인민은행 및 뉴질랜드 중앙은행 등의 이 같은 움직임은 FRB의 전격적인 조치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주요 증시들 역시 FRB 조치가 취해진 후 진정되는듯 하다가 또다시 약세장이 주류를 이룸으로써 FRB와 미국 정부를 애태우고 있다.
영국 BBC 방송은 23일 BOE 통화정책위원회의가 이달 FRB 조치에 앞서 열릴 회의에서 금리를 유지키로 결정한 회의록을 보도하면서 이 결정이 8대 1의 압도적 차로 이뤄졌음을 지적했다. BBC는 금융 불안과 관련해 내달의 위원회에서 금리가 5.5%에서 5.25%로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여전히 점쳐진다면서 그러나 "회의록에 나타난 분위기로 미뤄볼 때 (FRB 같은) 대폭적인 조치는 이뤄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BBC는 영국의 인플레가 지난해 12월까지 3개월 연속 2.1%라는 높은 수준에 머문 점을 상기시키면서 인플레 압력이 가중될 것으로 BOE가 판단하기 때문에 긴축의 고삐를 풀기 힘든 입장이라고 지적했다. 메르빈 킹 BOE 총재도 22일 밤(현지시각) 연설에서 인플레 가중에 대한 우려를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블룸버그가 23일 실물경제학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해 공개한 바에 따르면 영국은 올해 성장이 1.8%에 그쳐 지난 92년 이후 최저에 머물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월가 억만장자 투자가 조지 소로스도 이날 BBC 회견에서 "영국이 모기지 위기 후폭풍에 맞아 침체를 모면하기 힘들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ECB 역시 여전히 꿈적하지 않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23일 장-클로드 트리셰 ECB 총재가 이날 유럽의회에서 연설하면서 금융 불안의 심각성을 인정하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ECB가 통화 정책의 비중을 인플레에서 성장촉진 쪽으로 이동시킬 준비가 돼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음을 상기시켰다. 트리셰 총재는 연설에서 "시장이 심각하게 조정되는 상황이지만 중앙은행이 물가 고삐를 잘 조여 불안이 확산되는 것을 막을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저널은 FRB가 전격적인 금리인하 조치를 취함에 따라 ECB도 빠르면 5월께 유사한 조치를 취할 것으로 시장이 기대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트리셰의 발언으로 이런 기대가 희석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신문은 ECB의 유로권 인플레 '목표치'가 2% 미만이지만 지난해 11-12월의 경우 연율 기준 3.1%에 달했음을 상기시키면서 연말까지도 ECB 목표치로 내려가는 것이 어려울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인민은행의 경우 오히려 금리 인상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시사됐다.
로이터는 익명을 요구한 인민은행 고위 간부의 말을 인용, 중국이 금리를 계속 "소폭 단계적으로 인상할 방침이라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보도했다. 이 간부는 "인플레 수습이 통화 정책의 우선적 목표라는 점은 이미 보여졌다"면서 "소비자 물가가 더 치솟으면 금리를 (또다시) 인상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으로 로이터는 전했다.
중국은 지난해 금리를 여러 차례 인상한데 이어 올들어서도 이미 한 차례 상향 조정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역전된 미국-중국 간 금리차가 FRB의 전격적인 조치로 더 벌어진 점을 상기시키면서 이것이 인민은행의 통화 정책에 또다른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지적도 금융시장 쪽에서 나오고 있다.
한편 뉴질랜드 중앙은행은 FRB가 전격적인 조치를 취한 후 아시아 중앙은행으로는 처음으로 통화정책회의를 한 후 24일 금리를 유지키로 했다고 밝혔다. 뉴질랜드는 인플레 타개를 위해 금리를 기록적인 8.25%로 올린 상태다.
이와 관련해 월스트리트 저널은 아시아의 다른 주요 중앙은행들도 FRB와 동반 조치를 취할지 여부를 신중하게 가늠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내주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중앙은행들의 통화정책회의가 잇따라 열린다고 전했다.
반면 사우디 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연합, 카타르, 쿠웨이트 및 바레인 등 걸프협력협의회(GCC) 중앙은행들은 일부 지역의 경우 인플레율이 10%에 달함에도 불구하고 FRB의 조치에 호응해 0.75%포인트 금리를 인하했음을 저널은 지적했다.
선재규 기자 jksun@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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