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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2.22 19:48 수정 : 2008.02.22 19:48

농토 10% 임대…필리핀 농민 “외국인 노예되란 말”

중국 기업들이 필리핀에서 대규모 농지 임대경영 계획을 추진하자 필리핀 정치권과 농민들이 들끓고 있다. 농토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120만㏊(1만2천㎢)가 대상인 이 계획은 규모 면에서도 전례가 없다.

중국 지린푸후아농업과학기술개발은 지난해 초 원자바오 총리의 필리핀 방문을 계기로 농지 100만㏊를 임대·경영하기로 필리핀 정부와 양해각서를 교환했다. 지린푸후아는 25년 임대계약(갱신 가능)을 맺고 추진할 이 사업에 38억4천만달러(약 3조5천억원)를 투자하고, 필리핀 노동력으로 쌀·옥수수·사탕수수를 재배하기로 했다. 필리핀 정부는 다른 중국 업체들한테도 농지 20만㏊를 임대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인구는 늘고 경작지는 줄어가는 중국의 농업기업들은 국외 투자를 늘려 왔다. 1996년 이후 쿠바와 멕시코, 라오스에서 수백~수천㏊를 빌리거나 사 곡물을 재배하고 있다.

양해각서 체결 사실이 지난해 하반기 공개되면서 반발이 쏟아지고 있다. 필리핀 언론들은 이 계획에 위헌 요소가 두드러진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헌법은 필리핀인 지분이 60%가 넘는 기업만이 1천㏊ 이하의 공용 토지를 빌릴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필리핀 농업부는 공·사유지가 임대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 세계 최대의 쌀 수입국인 필리핀에선 쌀 수출이 금지돼 있지만, 농장을 운영하는 중국 기업한테는 수출을 허용하기로 한 대목도 문제가 되고 있다. 야당에선 ‘식량안보를 통째로 포기하는 짓’이라는 비난을 퍼붓는다.

1987년 농민 13명이 희생당한 ‘멘디올라 학살’의 대가로 500만㏊를 유상분배받아 숙원인 자영농이 된 농민들의 반발이 가장 거세다. 분배 과정에서 정부에 담보로 잡힌 자신들의 땅이 사업 대상이 될 가능성이 짙기 때문이다. 논 1㏊를 분배받은 한 농민은 21일 <블룸버그뉴스> 인터뷰에서 “중국인들은 지주, 우리는 노예가 된다는 얘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사업이 농업 생산력을 끌어올릴 기회라고 주장하는 필리핀 정부는 반대 논리들이 “중국인 혐오증”에 불과하다고 깎아내렸다. 그러나 반발이 확산되자 필리핀 정부는 “이해당사자들과 충분히 협의하겠다”며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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