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3.12 19:16
수정 : 2008.03.12 19:49
세계화 덕 ‘10년 호시절’ 가고 인플레·신용경색 ‘통화정책’ 시험대
“우리들(중앙은행 총재)에게 좋은 시절은 갔다.”
프랑스 중앙은행인 프랑스은행 총재이자 유럽중앙은행(ECB)의 최고 의결기구인 정책위원회 위원 크리스티앙 노이예가 최근 파리에서 열린 중앙은행 총재 모임에서 탄식하듯 내뱉은 말이다.
“세계화는 지난 10여년 동안 (각국의) 중앙은행들에 확실히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이것이 그리 명확하지 않다.”
이 모임에 참석한 다른 중앙은행 총재들도 세계화의 여파로 많은 나라의 물가가 동시에 상승하고 금융위기가 빠른 속도로 번져 자신들에게 힘든 시절이 다가왔다고 말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전했다. 장-클로드 트리세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원자재와 곡물 가격의 급격한 상승은 “세계화가 인플레이션을 끌어올리는 위험을 낳을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고 말했다. 트리세 총재는 상품가격의 급등에 대해 “신흥시장의 높은 수요에 공급이 따라가지 못해 빚어지고 있다”고 풀이했다.
냉전시대가 끝난 뒤 세계시장에 쏟아져 들어온 중국과 인도, 동유럽 국가들의 값싼 제품들은 그동안 여러 나라의 인플레이션을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데 큰 몫을 했다. 물가 안정이 중요한 임무의 하나인 중앙은행들한테 세계화가 ‘원군’이었던 셈이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세계화를 높이 평가한 것은 이런 탓이 크다. 값싼 수입품의 혜택은 선진국일수록 더 컸다. 케네스 로고프 전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앙은행 총재들은 최근까지 매우 행복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앙은행들의 정책능력이 크게 향상됐다며 높은 점수를 준 전문가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이제는 세계화의 부작용이 중앙은행 총재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노이예 총재는 특히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는 강력한 요인들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리처드 피셔 미국 댈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신흥시장의 수요 확대는 그간 겪어보지 못한 방식으로 통화정책을 시험하려 들 것이라고 말했다. 노이예 총재는 이런 인플레 위험요소뿐 아니라 “성장률을 끌어내리는 위험요소가 함께 작용해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를 책정하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설상가상으로 신용경색까지 겹쳐 중앙은행 총재들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파이낸셜 타임스〉 칼럼니스트인 볼프강 문차우는 “지난해 8월 금융위기가 시작된 뒤 (중앙은행들의) 통화정책은 대단히 무력했다”고 혹평했다.
이경 선임기자
jae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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