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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6.27 22:11 수정 : 2008.06.28 02:16

미국 성장률과 물가 추이 ※사진을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미국 1분기 성장률 1% 그쳐…유럽 물가 16년만에 최고치
아시아 곡물값·유가 더 고통…“최악 30년전과 달라” 분석도

 1970년대 세계 경제를 괴롭힌 스태그플레이션의 망령이 30년 만에 다시 배회하고 있다. 경기는 후퇴하고 있음에도 배럴당 150달러로 치닫는 유가 등 원자재 값 상승이 이어지면서 물가 상승세는 갈수록 가팔라지고 있다. 세계 각국은 경기에 나쁜 영향을 줄 게 뻔한데도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들고 있다. 경기침체 속에 물가 급등이 이어지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전형적인 징후다. 워런 버핏 등도 이를 경고하고 나서,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전화되는지 정책 당국자들과 경제분석가들은 주시하고 있다.

미국 뉴욕증시의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26일 3%포인트 하락했다. 이달 들어서만 9.4% 하락폭을 기록해 2006년 9월 이후 최저치, 1930년 대공황 이후 최악의 6월로 기록됐다. 증시 폭락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유가때문이었다. 26일 뉴욕상품거래소에서 8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는 장중 한때 배럴당 140.39달러에 거래됐다. 휘발유, 원자재, 곡물 가격의 고공 행진으로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4.2%를 기록했다.

지난해 여름 미국을 덮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대출로 촉발된 금융위기에 이어 물가상승은 미국경제의 성장률을 갉아먹고 있다. 이날 미 상무부는 지난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올 경제성장률은 2001년 ‘닷컴 거품’ 붕괴 이후 최저치인 1% 안팎에 그칠 전망이다. 실업률은 5.1%에 이른다.

최근 고물가, 저성장은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유로화를 공식 화폐로 쓰는 유로존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6년만에 최고치인 3.7%를 기록했다. 6월에 4%를 넘길 전망이다. 반면 경기 지표인 구매자관리지수는 49.5를 기록해 2003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파이낸셜타임스>는 “유로존 15개국이 치솟는 인플레이션과 결합된 낮은 성장률의 스태그플레이션에 더욱 가까지 미끄러져 가고 있다”고 23일 보도했다. 유럽중앙은행은 물가를 잡기 위해 내달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려, 4.25%로 책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를 비롯해 아시아 여러 신흥개발도상국에서도 고물가와 저성장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상 탓에 메릴린치는 24일 “세계경제 성장이 둔화하고 금리인상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투자가들의 두려움이 현실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지금 세계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진 걸까? 피델리티 자산운용사는 24일 “세계 경제가 이미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했다”고 밝혔다. 세계경제가 식량과 연료 가격에서 기인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한 중앙은행들의 금리인상으로 성장이 둔화하고 있다는 게 그 이유다. 워런 버핏도 같은 맥락에서 “미국이 지금 스테그플레이션의 한복판에 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벤 버냉키 의장은 “인플레이션이 불편할 정도로 높기는 하지만,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은) 1970년대처럼 통제권을 벗어난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이러한 논쟁 속에서 70년대와 지금의 경제 구조가 다른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뉴욕에 있는 디시즌이코노믹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알렌 시나이는 세계경제가 저성장, 고물가에 빠졌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미니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블룸버그뉴스>에 “1970년대와 달리 지금의 경제는 정보기술과 탈규제 덕택에 훨씬 유연해졌다”고 말했다.

지금의 세계경제에 대한 진단은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침체 국면에 있다는 걸 부정하는 이는 없다. 고물가 현상 또한 마찬가지다. 여기에 통화정책 당국자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진 70년대와 같은 ‘딜레마’에 빠진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경제학)는 “스태그플레이션이란 악몽에 직면한 많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중앙은행들은 인플레이션과 싸우기 위해 통화 긴축정책을 펴야 하는 동시에 성장률이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하는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고 말했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 스태그플레이션

낮은 경제성장을 뜻하는 ‘스태그네이션’과 물가급등을 뜻하는 ‘인플레이션’의 합성어다. 쉽게 통제할 수 없는 인플레이션이 저성장, 실업률 증가를 수반해 경기침체로 이어진다. 1965년 영국 재무장관 아인 매클로이드가 의회 연설에서 처음 쓴 뒤 보편화됐다.


“통화정책에 달려” “이미 시작”
한국도 스태그플레이션?

“아마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럴 위험이 없다고는 장담하지 못하겠다.”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금융·경제 연구부장은 ‘우리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 상태에 빠져들었다고 보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한국 경제도 스태그플레이션의 징후가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대비 5%대에 이를 것이 거의 확실하고, 물가 상승세는 하반기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소비와 투자가 급격히 둔화하고, 고용 사정도 나빠지고 있다. 이런 현상이 고유가에서 촉발됐다는 점도 과거 석유파동 뒤 세계를 휩쓴 스태그플레이션과 거의 비슷한 모습이다.

그러나 조 연구부장은 “그런 현상이 적어도 1년 이상 지속돼야 스태그플레이션이라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결국 문제는 ‘경기후퇴 속의 물가상승’이 얼마나 오래 이어지느냐인데, 그는 ‘국제 유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우리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 상태에 빠져들었다”고 진단했다. 경기 후퇴와 물가 상승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이미 커졌다는 것이다. 그는 “상반기에 정부의 미숙한 환율 관리 영향이 시차를 두고 나타나면서 물가 상승이 한동안 더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전 세계적인 스태그플레이션은 물가 상승이 임금 인상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또 다시 물가를 끌어올리는 악순환이 벌어진 탓이 크다.

전 교수는 “노사 관계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노동자들을 달래려는 생각이나 이를 위한 정책 계획을 갖고 있지 않은 듯하다”며 “노동자들이 쉽게 물러날 가능성이 없는 만큼, 물가 상승이 임금 구조로 파급되면서 스태그플레이션이 구조화될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조 연구부장은 “경기가 나빠지는 것을 두려워해서 정부가 부양책을 쓰다보면, 기업들도 견딜만 해지고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도 커지면서 물가 상승이 계속될 위험이 있다”며 “통화정책을 어떻게 쓰느냐가 물가에 가장 핵심적인 변수”라고 덧붙였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유가 쇼크’ 원인…수요 억제로 해결
과거 발생 사례 및 해법

1973년 10월6일, 이집트·시리아가 이스라엘을 전격 공격한다. ‘4차 중동전쟁’의 시작이었다. 전황이 불리해지자 아랍은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국가에 대한 석유수출 금지와 산유량 20% 감축, 유가인상 조처를 발표했다. ‘1차 오일쇼크’의 방아쇠였다.

앞서 1971년 8월,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치솟는 물가를 억제하기 위해 임금과 가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통제 정책을 폈다. 하지만 별 소득이 없는 가운데 2년 뒤 오일쇼크까지 겹치자 물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치인 8.7% 오름세를 기록했다. 오일쇼크의 덫에 빠진 미국 경제는 74, 75년 각각 -0.5%, -0.2%씩 성장했다.

1979년 이란에서는 아야툴라 호메이니가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이슬람 정권을 세웠다. 이라크는 1990년에 쿠웨이트를 침공하고, 곧 이어 미국의 이라크 침공(1차 이라크 전쟁)이 이어졌다. 이로 인해 세계경제의 ‘원료’인 원유의 공급에 차질이 생겼고, 국제유가는 천정부지로 뛰었다. 미국은 1979~1982년, 1991년 또다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고, 세계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을 되풀이한다.

과거 스태그플레이션의 공통점은 고유가가 촉발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고유가로 인한 비용이 올라 인플레이션이 지속되자, 이를 막기 위해 당국들은 금리인상으로 대처했다. 금리인상은 경기를 죽여, 물가가 오르는 가운데 경기가 죽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태그플레이션의 해결책은 최대한 ‘수요’를 억제하는 통화정책에서 나왔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1979년 폴 볼커를 통화정책의 지휘자인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에 임명했다. 소방수로 나선 볼커는 최고 20% 수준까지 금리를 인상했다. 이런 금리인상은 수요를 억제했다. 결국 원자재 가격이 떨어져, 인플레이션이 진정되며 경기회복의 기틀을 잡았다. 그의 정책으로 1981년 13.5%까지 치솟았던 물가지수는 1983년 3.2%로 뚝 떨어졌다. 그해 미국 경제는 전년 대비 6.4%포인트 증가한 4.5%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류이근 기자

류이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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