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패밀리사이트

  • 한겨레21
  • 씨네21
  • 이코노미인사이트
회원가입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8.07.18 18:54 수정 : 2008.07.18 23:49

국제유가 추이

“‘오일 붐’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월스트리트까지 참여한 투기적 열풍이다. 금융 부문이 석유 자산의 개발에 이렇게 관심을 보인 적은 일찍이 역사에 없었다.”

지금의 상황을 보여주는 듯한 이 글은 1919년 6월1일치 <뉴욕 타임스> 기사의 머리 부분이다. ‘석유 투기의 향연’이란 제목의 이 기사는 석유 투기의 뿌리 깊은 역사를 잘 보여준다. 90년 가까이 흘렀지만 오일 붐의 배후 가운데 하나로 금융 투기자본이 있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종이석유’ 거래 실물의 2배…“최대 50% 뻥튀기”
원자재 펀드 90조원…“선물 규제땐 유가 25%↓”

2006년 6월 미국 상원은 ‘뛰고 있는 석유와 가스 가격에서 시장 투기의 역할’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내놨다. 국제유가가 60달러를 기록하던 때 나온 이 보고서는 “에너지 선물과 ‘유사 선물’(온갖 에너지 파생상품)이 제한 없이 전자 장외시장 등에서 거래되고 있다”며 “이 거대한 투기가 석유 가격을 인상시켰다”고 결론 내렸다. 미래 일정한 시기에 석유를 넘겨준다는 조건으로 매매 계약을 거래하는 선물과 그 파생상품이, 마치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꼴로 현재 석유 가격을 결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2년이 지난 6월24일, 바트 스투팩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이 “투기꾼들이 석유시장의 71%를 통제하고 있다”고 밝힐 만큼, 실제 ‘종이석유’(선물로 거래되는 석유)의 하루 거래량은 실물의 두 배 이상으로 그 비중이 커졌다. ‘에너지 헤지펀드 센터’의 설립자인 피터 푸사로는 2003년 130억달러였던 원자재 지수펀드의 설정액이 올해 2600억달러(약 260조원)로 20배가 불어났다는 계산을 내놨다. 덩달아 에너지 헤지펀드의 수도 지난 4년 사이 180개에서 630개로 6배 가까이 늘었다.

천문학적인 액수의 원자재 지수펀드와 에너지펀드 등 석유의 가격변화를 묶음으로 하는 온갖 펀드와 파생상품이 실제 수요·공급과는 상관없이 국경을 넘나들며 매일 거래되고 있다. 여기에 골드만삭스·모건스탠리 등 거대 투자은행들과 연기금, 국부펀드, 헤지펀드, 뮤추얼펀드 등 금융계의 큰손들이 유가 상승으로 창출되는 수익을 노리고 돈을 쏟아 붓고 있다.

미국 달러의 약세, 주식시장 침체, 부동산 몰락, 신용경색으로 갈 곳을 잃은 금융자본들이 98년 이후 10년 동안 꾸준한 가격 상승 곡선을 그려온 석유를 대체 투자처이자 헤지(투자 안전장치) 수단으로 주목하면서 오일 붐에 기름을 부었다. 지난 4~5년 사이 31~32달러 하던 유가는 네 배 이상 올랐다.

석유 관련 선물과 파생상품으로 몰려든 돈이 수요와 공급을 바탕으로 한 실물 석유시장의 가격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지만, 정도의 문제일 뿐 가격구조를 왜곡한다는 데 커다란 이견은 없어 보인다. 글로벌리서치의 윌리엄 엥달은 “실제 유가는 ‘종이석유’라는 석유 관련 파생상품이나 선물을 사고파는 골드만삭스나 모건스탠리 같은 한 줌의 대형 투자은행에 의해 결정된다”며 “오늘날(2008년 5월 현재) 원유가격 115달러 가운데 순전히 50~60달러가 투기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선물거래위원회(CFTC)의 거래·시장 부서장을 지낸 메릴랜드대 마이클 그린버거 교수는 원유 선물에 대한 규제 등이 이뤄질 경우 “유가가 하룻밤에 25% 정도 떨어질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기도 했다.

지난 14일 145.18달러까지 치솟았던 유가는 불과 사흘 만인 17일 129.29달러를 기록해 10% 이상 폭락했다. 83년 이후 가장 큰 하락폭이다. 이런 급격한 변동성은 쉽게 늘거나 줄지 않는 수요·공급에 의해서가 아니라, 선물 등 투기 요인에 의한 가격 결정의 설명력을 더욱 높여준다.

투기가 고유가의 ‘주범’이란 인식이 확산되면서 국제사회의 석유 선물시장 규제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에 근접하자, 원유의 70%를 수입에 의존하는 인도의 석유장관은 “(석유 선물을 거래하는) 미 뉴욕상품거래소(Nymex)가 고유가에 막대하게 영향을 끼쳤다”며 자국 내 상품거래 시장에서 원유 거래를 금지했다. 미 의회는 지난 5월 세계 석유 선물의 50%가 거래되는 “런던 대륙간거래소(ICE)에서 미 서부텍사스산 원유 선물의 30%가 규제 없이 거래되고 있다”며 이에 대한 미 선물거래위원회의 규제와 감독 기준을 적용하도록 했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 오일 투기

미국 선물거래위원회(CFTC)는 “상품을 생산 또는 소비하지 않으면서, 가격변화로 발생하는 이익을 얻으려고 리스크를 감수하고서 자본을 선물거래에 투입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미국·영국 “고유가는 공급부족 탓”
산유국 “공급 변화 없어” 투기 의심

“공급 부족으로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까지 뛸 수 있다.”

지난 3월7일 골드만삭스가 내놓은 유가 전망이다. <비즈니스위크>는 4월1일치에서 “골드만삭스는 세계 최대 에너지 파생상품 거래자”라며, 골드만삭스의 순수성이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1700억~2600억달러가 투자된 골드만삭스상품지수(GSCI)를 운영하는 골드만삭스는 고유가가 지속될수록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다.

석유 투기 논쟁은 결정적으로 원유의 수요·공급에 대한 시각차에서 갈린다. 원유 공급량이 중국·인도 등 거대 신흥경제국을 비롯한 세계의 소비를 따라잡지 못해 유가가 오른다고 보는 ‘공급론자’와 달리, ‘투기론자’는 공급은 고유가 이전처럼 안정적이라는 주장이다. 어느 쪽에 설지가 종종 이해관계에 따라 나뉜다.

골드만삭스뿐 아니라 미국과 영국 정부 등은 대표적인 공급론자다. 지난 9일 끝난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서 독일·이탈리아 등이 석유 투기 규제 필요성을 역설했지만,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미·영의 반대로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금융 강국인 미·영이 석유 선물 규제 등으로 자국의 금융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반발했다는 것이다. 고유가를 즐기는 비피(BP)·로열더치셸 등 석유 ‘메이저’ 들도 물론 공급론에 서 있다.

반면 ‘오일 붐’을 누리면서도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석유수출국기구(오펙)는 투기론자들이다. 사우디의 석유장관 알리 알나이미는 6월30일 고유가의 원인과 관련해 “(석유) 공급은 충분하다. 많은 요인들에 의해 유가가 뛰나, 대부분은 투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석유 증산 압력과 그로 인한 가격 하락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올해 세계의 하루 석유 생산량은 8650만배럴, 소비량은 8640만배럴이다. 2005년 각각 8460만배럴, 8360만배럴이었던 수요·공급의 근본적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유가는 두 배 이상 뛰었다. 류이근 기자


광고

관련정보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많이 본 기사

전체

정치

사회

경제

지난주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