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2.19 20:58
수정 : 2009.02.19 23:05
미 검찰 ‘탈세수사’ 압박 밀려…해당계좌 폐쇄·명단 제출 예정
“우리 은행이 약속하는 손님의 비밀 유지 제도는 이를 악용하는 고객들의 이름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다.”
스위스 최대은행 유비에스(UBS) 페터 쿠러 회장은 18일 낸 성명에서 일부 미국 고객들이 이 은행에 거액의 자산을 숨겨 ‘조세 피난처’로 이용했음을 인정하고, “모든 부정행위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미국 내 1만9천여명의 유비에스 역외계좌 고객들에 대해 미국 연방 검찰이 탈세수사를 본격화한 가운데, 유비에스는 이용자 250명의 계좌 정보를 수사 당국에 넘기고, 미납 세금과 부정수입을 포함한 7억8000만달러의 추징금을 물기로 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19일 보도했다. 탈세가 가능한 미국 이용자들의 계좌들을 모두 폐쇄시키고 그 증거자료도 당국에 제출하기로 했다.
유비에스는 스위스에 자산을 예치하면 국세청(IRS)에 알릴 필요가 없다며 미국의 부유층 손님들을 유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탈세를 위해 은행이 가명계좌를 만들어주고, 스위스 은행 신용카드 사용을 권장하기도 했다. 미국 수사 당국은 유비에스가 이런 방식으로 지금까지 200억달러 규모의 미국 자산을 예치했으며, 해마다 2억달러의 수입을 올린 것으로 보고 있다.
스위스 은행들의 ‘비밀 금고’ 전통은 17세기 프랑스 위그노 교도들이 종교박해를 피해 스위스로 피신한 뒤 비밀리에 은행업을 전개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1930년대 독일 나치 정권이 유대인 정보 공개를 요구하자, 스위스 의회는 ‘비밀주의 원칙’을 명문화했다. 스위스 국내에선 유비에스의 정보 공개가 스위스의 금융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관론도 나온다.
기존엔 이용자 명단 제출에 강력 반발해 온 유비에스가 갑자기 태도를 바꾼 데 대해, <뉴욕 타임스>는 수사 당국의 기소가 코앞에 임박해 있었음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 사건이 법정에 가면 벌금 규모가 10억달러를 넘어서리란 전망도 부담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비에스는 지난해 미국발 금융위기로 500억달러 이상의 손실을 입었으며, 지난해 10월 스위스 정부로부터 60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은 상태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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