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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공공성’ 법제화 운동 중기·서민 돕는 ‘돈줄’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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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취재 - 일본의 ‘금융 공공성’ 되찾기
일본 은행들은 1998~99년 대대적인 부실채권 정리 이후 우리나라처럼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크게 줄였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중소기업인과 학자, 정치인이 힘을 합쳐 ‘금융 공공성’ 확보 운동을 벌였고 지금 그 성과를 내고 있다.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사정이 더 열악하지만 이렇다할 대책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일본 현지 취재를 통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무엇인지 살펴본다. “부실 은행의 정상화를 위해 투입된 공적자금은 결국 우리들이 낸 세금 아니었습니까. 우리가 은행의 공공성 확대를 위해 뭔가 정책을 제안하는 것은 불가능할까요?” 1999년 말 일본 도쿄의 한 중소기업 사장이 릿교대학 야마구치 요시유키 교수(경제학)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하소연했다. 당시 일본 은행들은 금융당국이 부실채권의 조속한 처리를 종용하자 자산 건전성 확보를 위해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대폭 줄이고 있던 때였다. 이 사장뿐 아니라 상당수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은행들로부터 대출 거부와 조기 상환 요구에 시달리고 있었다. 90년대 후반 자산건전성 내세워 대출 외면 나서자위협느낀 중소기업·지자체 ‘금융평가법’ 제정 앞장
정부, 주요내용 반영…은행 다시 공적기능에 눈길 야마구치 교수는 이 전화를 계기로 회원이 4만명에 이르는 중소기업가들의 자발적인 연구조직 ‘중소기업가동우회’와 함께 대책 마련에 나섰다. 9일 도쿄 오오츠카역 인근에 있는 중소기업가동우회 사무실에서 만난 야마구치 교수는 “당시 조사를 해보니, 중소기업 경영자 4명중 1명꼴로 대출 거부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야마구치 교수와 중소기업가동우회는 이런 지경에까지 이른 것은 은행이 자산 건전성만 중시하고 금융의 공공성은 외면한데서 비롯됐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해결의 방향도 금융의 공공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로 모아졌다. 모델은 미국의 지역재투자법(CRA)에서 찾았다. 1977년 만들어진 지역재투자법은 자산 건전성뿐만 아니라 특정 지역에서 받은 예금의 일정 비율을 해당 지역 중소기업이나 저소득층 대출에 어느정도 사용했는지를 금융회사 평가기준에 넣고, 그 내용을 공개하는 제도다. 이들은 일본의 경우 중소기업 대출 감소와 무제한적인 개인보증을 요구하는 관행이 문제인 만큼 이를 개선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중소기업가이면서 중소기업가동우회 부대표로 활동중인 미야기 사장은 “97~98년 들어 은행들이 대출을 줄였으며, 특히 회사를 위해 돈을 빌리는데 사장 개인의 모든 재산을 걸도록 하는 것은 물론 연대보증인까지 내세우게 했다”며 “이때 위협감을 느껴 법 제정 운동에 동참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나온 법안이 이른바 ‘금융평가법’이다. 이 법안은 지역의 중소기업 대출을 위해 노력하는 정도와 담보·개인보증에 의존하지 않는 대출방식을 얼마나 채택하고 있는지 등을 평가해 은행의 새로운 지점 설치와 합병 등에 대한 심사에 반영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평가 내용을 일반에 공개함으로써 공공성이 높은 은행에 대한 이용도를 높이도록 유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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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금융평가법안 주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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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공적기능 확보 장치 서둘러야” 중기·서민 금융 일본보다 더 열악
금율노조 등 사회 의제화 움직임 우리나라에서도 일본의 금융평가법과 같은 금융 공공성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은행의 대형화와 겸업화, 시중은행의 외국 매각, 지방은행과 서민금융기관의 대거 퇴출 등이 실시되면서 중소기업과 서민금융이 매우 위축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금융경제연구소(소장 이찬근 인천대 교수)와 이상경 의원(열린우리당)은 최근 일본을 방문해 금융평가법 제정 운동을 펼친 관계자들을 만나 일본 중소기업 금융 실태와 금융평가법 제정 운동 배경 등을 조사했다. 이찬근 소장은 “일본은 미국의 지역재투자법을 일본 현실에 맞게 변형시켜서 받아들였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지방금융, 중소기업금융, 서민금융이 일본보다도 훨씬 더 열악한 만큼 금융 공공성 확보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 소장은 “일본의 경우 지방은행이 65개에 이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3개에 불과하다”며 “우리의 경우 기존 금융기관에게 공공적 역할을 강제 또는 유도하는 장치를 마련하거나 새로운 국책 금융기관을 설립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경제연구소는 금융노조 등과 함께 금융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직을 조만간 만들어 이를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 갈 예정이다. 이상경 의원은 “은행들이 공공적 역할을 제대로 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실효성 있는 유도장치를 마련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며 “외국의 사례를 우리나라 현실에 맞게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 마련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유철규 성공회대 교수(경제학)는 “일본에서는 중소기업가동우회라는 자발적 중소기업 조직이 나섬으로써 법 제정 운동이 성과를 낼 수 있었다”며 “우리나라에서도 중소기업가들이 스스로 조직을 만들어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현 기자
“전문가 컨설팅·보조금 등 지원” 구쓰다 경제산업성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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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쓰다 경제산업성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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