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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12 20:01 수정 : 2005.12.13 10:27

‘은행 공공성’ 법제화 운동 중기·서민 돕는 ‘돈줄’ 열어

현지취재 - 일본의 ‘금융 공공성’ 되찾기

일본 은행들은 1998~99년 대대적인 부실채권 정리 이후 우리나라처럼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크게 줄였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중소기업인과 학자, 정치인이 힘을 합쳐 ‘금융 공공성’ 확보 운동을 벌였고 지금 그 성과를 내고 있다.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사정이 더 열악하지만 이렇다할 대책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일본 현지 취재를 통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무엇인지 살펴본다.

“부실 은행의 정상화를 위해 투입된 공적자금은 결국 우리들이 낸 세금 아니었습니까. 우리가 은행의 공공성 확대를 위해 뭔가 정책을 제안하는 것은 불가능할까요?”

1999년 말 일본 도쿄의 한 중소기업 사장이 릿교대학 야마구치 요시유키 교수(경제학)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하소연했다. 당시 일본 은행들은 금융당국이 부실채권의 조속한 처리를 종용하자 자산 건전성 확보를 위해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대폭 줄이고 있던 때였다. 이 사장뿐 아니라 상당수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은행들로부터 대출 거부와 조기 상환 요구에 시달리고 있었다.

90년대 후반 자산건전성 내세워 대출 외면 나서자
위협느낀 중소기업·지자체 ‘금융평가법’ 제정 앞장
정부, 주요내용 반영…은행 다시 공적기능에 눈길

야마구치 교수는 이 전화를 계기로 회원이 4만명에 이르는 중소기업가들의 자발적인 연구조직 ‘중소기업가동우회’와 함께 대책 마련에 나섰다. 9일 도쿄 오오츠카역 인근에 있는 중소기업가동우회 사무실에서 만난 야마구치 교수는 “당시 조사를 해보니, 중소기업 경영자 4명중 1명꼴로 대출 거부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야마구치 교수와 중소기업가동우회는 이런 지경에까지 이른 것은 은행이 자산 건전성만 중시하고 금융의 공공성은 외면한데서 비롯됐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해결의 방향도 금융의 공공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로 모아졌다. 모델은 미국의 지역재투자법(CRA)에서 찾았다. 1977년 만들어진 지역재투자법은 자산 건전성뿐만 아니라 특정 지역에서 받은 예금의 일정 비율을 해당 지역 중소기업이나 저소득층 대출에 어느정도 사용했는지를 금융회사 평가기준에 넣고, 그 내용을 공개하는 제도다.

이들은 일본의 경우 중소기업 대출 감소와 무제한적인 개인보증을 요구하는 관행이 문제인 만큼 이를 개선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중소기업가이면서 중소기업가동우회 부대표로 활동중인 미야기 사장은 “97~98년 들어 은행들이 대출을 줄였으며, 특히 회사를 위해 돈을 빌리는데 사장 개인의 모든 재산을 걸도록 하는 것은 물론 연대보증인까지 내세우게 했다”며 “이때 위협감을 느껴 법 제정 운동에 동참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나온 법안이 이른바 ‘금융평가법’이다. 이 법안은 지역의 중소기업 대출을 위해 노력하는 정도와 담보·개인보증에 의존하지 않는 대출방식을 얼마나 채택하고 있는지 등을 평가해 은행의 새로운 지점 설치와 합병 등에 대한 심사에 반영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평가 내용을 일반에 공개함으로써 공공성이 높은 은행에 대한 이용도를 높이도록 유도하고 있다.


일본 금융평가법안 주요 내용
금융평가법 법제화 운동은 2001년 후쿠오카현 중소기업가동우회가 1만명 규모의 기업 대표자 서명에 들어가면서 전국적인 운동으로 전개됐다. 현재 일본 국민 100만명 이상이 서명에 참여했다. 또 일본의 47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홋카이도 의회 등 19곳에서 만장일치로 금융평가법 제정 요구 의견서를 채택했고, 시·군·구의회 960곳(전체 지방의회의 30%)도 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아직 이 법안은 일본 여당의 비협조로 의회에서 통과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일본 금융당국인 금융청은 올해 사실상 이 법안의 주요 내용을 금융회사에 대한 가이드라인에 반영했다. 금융청은 ‘지역 금융기관에 대한 지침서’에서 금융기관이 지역에서의 융자 실태와 지역 공헌 노력에 관한 정보를 스스로 제공하도록 의무화했다. 또 대형은행에 부과하는 부실채권 처리 시한과 목표를 지방은행에는 부과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부실채권의 원인이 된 기업을 지원하도록 권고했다. 또 개인보증에 대한 한도를 법률적으로 제한했다. 금융평가법을 발의한 일본 민주당의 사쿠라이 미츠루 의원(예비내각 금융담당 장관)은 “의회는 통과되지 않았지만 야당이 제안한 법안을 일본 정부가 받아들인 것은 일본에서는 매우 드문 현상”이라고 말했다.

은행들에게도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일본 이바라키현의 최대 지방은행인 조요은행의 모리타 시게키 지점장은 “90년대 버블 경제가 무너지면서 은행들도 제 살길 찾느라 지역에 대한 봉사를 등한시했는데 금융평가법 제정운동을 계기로 다시 지역은행들의 존재이유를 자각했다”며 “현재는 중소기업 대출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중소기업을 대기업과 연결시켜주거나 판로를 개척하는데 도움을 주는 등 컨설팅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 박현 기자 hyun21@hani.co.kr


“한국도 공적기능 확보 장치 서둘러야”

중기·서민 금융 일본보다 더 열악
금율노조 등 사회 의제화 움직임

우리나라에서도 일본의 금융평가법과 같은 금융 공공성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은행의 대형화와 겸업화, 시중은행의 외국 매각, 지방은행과 서민금융기관의 대거 퇴출 등이 실시되면서 중소기업과 서민금융이 매우 위축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금융경제연구소(소장 이찬근 인천대 교수)와 이상경 의원(열린우리당)은 최근 일본을 방문해 금융평가법 제정 운동을 펼친 관계자들을 만나 일본 중소기업 금융 실태와 금융평가법 제정 운동 배경 등을 조사했다. 이찬근 소장은 “일본은 미국의 지역재투자법을 일본 현실에 맞게 변형시켜서 받아들였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지방금융, 중소기업금융, 서민금융이 일본보다도 훨씬 더 열악한 만큼 금융 공공성 확보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 소장은 “일본의 경우 지방은행이 65개에 이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3개에 불과하다”며 “우리의 경우 기존 금융기관에게 공공적 역할을 강제 또는 유도하는 장치를 마련하거나 새로운 국책 금융기관을 설립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경제연구소는 금융노조 등과 함께 금융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직을 조만간 만들어 이를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 갈 예정이다.

이상경 의원은 “은행들이 공공적 역할을 제대로 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실효성 있는 유도장치를 마련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며 “외국의 사례를 우리나라 현실에 맞게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 마련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유철규 성공회대 교수(경제학)는 “일본에서는 중소기업가동우회라는 자발적 중소기업 조직이 나섬으로써 법 제정 운동이 성과를 낼 수 있었다”며 “우리나라에서도 중소기업가들이 스스로 조직을 만들어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현 기자


“전문가 컨설팅·보조금 등 지원”

구쓰다 경제산업성 부장

구쓰다 경제산업성 부장
중소기업의 저력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 일본에서도 세계화 영향으로 중소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기업들이 생산기지를 외국으로 이전하면서 ‘대-중-소기업’간 수직적 하청 구조가 깨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들은 수주 물량이 감소하자 자체 브랜드 상품을 개발하거나 다른 분야로의 진출을 모색하는 등 새로운 시장 개척에 골몰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올해 ‘중소기업 신사업활동 촉진법’을 만들어 이런 중소기업 지원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일본 경제산업성 관동경제산업국의 구쓰다 쇼우지 지역경제부장을 만나 일본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 정책을 들어봤다.

일 정부 ‘중소기업 신사업 발동 촉진법’…지역 은행도 참여

-중소기업 신사업활동 촉진법을 만든 이유는

=5년전 대-중-소기업 사이 수직 구조가 깨지면서 산업클러스터 정책을 실시했다. 그런데 연구개발은 성공하는데 이를 사업화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시장 수요 중심의 연구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다른 업체들과 전략적 제휴를 강화하도록 지원할 필요가 생겼다. 이 법은 사업 초기부터 단계별로 전문가(프로젝트 매니저)들이 컨설팅을 제공하고 정부가 일부 보조금을 제공함으로써 위험분담을 하는 게 핵심이다.

-지원대상과 지원내용은

=새로운 상품이나 사업영역을 개발하거나, 새로운 생산·판매방식을 도입함으로써 새 사업분야를 개척하는 중소기업들이 지원대상이다. 10년 이내에 투자회수가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경우가 해당된다. 이들 기업에게는 ‘중소기업기반설비기관’이라는 사무국을 통해 전문가 컨설팅과 보조금, 각종 감세 혜택을 준다.

-금융회사들도 여기에 참여하나

=법에는 금융 부분은 빠져있다. 그러나 개별적으로 지역 은행들을 설득함으로써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도록 했다. 사무국에 현재 7개 은행의 직원들이 파견돼 있다. 이들 은행원과 전문가들이 사업성을 판단하면, 공모 방식을 통해 선정된 은행이 해당 기업에 융자금을 제공한다. 5월부터 지금까지 32건이 승인됐으며, 여기에 정부와 은행이 각각 8억엔, 82억엔을 투자했다. 이들 사업에서 5년간 1180억엔의 매출이 예상된다.

도쿄/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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