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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좌파 바람] 3국 대사에 듣는 흐름과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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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좌파 바람] 3국 대사에 듣는 흐름과 전망
중남미의 좌파 바람이 뜨겁다. 브라질과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에선 이미 정권을 잡았고, 선거를 앞둔 멕시코와 페루, 콜럼비아에서도 집권을 노리고 있다. 중남미에서 이처럼 좌파가 득세한 이면에는 1990년대 말 극심한 경제 침체를 불러온 신자유주의에 대한 환멸이 자리잡고 있다. 이들의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어떤 나라에선 실용적 개혁주의자를, 어떤 나라에선 급진적 포퓰리스트를 좌파라고 부른다. 미국에 맞서는 정치적 연대를 제약하는 요인이다. 재외공관장 회의에 참석차 귀국한 베네수엘라 신숭철 대사와 아르헨티나 황의승 대사, 칠레 기현서 대사에게서 중남미 좌파의 흐름과 전망을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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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금 논의는 그야말로 초기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 미국에서 벗어나 중남미 문제는 중남미 스스로 해결하자는 정신에서 출발하고 있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이견이 많다. 앞으로 몇년 안에 그런 정치적 연대가 공식화돼 출범한다고 보기 어렵다. 기=지난해 말 칠레의 라틴아메리카 경제위원회 사무총장에게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중남미는 미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역사적으로도 유대가 깊어 미국과 관계가 불편해지면 여러모로 곤란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보까 그란데’라고 답했다. 이는 스페인말로 ‘큰 입’이라는 뜻인데, 정치적으론 미국을 세게 때리겠지만, 실제론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의미다. 사회=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거침없는 반미 행보가 화제다. 도널드 럼스펠드 미국 국방장관은 그를 히틀러에 비유하기도 했다. 바첼렛 칠레 대통령의 당선도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중남미 좌파를 이끄는 지도자들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가? 신=차베스 대통령은 상당히 매력있는 지도자다. 신임장을 들고 갔더니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어깨에 손을 탁 얹더라.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격의가 없었다. 모든 행사에서도 일일이 악수를 나눈다. 대중을 빨아들이는 흡입력이 강하다. 언변 또한 대단히 뛰어나다. 원고 없이 기본적인 자료만 갖고도 대여섯 시간 연설하기도 한다. 특히 역사에 해박하다. 중남미 역사와 그에 상응하는 유럽 역사에 대한 지식이 엄청나다. 차베스 대통령을 어떻게 보느냐는 기준이 뭐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미국은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선출된 지도자라 하더라도 정부를 어떻게 운영하느냐를 따진다. 미국이 보기에 차베스 대통령의 정부 운영은 민주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차베스 대통령은 참여민주주의를 아주 착실하게 진행하는 지도자다. 그는 일요일마다 ‘알로 쁘레지덴떼’(안녕! 대통령)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 국민들과 직접 대화한다. 이렇게 보면 차베스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가장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지도자다. 차베스 대통령을 히틀러에 비유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가 추진하는 석유정책도 석유를 국유화하겠다는 게 아니다. 과거 석유 메이저들이 베네수엘라 석유회사와 개발투자계약을 맺어 개발이익을 거의 다 쓸어간 점을 개선하기 위해 석유회사의 지분을 51% 이상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시장경제 원칙에서 벗어나는 정책이라고 볼 수 없다. 기=바첼렛 대통령은 강인한 지도자다. 내각을 남녀동수로 구성하겠다고 공약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했다. 대통령 유고시 첫번째로 권한을 대행하는 내무장관에 정계 원로를 앉히고, 경제 쪽엔 참신한 전문가들을 등용했다. 4개 여당으로 구성된 연립정권인데도 여당들의 요구와는 상당히 독립적으로 인사권을 행사했다. 그리고는 휴가를 가버렸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얘기다. 사회=중남미는 한때 극심한 경제 위기를 겪었다. 지금도 빈부격차라는 사회적 문제를 안고 있다. 중남미 좌파들은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가? 황=아르헨티나는 여러차례 경제위기를 겪었다. 2001년 12월에는 디폴트(채무불이행)까지 경험했다. 2000년 7700달러이던 1인당 국민소득이 2002년엔 2600달러까지 내려갔다. 그러나 2003년 이후 해마다 9% 가까운 경제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최근 경제성장은 경제 개방과 분배 개선이라는 두 축을 통해 이룬 것이어서 지속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중남미 전체적으로 보면 부패를 타파하고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시기와 좌파의 물결이 밀어닥친 시기가 일치한다. 신=베네수엘라도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2004년엔 19%라는 세계 초유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2003년에 워낙 나빴던 탓도 있다. 최근엔 유가 상승으로 2년 연속 9.4%라는 중남미 최고의 경제성장률을 보였다. 앞으로 유가가 크게 떨어지지 않는 한 베네주엘라의 경제는 이런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기=칠레 경제는 중남미가 아니라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견실하다. 오랫동안 개방 경제를 유지한 덕에 기업 구조가 건전하고 기업인들이 경영마인드가 역동적이다. 게다가 칠레에는 구리라는 ‘석유’가 있다. ㎏당 구리값은 석유보다 비싼데, 생산원가는 석유보다 싸다. 구리값은 2003년에 파운드당 85센트 정도였는데 올해엔 2달러가 넘는다. 전체 수출의 45%를 차지하는 구리에서 나오는 이익이 좌파의 집권을 떠받치고 있다. 사회=한국과 중남미는 지리적으로 먼 탓에 교류가 많지 않다. 한국과 중남미가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황=올해 아르헨티나에 자원개발협력센터를 세워 활동을 시작한다. 중남미는 지표면적의 15%에 불과하지만 자원의 20%가 묻혀 있다. 자원 협력의 기틀을 다지는 게 중요하다. 내년에는 브라질에도 자원개발협력센터를 세운다. 올해엔 또 아르헨티나에 한국문화원이 설립된다. 스페인어권에선 최초의 한국문화원이다. 경제협력을 발전시켜나가기 위해선 문화교류를 확대하는 게 필요하다. 칠레, 멕시코, 브라질에는 이미 정보기술(IT) 협력센터가 세워져 있다. 사회·정리/유강문 기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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