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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13 21:02 수정 : 2005.02.13 21:02

우리나라 노동조합 진영이 1987년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더구나 위기가 모두 외부적 요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내부의 문제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데 더 큰 심각성이 있다. 단위노조의 채용비리 사건이 터지더니, 전국조직의 대의원대회에서는 폭력이 난무하는 내부분열 양상이 드러난 것이다. 肩?위기가 어떻게 전개될 수 있는지를 우리는 미국 노동조합의 사례에서 읽을 수 있다.

1950년대 비교적 유리한 교섭환경을 누리고 있던 미국 노동조합 진영은 초기 이민자들의 직종별 조직과 후기 이민자들의 산업별 조직이 곳곳에서 과도한 조직경쟁을 벌이면서 심각한 조직분열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런 와중에 1953년 서부항만노조에서 부패사건이 벌어졌다. 노동조합이 지하조직과 연루된 혐의가 드러난 것이다. 미국 노총은 해당 노조를 제명하고 자체적으로 윤리위원회를 구성하여 진상조사에 착수했으나 조사는 흐지부지됐다. 그러자 조사의 주도권은 외부로 넘어가서 1957년 상원에 조사위원회가 설치됐고, 여기에서는 추가적으로 트럭운수노조의 독직사건을 밝혀냈다. 미국 노총은 다시 해당 노조를 제명했지만 여론의 성화 속에 의회는 1959년 강력한 노동조합 규제법을 제정했다. 노조 내부의 선거와 재정상태를 외부에서 감독할 수 있게 됐으며, 단체행동은 대폭 제한됐다. 이후 미국 노동운동은 침체일로의 길을 걸어갔고 다시는 회복하지 못했다.

그런데 미국 노동운동은 왜 이런 부패와 분열의 길을 밟아갔을까? 가장 중요한 원인은 노동조직 내부의 차별원칙이었다. 미국 노동시장의 구조는 초기 이민자들이 누리던 기득권이 후기 이민자들에 대한 불이익으로 전가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는데, 노동조직 내부에는 이들 이해관계의 갈등을 조정할 장치가 없었다. 초기 이민노동자들의 직종노조는 배타적 자율성을 누리면서 상급조직의 통제를 거의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차별구조는 노동계급 내부에서 분열의 싹이 되었고 거기에 기대어 특혜를 지키려던 조합원들은 암묵적으로 노동조합 간부들의 전횡을 용인했던 것이다. 노동자간 이해를 조정할 범계급적 노동조직의 부재가 빚어낸 비극이었던 셈이다.

지금 우리 노동운동의 위기가 미국 노동운동의 이런 비극을 너무나 닮아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단위노조의 채용비리가 고용형태의 차별에 기대어 있는 것이 바로 그러하고, 전국조직 내부의 분열양태가 범계급적 이해조정 장치의 부재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치권 일각에서 노조를 규제하기 위한 법률을 제기하고 있는 것까지 그대로 닮아 있다. 미국의 사례는 이런 위기가 단위노조의 제명이나 윤리위원회의 설치로는 해결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제의 핵심은 노동계급 내부의 차별구조이며 우리 노동시장에서 차별의 기준은 기업단위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우리 노동조직의 일차적 과제는 기업별 분할구조를 극복하고 차별적 이해관계를 조정할 초기업적 노동조직의 구성에 있다. 노동조직 지도부가 내부의 합의가 충분히 모아지지 않은 사회적 교섭에 매달리기보다, 내부의 조직발전에 매진했다면 이런 위기의 자초를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깊은 아쉬움이 남는다.

강신준/동아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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