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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13 21:36 수정 : 2005.02.13 21:36



사진 이스라엘군의 검문·검색과 잦은 봉쇄로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을 들어가고 나가는 길은 언제나 고단한 기다림의 연속이다. 지난달 24일 서안지역 라말라에서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갈란디아 검문소 주변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인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1. 아라파트 이후의 팔레스타인
2. 석유와 내전-수단의 명담
3. 이슬람주의 마지막 불꽃, 알제리
4. 중동의 관광대국 꿈꾸는 튀니지
5. 리비아, 투항인가 변신인가
6. 모로코의 정치개혁 실험
7. 중동평화와 이집트의 선택
8. 이슬람주의 산실, 알아즈하르 대학
9. 유헙행 둘러싼 터키의 고뇌
10. 좌담

야세르 아라파트 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사망 이후 중동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나? 베트남전 이후 최대 규모의 국외파병으로 기록된 자이툰 부대 이라크 파병 뒤 중동지역에서 보는 한국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지난해 4월12일부터 한달여 동안 아라비아 반도 일대 국가들에 대한 현지 보고서 ‘중동 깊이보기’를 연재했던 국내 중동학자들이 다시 현지를 둘러보고 돌아왔다.

이번에는 최근 정세가 급변하고 있는 팔레스타인부터 시작했지만, 주로 북아프리카와 터키 쪽을 돌아봤다. 이들 지역은 개방적인 레반트 지역(요르단·레바논 등)과 보수적인 아라비아반도 지역의 중간자적 위치 때문에 ‘중동 속의 또다른 중동’으로 불린다. 30여명의 중동학자들로 이뤄진 ‘21세기 중동·이슬람문명권 연구사업단’(단장 박종평 한국외대 교수)이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지난해 12월부터 올 1월까지 현지를 다녀와 작성한 보고서를 매주 한번씩 10차례에 걸쳐 나눠 싣는다. 편집자주


메카 순례기간 직후 이어지는 이슬람의 큰 축제(아드하)를 하루 앞둔 지난 1월19일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의 라말라 거리는 연휴를 앞둔 인파로 북적였다.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라말라에서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 저녁 6시쯤 도착한 갈란디아 검문소는 밀려든 사람들로 평소보다 훨씬 혼잡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군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가방을 하나씩 모두 검사한 뒤 한사람씩 좁은 회전 철창문을 통해 내보냈다. 검문소 남쪽에는 몇시간씩 기다린 끝에 겨우 검문소를 통과한 사람들을 태우려는 8인승 택시들과 승합차들이 밀려 있었다.

예루살렘행 승합차에 오른 뒤 5분 정도 지났을까, “쾅” 폭탄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죽는구나”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순간 갑자기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폭탄 소리는 팔레스타인인들을 위협해 교통을 통제하기 위한 이스라엘 군인들의 상투적 수단이었다. 함께 타고 있던 현지 기독교청년회(YMCA) 직원 문타세르는 놀라는 내 모습을 보면서 웃었다.

원하는 곳에 가려면 이스라엘 검문소에서 끝없이 줄을 서고, 예고도 없이 검문소가 차단되거나 폭탄으로 위협받는 일은 그들에게는 일상이었던 것이다. 문타세르는 “검문소에 이전에 없던 여성군인들이 많아진 것도 팔레스타인 남성들의 몸과 소지품을 수색해 굴욕감을 주기 위한 것”이라며 때로는 이스라엘 남성 군인들이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몸을 수색한다고 말했다. 가부장적인 팔레스타인 사회에서 이러한 ‘치욕’은 민족적 적대감을 자극한다.

현재 이스라엘 국민은 650만 정도로, 여기에는 팔레스타인계 이스라엘인이 120만 정도 포함돼 있다. 동예루살렘과 확장된 예루살렘 지역에는 이스라엘이 이 지역을 점령한 1967년 이전부터 거주해온 팔레스타인인 40만 이상이 예루살렘 영주권을 가지고 살고 있다. 팔레스타인계 인구를 줄이기 위해 이스라엘은 이들에게 시민권을 주지는 않는다.

팔레스타인인은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서안에 250만, 가자에 140만 이상 등 약 400만명이 이스라엘의 군사점령 아래 생활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 흩어져 사는 팔레스타인인도 480만명이 넘는다. 이런 압도적인 팔레스타인 인구와 상대적으로 높은 출생률은 이스라엘에 가장 위협적인 요소다. 인구분포에서 본다면 시간은 팔레스타인 편인 것처럼 보인다.

이스라엘은 점령지역(6천20㎢)에 사는 팔레스타인인을 통제하기 위해 크게 동예루살렘(345㎢)·요르단강 서안(5천310㎢)·가자지구(365㎢)로 분할해 관리하면서, 이 세 지역간의 이동을 통제하고 있다. 특별한 통행 허가증을 받지 못하면 다른 지역간의 이동은 거의 불가능하다. 또 자치지역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안 내부에서도 각종 장애물을 이용해 도시와 마을 단위로 고립시키는 정책을 쓰고 있다.

다수의석 차지땐 정치판 지각변동
이 "무장단체 해체"-주민 "검문소 제거"
아바스 수반, 평화협상 이정표 먼길

이런 분할과 통행제한은 90년대 이후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평화협상’을 통해 구체화했고, 이 협상을 주도한 사람이 바로 지난 1월9일 선거를 통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된 마무드 아바스다. 그는 이 협상에서 점령지에 대한 이스라엘의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통제에 합의해 줬으며, 그 결과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내부와 점령지의 이스라엘 정착촌을 연결시키는 790㎞에 이르는 관통도로를 건설했다.

또 2002년부터는 높이 8m의 콘크리트 장벽과 도랑, 철제 담, 전기선 등으로 이루어진 ‘분리장벽’을 건설하고 있다. 2004년 6월 현재 총 832㎞로 계획된 이 장벽의 목표는 1967년 전쟁 이전의 경계(약 320㎞)를 넘어 서안의 47.6%를 사실상 이스라엘이 병합하고, 팔레스타인인을 고립시키려는 것이다. 2004년 7월 국제사법재판소는 이러한 분리장벽 건설이 불법이라고 판결했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무시하고 공사를 계속하고 있다. 2004년 11월 유엔 보고서를 보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이동을 통제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용하는 간선도로 위에 서안에 729개, 가자에 154개의 장애물들을 설치했다.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인이 라말라와 베들레헴을 제외한 다른 서안 지역으로 출입하려면 이스라엘로부터 특별허가를 받아야 하며, 가자지역을 방문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또 다른 서안 자치지역 팔레스타인인이 예루살렘을 방문할 때도 특별한 허가증이 필요하고, 허가증 없이 방문하면 감옥형에 처해진다. 이번 수반선거 이후 이러한 분리·고립정책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이제 팔레스타인인들은 아바스 수반에게 그가 90년대 이후 협상을 통해 이스라엘과 합의했던 검문소 등을 제거하고 도로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아오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검문소를 강화하고 계속 장벽과 장애물을 늘려가고, 더많은 땅을 빼앗아가고 민간인들에게 총을 쏘아대는 점령정책이 계속되는 한, 협상을 통해 이 지역의 평화를 이룩하겠다는 것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수반선거 이후 세계 언론들은 이스라엘의 대 팔레스타인 정책이 무엇인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는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대신에, 팔레스타인의 대 이스라엘 정책이 어떻게 바뀌어야할 것인지만 말한다. 그것은 아바스가 하마스 등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를 해체하라는 요구다. 이스라엘에 대항해 가장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온 이들이 바로 무장단체다. 특히 2000년 인티파다 발발 이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의 최우선 목표는 이 무장단체들의 해체이고, 아바스 수반은 이런 이스라엘의 요구를 받아들일 듯한 자세다.

지난 8일 열린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와 아바스 수반의 정상회담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사타르 카셈 팔레스타인 나자대학 교수는 “이스라엘과 미국은 오직 이스라엘의 안보에만 관심이 있고, 이번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도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의 해체였다”며 “양쪽간 휴전이 이뤄져 당분간 조용해질 수도 있겠지만, 그런 상황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상회담 이틀만인 10일 오전 서안지역의 살피트 검문소에서 이스라엘군이 운전 중인 팔레스타인인을 사살하고, 같은 날 정오 무렵 가자지역 이스라엘 정착촌을 팔레스타인 무장단체가 공격하면서 그의 예상은 맞아 떨어지고 있는 듯하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수준 높은 고등교육을 받고 있으며, 사회도 상당히 민주화돼 있다. 현재 서안과 가자지역에는 11개의 종합대학에 약 11만명 이상의 대학생들이 있으며, 이 가운데 5만4천명 정도는 여성이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청년의 33%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밖에 17%의 젊은이가 외국에서 공부하고 있다. 이렇게 질 높은 인적자원은 팔레스타인 미래의 희망일 것이다.

오는 7월17일 팔레스타인에선 자치의회 선거가 실시된다. 하마스 등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과 사회주의자들이 대거 참여해 다수 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 선거에선 자치정부 수반선거와는 달리 이스라엘의 프로그램이 그대로 작동하기는 힘들 것이다. 따라서 7월 선거는 어떤 식으로든 팔레스타인의 정치판도를 크게 바꾸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글·사진 홍미정/한국외대 중동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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