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붐 세대 또다른 혁명 ① 미국과 유럽, 일본의 전후세대를 가리키는 이른바 ‘베이비부머’(1946~1964년생)가 올해 처음으로 환갑을 맞는다. ‘인구학적 혁명’으로 불리는 베이비부머의 등장은 인류의 삶 전반을 뒤흔들었다. 인종차별 철폐와 여권 신장, 반전 운동과 로큰롤, 텔레비전과 자동차, 자유연애와 이혼……. 베이비부머들의 연대기는 20세기 라이프 스타일의 변천사와 겹친다. 베이비부머의 은퇴는 또다른 혁명을 예고한다. 이미 이들이 축적한 거대한 부와 여유를 노린 신종 산업이 분출하고 있다. 정당과 시민단체들도 이들의 복잡한 코드를 읽느라 분주하다. 한편에선, 이들의 공백을 메워야 하는 뒷세대들의 고민이 깊어간다. 이들은 또다시 사람들의 삶을 바꿀 것인가? 베이비부머가 남긴 놀라운 유산과 새로운 숙제를 따라가본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듬해인 1946년 새해 첫날, 자정을 1초 넘긴 시각에 필라델피아의 세인트아그네스 병원에서 예쁜 여자아기가 태어났다. 그 다음날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는 ‘올해 첫 태어난 아기’ 캐슬린 케이시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그땐 그 누구도 이 아기의 탄생이 가진 사회적 의미를 알지 못했다. 케이시의 울음은 인구통계학적으로 가장 놀라운 사건으로 꼽히는 베이비붐(baby boom)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포효'였다. 7800여만명…2006년부터 60대로 이제 한 시대가 지나갔다. 올해 케이시를 비롯한 첫 베이비부머(baby boomer)들은 60살이 됐다. 조지 부시와 빌 클린턴, 도널드 트럼프, 스티븐 스필버그가 케이시와 동갑내기들이다. 케이시는 “우리가 60살이 된 건 사회적으로 하나의 이정표”라고 말했다. 지난 60년 간 세계는 바뀌었다. 베이비부머들은 세계를, 사회를 바꿨다. 베이비부머 세대를 다룬 책 <더 위대한 세대>(The Greater Generation)의 저자 레너드 스타인혼 교수(아메리칸대학)는 “부머 세대 이전에 여성들은 집에 있어야만 했다. 흑인들은 백인과 자리를 함께 할 수 없었다. 동성애자들은 벽장 속에 숨어있어야 했다. 베이비부머들이 기준을 바꿨다. 그 결과 우리는 지금 더 자유롭고, 더 평등하고, 더 관용적인 사회에 살게 됐다”고 말했다. 1961년 영어사전 웹스터에 ‘라이프스타일’(생활양식)이란 말이 처음 등장한 것도 부머 세대를 표현하려는 노력이었다. 인종차별 철폐와 남녀평등, 반전운동, 반항과 열정, 로큰롤, 프리섹스 그리고 이혼…. 미국 베이비부머들의 라이프스타일은 전 세계에 영향을 끼쳤다. 스타인혼 교수는 “그건 마치 들불처럼 퍼져나가며 전 세계의 문화와 사회를 바꿨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본다. 이것은 마치 미국이 1776년 독립선언을 통해 전세계에 큰 영향을 끼친 것과 흡사했다”고 말했다. 베이비부머들이 그 이전이나 또는 이후 세대에 비해 훨씬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데엔 엄청난 숫자가 한몫을 했다. 미국에서 1946~1964년에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는 7800여만명이었다. 부머의 부모 세대가 3천만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두배를 뛰어넘는다. 베이비부머 이후의 이른바 ‘X세대’(1965~1977년)는 4500만명이 채 안됐다. 성평등·반전·로큰롤 등 큰 파장 숫자는 곧 시장이었다. 베이비부머와 함께 시장규모가 커지고 요동쳤다. 1950년대 미국에서 업계의 광고비는 10년새 60억달러에서 120억달러로 늘었다. 미키마우스, 훌라후프, 코카콜라, 토요타 승용차…, 이런 것들이 베이비부머들의 성장과 함께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1990년대 베이비부머들이 사회에서 가장 열성적으로 일할 나이가 되자 주식가격이 치솟았다. 2010년 이후 부머들이 대거 은퇴한 뒤에 주가가 떨어질까 하는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부머들은 과거 어느 세대보다 동질성이 강했다. 여기엔 텔레비전 영향이 컸다. 전직 <엔비시(NBC)방송> 최고경영자였던 브랜든 타티코프는 “텔레비전 그 자체가 베이비부머였다”고 말했다. 1948년 미국의 텔레비전 대수는 40만대가 채 안됐지만 1960년엔 전체 미국가정의 90% 이상이 텔레비전을 보유했다. 부머들은 텔레비전을 통해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을 지켜봤고 베트남전의 참상을 목격했다. 1964년 비틀즈의 미국 상륙도 텔레비전으로 미국과 전세계에 전해졌다. 역사학자 스티브 길론 교수(오클라호마대학)는 그의 책 <부머 네이션>에서 “텔레비전을 통해서 부머들은 사상 처음으로 동일한 문화를 가질 수 있었다. 텔레비전이야말로 부머 세대와 그 이전 세대를 구분짓는 잣대였다”고 썼다. TV보급으로 동질성 형성 첫 베이비부머 케슬린 케이시는 “정말 놀라운 시대를 지나왔다”고 말했다. 그의 인생은 지난 세기 베이비부머 항로의 축소판이다. 그는 부모 세대처럼 일찍 결혼했지만, 그뒤 혼자 공부해 대학을 나오고 직장을 가졌다. 베트남전에 반대했고, 존 에프 케네디와 마틴 루터 킹, 로버트 케네디의 암살에 통곡했다. 첫 남편과 이혼했고, 재혼했다. 이제 그는 사회봉사 활동을 하며 노년을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 워싱턴/박찬수 특파원 pcs@hani.co.kr
“다양성이 우리가 미국사회에 남긴 유산” 1946년 1월1일생 베이비붐 세대 1호 케슬린 케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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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바꾼 그들 ‘고령화 사회혁명’ 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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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1월1일 1초에 태어난 첫 베이비부머 캐슬린 캐이시 커슬링은 60살이 된 소감을 묻는 질문에 “60이란 단지 숫자일 뿐 나는 여전히 젊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뉴저지 체리힐에서 대학교수인 남편 패트릭과 함께 살고 있는 그는 전화인터뷰에서 “나는 앞으로도 내가 하고싶은 일을 계속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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