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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3.02 19:42 수정 : 2006.03.02 23:06

베이비붐 세대 또다른 혁명 ④

380만명 숙련노동력 내년부터 정년퇴직…기업 30%가 위기감
정년연장·퇴직자 고용 추진… 몇달간 ‘도제식’ 기술전수도… 퇴직자 모인 벤처도 잇따라

서구의 베이비붐 세대에 해당하는 게 일본의 ‘단괴(단카이)세대’다. 전후인 1947~49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을 말한다. 약 68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5%를 차지한다. 그 앞뒤 세대에 비해 20~40%쯤 인구가 많다. 단괴(團塊)란 원래 주변과 성분이 다른 물질 덩어리를 뜻하는 광물용어다. 작가인 사카이야 다이이치 전 경제기획청 장관이 76년 미래예측 소설 <단괴 세대>를 발표하면서 사회적 용어로 정착됐다.

이들 세대의 움직임은 일본 사회에서 언제나 새로운 문화와 시장을 만들어왔다. 대도시 교외의 뉴타운, 마이카 붐, 수험전쟁, 대학분쟁 등이 이 세대의 상징어들이다. 고도 경제성장과 대량소비 사회의 주역이었던 이들은 2007년부터 정년을 맞는다.

이들의 대량 퇴직이 가져올 가장 심각한 문제는 숙련 노동력의 공백이다. 기능인력 부족에 따른 기업들의 생산력 저하와 경영 악화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현재 일본의 노동인구는 6600만명 수준이다. 단괴세대가 빠져나가면 10년 뒤엔 노동인구가 380만명 정도 감소하는 것으로 예측됐다. 단괴세대는 일본 제조업의 기둥이다. 제조업 취업자 가운데 55~59살의 비율은 12.6%로 전체 산업평균에 비해 2.5%포인트 높다. 2005년 후생노동성 조사에서는 제조업체의 30% 정도가 이들 세대의 퇴직에 위기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와사키중공업은 지난해 4월 60살인 정년을 1년 연장했다. 노조가 아니라 회사에서 제안했다. 2009년까지 정년을 63살로 늘릴 예정이다. 연금 지급 연령이 늦춰짐에 따라 60살 이상의 계속 고용이 단계적으로 의무화된 측면도 있지만, 60살 정년을 고집하다간 해마다 600명 정도가 회사를 떠나 신규 채용으로는 도저히 보충하기 어렵다는 게 회사 인사 담당자의 얘기다.

다른 기업들도 단괴세대의 계속 고용을 추진 중이다. 그렇지만 이는 위기를 몇년 늦추는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아 젊은층이 이들의 숙련된 기술을 이어받도록 하는 데 안간힘을 쏟고 있다. 아사히맥주는 지난해 10월 회사에서 기술전문가로 지정한 베테랑들로부터 중견사원들이 기술을 1대1로 전수받는 제도를 도입했다. 미쓰비시중공업은 2004년 각 공장에 젊은 기술인력 양성을 위한 기능학교를 설치했다. 20대 후반~30대 중반의 직원들이 몇개월씩 생산라인을 떠나 정년을 앞둔 이들의 직접 지도를 받는다.

‘2007년 문제’와 전혀 무관한 회사들도 있다. 지난 2월17일 찾아간 마에카와제작소 모리야 공장에선 정년을 훨씬 넘긴 흰머리 노동자들이 꽤 많이 눈에 띄었다. 선반공 이노쓰카 쓰기오(66)는 입사 3년차인 젊은이에게 정밀가공을 위한 도면작성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70살까지 일을 한 뒤 노후를 즐길 계획이라는 그는 “주변에 정년퇴직 뒤 일용직 등으로 일하는 친구들에 비해 혜택받은 셈”이라며 “젊은이들과 함께 일하니 마음은 여전히 젊다”고 말했다.


냉동설비 분야에서 첫째가는 이 회사에선 사실상 정년이 없다. 60살이 되면 일단 퇴직해 고령자활용센터로 옮긴 뒤 본사 파견 형식으로 1년 단위 재고용 계약을 맺는다. 고령자의 기력 쇠퇴와 인건비 부담을 고려해 임금은 정년 때의 60% 수준으로 지급된다.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본인이 원할 때까지 일할 수 있다. 70살 때 이 회사의 히트상품을 개발한 95살 노동자가 있는가 하면, 다른 회사에서 정년퇴직한 뒤 이곳으로 온 직원들도 있다. 국내 직원 2천명 가운데 정년을 넘긴 사람이 150여명에 이른다. 마에카와의 이런 방침은 ‘옛날 장인은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고 판단했을 때가 정년’이라는 경영철학에서 비롯했다.

이밖에 정년퇴직한 노동자들의 능력을 썩히는 게 안타까워 퇴직자들을 모아 만든 벤처업체들도 잇따라 출현하고 있다. 후생성 조사에서 단괴세대 남성의 70% 정도가 65살을 넘겨서도 일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나타냈다. 그러나 이들을 그때까지 받아주겠다는 업체는 많지 않다.

모리야/글·사진 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연극·밴드·요리…‘회사인간’들이 다시 찾은 꿈

정년 대상 강좌 급증
동남아 국가들 유치전도

가부키 극장 메이지좌에서 개설한 배우양성 강좌에서 50·60대 장년층들이 연극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그 장면에서 감정을 확 집어넣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야지요.”

2월16일 오후 유명 가부키 극장 메이지좌에서 개설한 중·장년층 대상 배우양성 강좌 ‘미들시니어부’ 연습실. 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았거나 퇴직이 임박한 사람들이 강사의 일거수일투족에 눈과 귀를 집중하며 연극 연습에 열중하고 있었다. 금융기관에서 일하다 지난해 조기 퇴직한 무라키타 요시히코(59)는 “회사원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런 세상이 있었는가 싶을 정도로 재미있다”고 말했다.

인쇄제본회사를 운영해온 기시다 소이치(59)는 지난해 여름 부인·딸·고교선배 등 7명과 밴드를 구성해 한 백화점에서 연 ‘아버지 밴드 연주대회’에 출전했다. 11월에는 라이브클럽에서 공연도 했다. 고교 시절 전자기타에 푹 빠졌으나 가업에 쫓겨 음악을 잊고 지냈던 그는 30여년 만에 꿈을 되살렸다.

‘회사인간’으로 불려온 단괴세대가 정년을 앞두고 제2의 인생 찾기에 나서고 있다. 재단법인 베터홈협회가 지난해 4월 장년층 남성을 대상으로 개설한 요리교실에는 50~80살 남성 1500명이 수강해 대성황이다. 이 협회 전체 요리교실의 남성 수강생은 지난 10년 동안 4배로 늘었으며, 60살 이상이 60%를 차지한다. 야마하는 지난해 봄부터 ‘50살 이상의 음악레슨’이라는 강좌를 열었다.

각 지자체는 은퇴한 이들이 자기 지역에 정착하도록 권유하는 홍보전을 펼치고 있다. 동남아 나라들도 이들에게 일본에 비해 훨씬 안락한 노후생활이 가능하다며 손짓한다. 좀더 뜻있는 노후를 설계하는 단괴세대를 대상으로 자원봉사나 비영리법인(NPO) 활동 참가를 이끌어주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증권사와 은행들은 46조8천억엔으로 추정되는 이들 세대의 퇴직금을 겨냥해 새 금융상품을 속속 내놓고 있다.

도쿄/박중언 특파원

‘단괴 잘 활용하는 기업이 승자될 것”

전문가 진단

‘단괴(단카이) 세대’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사카이야 다이이치(70) 전 장관은 이들의 대량 퇴직에 따른 경제·사회·문화적 충격을 낙관적으로 본다. 지난해 <단괴세대 ‘황금의 10년’이 시작된다>라는 책을 펴낸 그는 “나 자신 인생을 되돌아보면 60대가 가장 좋았다”며 “돈도 시간도 아껴가며 윤택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60대 들어서부터”라고 말했다.

사카이야 전 장관은 단괴세대는 정년이 돼도 일할 의욕이 풍부하고, 기업 또한 종신고용·연공임금에 얽매일 필요 없이 주 4일 또는 하루 6시간과 같은 식으로 이들을 값싸게 고용할 수 있어 ‘윈-윈’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1990년대는 중국의 노동력이나 수입 쇠고기 등 값싼 재료로 비용을 절감한 기업들이 승자가 됐지만, 2010년에는 단괴세대의 노동력을 잘 활용하는 기업이 승자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 세대가 언제나 일본의 시장을 주도해 왔다며 “기업들은 고령자의 눈높이에 맞춘 시장 개발엔 무지하며 ‘건강한 고령자’라는 거대한 시장이 개발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고 말했다.

세이케 아쓰시(51·노동경제학) 게이오대 교수는 “2007년 문제라는 설정 자체에 위화감을 느낀다”며 “문제의 원흉은 60살을 정년이라며 퇴직시키는 기업의 제도에 있다”고 역설했다. 세이케 교수는 정년은 본격적인 고령화 사회에서 큰 인적 손실을 낳을 수밖에 없으므로 장기적으로 정년퇴직제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단괴세대가 ‘생애 현역사회’(은퇴 없이 계속 일하며 사는 것) 실현의 선도역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고령자가 활기차게 일을 해 연금·의료보험 등의 부담을 나눠 지는 쪽에 머물러 있게 되면 일석이조가 될 것”고 말했다.

유명 작가 오치아이 게이코(60)는 “커다란 사회적 과제인 부모 세대의 개호(수발)를 하면서 자신이 나이들어 가는 것을 예행연습하는 게 단괴세대”라며 “거기서 알아낸 것들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데라시마 지쓰로(59) 일본종합연구소 이사장은 “단괴세대가 다음 세대의 짐이 될 것인가, 사회를 지탱하는 쪽이 될 것인가 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며 “개인이 할 수 있는 분야를 택해 공공의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게 단괴세대에 대한 사회의 요구”라고 강조했다.

도쿄/박중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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