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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14 22:25 수정 : 2005.02.14 22:25

2차대전 당시 연합군의 독일에 대한 최대의공습이었던 드레스덴 폭격으로 사망한 희생자들을 기리는 60주년 추모 행사가 지난13일 큰 소란 속에 끝났다.

폭격 60주년을 맞은 이날 동독지역 작센주(州) 주도 드레스덴에서 5만여 명의시민이 당시 희생자 가족 외에 연합국이었던 미국과 영국, 프랑스, 러시아 측 대표들도 참석한 가운데 어느 때보다 성대하게 추모식을 실시했다.

그러나 나치 독일의 죄악을 인정하고 책임져온 바탕 위에서 민간인 피해자들을추모하며 청산과 화해의 역사를 열어가려던 독일 정부와 시민단체들의 노력은 같은장소에서 벌어진 전후 최대 규모의 극우파 시위로 빛이 바랬다.

나치를 추종하는 극우 민족주의 세력은 이날 드레스덴 곳곳에서 `연합군의 무차별 폭격'에 대한 미국과 영국의 사과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히틀러가 좋아했던 바그너 음악이 울리는 가운데 6백만명의 유대인을 비롯해 숱한 인명을 조직적으로 살해한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과 드레스덴폭격을 비교하는 구호들을 외쳐댔다.

나치 친위대(SS) 요원 출신이자 극우정당 가운데 하나인 공화당 지도자 프란츠쇤후버는 "도대체 나치의 잔혹하다는 강제수용소와 1945년 드레스덴에 폭탄을 떨어뜨린 미군 조종사와의 차이는 무엇이냐"며 시위대를 선동했다.

연합군은 2차대전 말기인 1945년 2월13일 밤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작센주 주도이자 동독지역 최대 공업도시였던 드레스덴을 대대적으로 공습해 사망자만 최소 3만5천명으로 추계될 정도로 초토화시켰다.

이날 극우파 시위대들의 주장은 독일 정부와 민간이 2차대전과 유대인 학살 등에 대해 끊임없이 사과하고 책임을 져온 곳을 거꾸로 뒤집는 것이다.


이들은 나아가 "드레스덴, 히로시마, 베트남, 바그다드 - 미군 폭격 테러리스트들"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나무 십자가를 들고 행진했다.

극우파들의 이러한 주장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날 시위대 규모는 5천명이 넘어 전후 극우파 시위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해 독일 여야 정당들은 일제히 극우파를 비난하고 교회와 노조, 시민단체들도 드레스덴에서 1만여명이 `반극우, 반나치'시위를 벌이며 맞불을 놓는 등합리적 시민세력이 압도적이므로 크게 염려할 것 없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도 행사에 앞서 낸 성명을 통해 "우리가 드레스덴 폭격희생자를 추모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독일인이 치른 희생에 초점을 맞추려는 것은 원인과 결과를 혼동시키는 역사의 왜곡”이라며 강력히 비판했다.

슈뢰더 총리는 또 "나치 희생자에 대한 우리의 의무는 이런 혼란을 용납하지 않는다"면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극우파들의 준동에 대항해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드레스덴 폭격 60주년 추모 행사는 최근 반유대주의가다시 고개를 들고 외국인에 대한 적대범죄가 늘어나는 가운데 의회에 진출한 극우정당들이 주도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우려를 낳고 있다.

지난해 가을 드레스덴이 속한 작센주에서는 사실상 히틀러를 추종하는 국가민주당(NPD)이 10% 가까운 지지율을 얻으며 처음으로 주의회에 진출하고 수도 베를린을둘러싼 브란덴부르크주에서도 극우정당이 의석을 확보했다.

극우파 정당들은 오랜 경기 침체와 5백만명이 넘는 실업자 등 서민들의 생활이크게 어려워지면서 고조된 사회적 불만을 세력 확장의 절호의 기회로 삼고 있으며내년 총선에선 연방의회에도 진출하기 위해 선거연합 구성에 합의했다.

(베를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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