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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14 23:34 수정 : 2005.02.14 23:34

내전으로 폐허가 된 레바논의 재건사업을진두지휘했던 라피크 하리리(60) 전(前) 총리가 14일 폭탄 테러공격에 희생됐다.

공교롭게도 하리리 전 총리가 폭사하기 하루 전 범아랍 신문 알-하야트는 국제사회가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에게 그를 암살하지 말도록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하야트에 따르면 국제사회는 아사드 대통령에게 하리리 전 총리와 레바논의 시아 이슬람계 드루즈파 지도자인 왈리드 줌블라트를 암살할 경우 국제사회로부터 완전 고립될 것이라는 경고 메시지를 전달했다.

아사드 대통령은 하리리 암살사건을 "끔찍한 범죄행위"라고 규탄하며 시리아의관련성을 간접적으로 부인했다.

그러나 오는 5월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이 사건이정치 테러라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리리 전총리는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건설업으로 부를 축적한 억만장자 사업가출신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그는 1992년 첫 집권하면서 전후 재건과 개혁의 전도사를 자처했다.

사우디 및프랑스 등과의 탄탄한 유대를 바탕으로 국제사회로부터 전폭적인 재건지원을 끌어낼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실제로 그는 한차례 중도 사임했던 시기를 제외하면 지난 12년간 내내 총리를맡아오면서 1975-90년의 내전으로 파괴된 기간시설을 재구축하고, 베이루트의 얼굴을 완전히 뜯어고치는데 앞장섰다.

그의 재임기간 수십억달러 규모의 프로젝트들이속속 추진됐다.

이때문에 그는 아주 상반된 평가를 받고있다.

내전으로 피폐화한 레바논 경제의 구세주라는 찬사의 이면에는 정부예산을 낭비해 외채를 불리고 파운드화 안정을 위해 금리를 천정부지로 올렸다는 비난이 빗발쳤다.

그는 내전이 끝난지 2년만인 1992년 총리에 첫 취임한뒤 1998년 에밀 라후드가대통령에 처음 당선되자 사임했다.

분석가들은 당시 하리리의 사임 배경을 총리의권한이 약화되고 있는데 대한 불만으로 해석했다.

하리리는 2000년 9월 총선 압승으로 총리에 복귀했다.

그러나 그는 전력,통신등 국가기간산업을 민영화해 50억달러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추진하려다 이에 반대하는 라후드 대통령과 사사건건 마찰을 빚었다.

지난해 10월 시리아에 대한 유엔안보리의 철군압력이 가중되던 시기에 하리리는전격 사임을 발표했다.

라후드 대통령의 임기 연장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

하리리는 사임 후 시리아군 철수를 요구하는 야당 진영에 가세했다.

5월 총선에앞서 의회 내 입지를 새로 다지고 라후드 대통령에 대한 압박수위를 높이는데 주력해왔다.

남부 항구 도시 시돈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8세 때 사우디로건너가 20년간 건설업에 종사하며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그는 레바논에서도 TV 방송국과 여러 신문사들을 소유하고 있다.

포브스지(誌)는 2003년 하리리를 38억달러의 재산을 가진 `세계에서 가장 부자'대열에 올렸다.

수니 무슬림인 그는 두번 결혼해 7명의 자녀를 두었다.

(카이로/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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