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03.29 20:19 수정 : 2006.03.29 22:14

<가제타 비보르차> 3월27일치 별지 1면

<가제타 비보르차> 3월27일치 별지 1~5면

* 번역 : 포즈난/임성호 통신원 번역 sunislandsungho@hotmail.com

클레차노프의 스타니스와프 도벡같은 사람들을 이용해서 북한대사관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오파투프와 산도미에스 사이에 있는 이 시골 마을에 있는 큰 과수원에는 북한 노동자들이 묵묵히 감시를 받으면서 일하고 있다. 여권도 없으며 어디도 갈 수가 없다. 월급도 받지를 않는다. 당이 이 모든 것들을 관리한다.

2월에는 나무 사이에 있는 눈들 치웠고 3월부터는 가지치기를 한다.

이 과수원은 조-폴 친선협회 회장인 스타니스와프 도벡의 소유이다. 그의 농장에서 북한 노동자의 하루는 평범하게 보인다. 농장 뒷견의 농기계와 사과를 보관하는 창고에서 일어나서 직접 아침을 준비한다. 밥과 배추와 양파로 만든 김치를 먹는다. 그리고 나서 점심시간까지 작업. 점심 먹으러 자신들의 숙소로 돌아가서 김치와 밥을 먹는다. 그리고 나서 다시 작업한다.

쌀은 북한 대사관에서 공급하고 배추와 양파는 과수원에서 자라는 것을 사용한다.


휴일때는 조선 노동당의 당원과 아마도 정보요원같은 관리자들이 노동자들을 데리고 관광을 떠난다. 이 관광은 스타니스와프 도벡이 비용을 지불한다. 이런 관광은 사상적 교육 차원에서 이루어지도록 당은 원한다. 북한 사람들은 수영장이나 극장에도 가지는 않지만 주변 시나 군의 회의에는 참가한다.

<가제타 비보르차> 3월27일치 별지 2면
“우리 군의회 회의에 왔었죠. 열심히 듣고 웃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했죠. 아마 거의 이해를 하지 못했을 거예요. 폴란어를 못하거든요.” 클레차누프가 속한 오브라주프 군수 레흐 니에즈고다는 말했다.

여름과 가을에는 지역 사과 추수 축제에도 참가한다. 짧은 팔의 하얀 와이셔츠와 싸구려 넥타이를 한 이들은 사과를 맛보며 주변 사람들에게 웃음을 지어 보이곤 했다. 지역의 주민들은 이국적인 손님들과의 기념촬영을 원하지만, 관리자들은 사진 찍는 것을 허락하지는 않았다. 웃으면서 거절을 했지만 단호했다.

대략 한달에 한번씩 이 농장에서는 ‘내부 모임’이 열린다. 대사관에서 파견된 직원이 농장으로 온다. 이들은 농장 창고에서 모여서 문을 잠근 후에 몇시간동안 사상교육을 시킨다. 같이 북한 신문을 학습하고, 김일성의 책과 김정일의 발언을 읽는다.

북청(?)에서 온 노동자들

북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바르샤바 주재 북한대사관에 지인이 있는 폴란드 외교관이 클레차노프의 ‘노동자 수용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가명을 미코와이라고 하자.

“수명 단위의 북한인들이 4년전부터 클레차노프로 옵니다. 거의 대부분 사과 과수원들이 밀집한 서해안의 북청(Puchon?)지역에서 온다. 그곳에는 엄청난 규모의 집단 농장이 있지만, 시설은 아주 열악하다. 장비도 없고, 차량도 없다. 단지 노새나 사람들이 끄는 수레정도 밖에 없다.

이 농장 근로자들은 월 1만~1만5천원 정도를 받는다. 쌀 1kg이 1000원이다. 5년 전 기근이 심각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었다. 현재는 국가에서 정기적으로 무료로 석탄과 배추를 수당의 형식으로 받는다. 농장에 있는 사과는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 아무도 그 과일들을 사지 않는다. 수요가 없고 아직도 그곳에는 자유시장체제가 없다. 그밖에도 기후가 적당하지 않기 때문에 사과 경작도 그다지 신통치가 않다. 그렇지만 예전에 당에서 과실 경작은 다양해져야한다고 하기도 인정하기도 했다.

노동자들의 북한에서 클레차노프로으로 이동하는 문제는 평양에 주재한 폴조친선협회가 담당한다. 폴조친선협회는 외국친선위원회라는 거대한 조직 속의 한 부분이다.

외교관 : “김정일은 외국친선위원회에 해외에서 북한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들라고 지시을 내렸다. 특히 각국 친선협회라는 이름의 조직들은 ‘자신의 국가’에서 정권과 친분한 인사를 찾는 게 그 임무이다.

<가제타 비보르차> 3월27일치 별지 3~5면

도벡은 바웬사의 명성을 지운다

클레차노프의 스타니스와프 도벡은 폴란드에서 가장 중요한 친북인사이다. 그는 북한에서 레흐 바웬사보다 더 많이 알려져있다.

큰 키, 넓은 어깨를 가진 60대로 보이는 우아한 이 남자는 농업 기술을 공부했다. 통일농민당(공산당의 어용당이었음)과 군 인민위원회에서 활동하였고, 현재는 지역 의용소방대의 대표이고 농민당의 당원이다. 게다가 바르샤바 민중운동박물관 후원회 회장이고 오파투프의 폴-조 친선협회 회장이기도 하다.

올해는 김일성 주석의 93회 생일 기념주간에 초청받았다.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 외국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훈장인 1급 우정 훈장을 받았다.

훈장에는 있는 붉은 별은 주체의 불을 의미한다. 폴란드에서 운영되고 있는 북한의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주체는 인민대중과 지도자와의 끊을 수 없는 관계 형성을 가능하게 하는 이데올로기라고 설명되어있다.

북한의 방송에서도 몇분동안 스타니스와프 두벡에 대해서 언급했다. 폴란드에서 온 손님은 카메라를 동행한 채 유치원과 병원을 방문했다. 그 다음날에는 그의 사진이 <노동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태양절의 연회

폴란드에는 현재 오트보첵, 르보벡 실롱스크, 그디니와 포들라시아 지방의 보칙과 같은 곳에서 폴-조 친선협회의 지부가 활동하고 있다. 이 협회의 회원들은 다수가 전 폴란드 통일노동자당(사회주의 시절의 폴란드 공산당의 정식명칭)의 당원, 지구당 위원장, 기초 당조직의 간부들이다.

그들 중에서는 50년대 북한의 전쟁고아들을 담당했던 사람들도 있다. 수천명의 북한 전쟁고아들이 전쟁 당시 폴란드로 ‘사회주의와 인터내셔널의 정신교육을 위해’ 왔었다. (그밖의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로도 수송되어졌다.) 아이들은 오토벡과 르보벡 등의 지방에 특별하게 준비된 고아원에 수용되었다. 그들중 이후에 아무도 폴란드에 남진 못했다.

형식적으로 폴-조친선협회의 지방 협회은 바르샤바에 있는 본부의 지부이다. 실제로는 이들은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각 지방 협회의 회장들이 별도로 북한 대사관과 접촉을 한다. 일년에 세차례 -2월 김정일 생일, 4월의 김일성 생일(이날은 태양절로 불리며 규모도 가장 크게 열린다.), 9월 창건기념일- 이들은 연회를 연다.

외교관: “북한 대사관은 이들을 정보수집을 하는 데 이용한다. 지방 협회의 각 회장들은 그들의 ‘관리인’이 있다. ‘관리인’은 우선 폴란드인들에게 북한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갖도록 만들고 다음에는 그들이 관리하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원하는 정보를 모두 얻어내는 데에 그 임무가 있다.”

값싼 사과와 비싼 북한

클레차노프는 150 가구쯤 되는 농촌이다. 5백여명의 주민들이 주로 과수원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길 양편으로 지금은 잎이 없는 사과나무, 체리나무와 살구나무가 수킬로에 걸쳐 퍼져있다.

스타니스와프 도벡은 이 주변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에 속한다. 큰 과수원, 큰 저택, 검은 BMW가 집앞에 서 있다. 이 사람은 단지 지방지의 기자들과만 기꺼이 인터뷰를 한다는 정보를 알아냈다. 북한 대사관에서 교육을 시킨대로 미제국주의자들의 배후로 전국지는 ‘조선 인민과 경애하는 지도자 김정일’에 대한 비방을 하기 때문에 이들은 기피한다고 한다.

‘프리렌서 기자’로 자신을 소개하고 인터뷰를 요청했다.

징두리 벽판으로 덮혀진 큰 홀로 그와 두 명의 친구들(의사와 지역주민대표)이 우리를 초대했다. 이들 두명 다 오파투프 폴-조 친선협회 회원들이다. 소파에 앉아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쳉스토호바의 성모상이 보인다. 텔레비전 밑에는 예전에 유행했던 미국영화인 <세븐과 <아마게돈 비디오 테이프가 놓여져 있다.

“1킬로에 겨우 1즈워티정도예요.” 지역주민대표는 과일 가격이 굉장히 낮고 주변의 과일 가공공장을 구매한 오스트리아의 자본가에 대한 불평부터 시작했다. 그는 이 집의 주인장과 함께 과거 사회주의 시절을 감동적으로 회상한다.

“사회를 위해서 약국, 휴게실, 의용소방대 건물과 다기능 4층 건물을 건설했어요. 농민조합은 마차로 비료를 이곳으로 실어왔죠. 심지어 계엄령때에도 부족한 게 없었는 데…지금은….”

주인장은 탁자 위로 북한에서 가져온 술병을 올려 놓는다. 지금부터 북한과의 관계에 대해서 물어볼 때다. “1997년 민중운동 박물관 기념식에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죠.” 라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들은 북한의 식량위기에 대해서 말했어요. 그때 도와주기로 결정했죠. 그때 지역에서 성금을 모금해서 1000즈워티(약 33만원 상당의 금액)가 넘는 금액을 대사관에 전달했어요. 아주 고마워했죠. 그때 대사가 직접 이곳으로 왔어요.”

폴란드 주재 북한대사는 52살의 김평일이다. 그는 김일성의 아들이며 경애하는 지도자 김정일의 친동생이기도 하다.

형과 비슷한 김평일은 북한에서 최고의 대학인 인민 혁명대학을 졸업했다. 그곳에서 군부 엘리트들과 친분을 쌓았다. 그렇지만 형은 그가 국내에서 활동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경쟁자를 ‘해외 공관’의 권좌로 보냈다. 김평일은 헝가리와 불가리아, 핀란드대사를 지냈다. 1998년부터 주 폴란드 대사로 있다. 두 명의 자식들도 폴란드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대사의 방문 후 스타니스와프 도벡은 평양으로 초대를 받았다. 그 중에서도 북한사람들이 극찬하는 제국주의에 대한 북한인민군의 승리의 증거인 1964년에 나포된 미 첩보함 ‘푸에블로호’를 방문하기도 했다.

“또 미군이 백명의 여자들을 강간했던 곳도 갔었죠. 한국전쟁동안 미군이 400명이 아이들을 물도 주지않고 가두었던 건물도 봤어요. 그때 일주일이 지난 후에야 휘발유를 마시라고 줬데요.”

- 어떻게 그걸 알았죠?

= 안내원이 그 당시 구출된 아이들의 증언를 기록해둔 서류를 보여줬어요.

- 그걸 믿으세요?

= 그때 부대 지휘관 이름도 알아요. 헤링턴.

“기아는 없다. 단지 약용과 식용으로 잎을 닳여먹는다.”

주인장은 연속해서 북한 술을 권했다. 분위기가 한층 자연스러워졌다. 도벡은 북한의 미제국주의자들과의 전투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북한의 모든 문제는 미국으로부터 독립하려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요. 그렇지만 부시는 누가 자신에게 반대하는 걸 좋아하지 않죠. 예전에는 미국인들이 북한을 침략하더니 지금은 경제적으로 망치고 있어요. 미국인들이 한국을 둘로 나누는 벽을 세웠잖아요. 그리고 아무도 그 선을 넘어서 가지 못하게 지키고 있는 것도 그들이죠.”

- 그럼 북한군이 북한사람들이 남쪽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있다는 것은 거짓말인가요?

= 그건 다 미국을 추종하는 언론의 선동이예요. 북한 사람들이 배고픔으로 가지들을 먹는 다는 것 증명하려고 만든 미국인들이 만든 영화들도 다 봤어요. 난 어땠는 지 알아요. 거기서는 잎을 따는 게 아주 보통이죠. 기자들이 양념용이나 닳여 먹기 위해 가지를 꺽는 사람들을 찍고는 거기다가 기아에 대한 자신들의 설명을 넣은 거예요..'

- 그럼 북한에서는 굶지 않던가요?'

= 말도 안돼는 소리! 거기서 굶는 사람을 본적이 없어요.

- 그럼 뭘 보았나요?

= 거기서 부유하지는 않지만 배부르게 먹고 웃음 가득한 사람들을 봤죠. 연료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예요. 자동차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거든요. 그래도 공기는 신선하잖아요. 그렇지만 폴란드 언론들은 폴란드에서 굶고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해요. 시비엥토크지스키 주에서 매달 경제적인 이유로 50명이 자살을 하고있어요.

깨끗한 거리들, 한쪽으로 치워진 탁자들

외교관에게 우리의 대화내용을 나중에 전했다.

“도벡의 관점들은 북한 대사관과 평양으로의 관광에서 세뇌의 영향입니다. 북한사람들은 완벽하게 균형잡힌 인간의 의식을 조종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어요. 도벡과 같은 사람들이 이 모든 말도 안되는 얘기를 널리 퍼트리는 게 이들이 계획하는 겁니다. 그중에서도 지역 언론들의 기자들을 설득하기가 가장 쉽기 때문에 지방 언론들과의 접촉은 항상 기꺼이 하는 것입니다.” 외교관은 말했다.

이러한 만남들의 결과로 나온 몇몇 기사를 입수할 수 있었다. 2003년 4월에 시비엥코크지스키 주의 한 지역신문에 도벡과 그의 지인들이 평양방문기가 실려있다. “조용하고 평화스럽고..이것이 첫 인상이다…. 거리에는 차들이 별로 없다. 사람들의 인파도 없다. …비록 나라는 가난할 지라도 굶는 사람이나 거지들도 없다. …북한에서 본 규율은 외국인들에게는 엄청난 인상을 주는 것이다. 거리는 굉장히 청결하다. 잎 한점, 종이 조각이나 타고 남은 재도 떨어져 있지 않다. 모든 주민들은 저마다 알맞은 구역이 정해져 있다. 매일 식사에 수개의 요리가 나오고 명절 때는 십수가지의 진미가 차려진다.”

하얀 뱃지를 단 당원들은 누구 ?

클레차노프에서의 대화는 이미 세시간째다. 주인장은 양복을 벗고, 주민대표는 넥타이를 푼다. 계속해서 북한에서의 기아가 비극적인 사실인가 아니면 제국주의자들이 만들어낸 선전인가에 대해서 얘기한다. 이들 두 사람처럼 미국의 거짓말을 믿지 않은 의사는 급기어 북한사람을 불러오라고 제안한다.

주인장은 집뒤에 있는 사과 창고로 간다. 그리고나서 작고 마른 50대처럼 보이는 검소한 검은 바지와 점퍼를 입은 한 남자와 같이 들어온다. 그의 가슴에는 조그마한 김일성 배지가 달려있다.

모든 북한 사람들은 김일성 뱃지를 결혼식날 받는다. 이 뱃지는 평생을 같이하게 된다. 잃어버리거나 파는 것도 금지되어있다. 뱃지와 같이 살고 죽는다. 뱃지에는 공식적인 서열은 없다. 그러나 외교관의 말에 의하면 평양 거리를 걷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일반 시민들과 당원,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하고 다는 뱃지들은 좀 다르다는 것이다. 또한 외국에서 방문한 손님들도 다른 것을 달고 다닌다.

스타니스와프 도벡도 자신의 뱃지를 가지고 있다. 이 사람의 뱃지는 이 공산주의 천국을 정보기관의 ‘안내원’없이 다닐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가장 최고의 것에 속한다.

지금 첫잔을 마시는 이 북한 사람의 뱃지는 하얀 배경이다. 이것은 뱃지의 소유자가 노동당의 당원이라는 것이다. 외교관에 의하면 그는 정보요원이며 과수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감시하며 자신도 일을 한다는 것이다.

“폴란드 생활이 맘에 드세요?” 대화는 러시아어로 진행된다. 이 북한사람은 매질문마다 얼마동안 질문을 생각한다. 곧바로 앉아서 거의 낭독하듯이 유창하게 이야기한다. 눈을 똑바로 쳐다본다. “폴란드는 형제같은 나라죠. 경애하는 지도자동지에게 위대한 우정의 징표를 보여줬어요.”

- 무슨 일을 하십니까?

= 현재 위대한 친구의 농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기술을 배우고 있죠. 조국으로 돌아가서 다른 동무들과 경험들을 나눌 것입니다.

- 오늘은 무엇을 하셨죠?

= 과수기술을 배웠다고 이미 말했잖아요.

- 지내는 건 어떻습니까?

= 아주 좋습니다.

- 숙소를 볼 수 있습니까?

= 그건 안됩니다.

- 그러면 다른 분들과는 얘기해볼 수 있을까요?

= 그건 안됩니다.

- 왜죠?'

=(한동안 좀 길게 침묵한 끝에 반복한다) 절대 불가능합니다.

-'그럼 북한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 지 이야기 좀 해주세요.

= 아주 잘 살고 있어요. 만일에 문제가 발생하면 친해하는 장군님의 도움으로 즉시 해결합니다. 그럼 제가 질문을 하나 해도 될까요?

- 예 하시죠.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여러가지죠….

도벡이 끼어들며서 이야기 한다. “그럼 기자선생을 북한으로 초대할 수도 있죠. 거짓 정보에 의존하느니 가서 직접 눈으로 보는 게 낫죠. 교통비만 부담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북한 정부에서 다 부담합니다.”

화동들, 리무진, 호텔

스타니스와프 도벡은 이미 세번이나 북한을 방문했다. 그는 북한 노동당의 중요한 손님으로 대접받는다. 외교관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해줬다. “이런 사람들은 평양에 도착해서 비행기에서 내리자 마자 국가원수처럼 영접을 받습니다. 화동들이 그들을 맞이하죠. 그리고 세관통관도 면제됩니다. 그리고 바로 준비된 리무진을 타고 호텔로 갑니다. 거의 대부분 양각도로 가죠. 이 호텔은 5성에다가 40층입니다. 마지막 층에는 식당이 있죠. 귀빈들에게는 음식(맥주도 함께)이 공짜로 제공됩니다. 호텔은 외국인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13층은 북한사람들이 쓰고 있어요. 엘리베이터도 멈추지 않죠. 외국인들은 접근금지 구역입니다.”

도벡은 올해 양각도호텔에서 머물렀다. 그곳에 외국인 전용층에 잇는 아파트룸을 받았다. 북한 술을 한잔 더 한 뒤, 그는 올 휴가도 평양에서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 가정은 방문할 수 없다.

“심지어 김정일도 비공식적으로 시민들의 가정을 방문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요. 그럼 항상 하던 거 하겠죠. 김일성 묘지와 적합하게 교육을 받은 직원들이 그림을 그리고 경애하는 지도자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는 행복한 아이들을 보여주는 학교들과 병원들을 방문할 것입니다.” 노동당이 다음에 그의 과수원에서 일할 노동자들을 선발한다.

외교관: “노동당은 자본주의를 보고 쓸데 없는 생각을 할 가능성이 없는 사상성이 강한 사람들로 선발합니다. 그들의 가족들은 인질로 북한에 남아있는 거죠. 폴란드로 오는 사람들은 만일에 탈출할 경우 그들의 가족은 모두 수용소로 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이 노동자들은 평양의 정부가 클레차노프의 친구에게 주는 현대의 노예들입니다.”

공짜로 일한다. 돼지 옆에서도 또한…

이 ‘선물들'은 기차로 폴란드에 도착한다. 이들은 평양의 폴란드 대사관에서 발급한 관광비자를 받고 9일동안 기차를 타고 입국한다. 북한 정부가 기차비용을 지불한다. 바르샤바 중앙역에는 대사관에서 나온 버스가 이들을 기다린다. 폴란드에서 처음 이틀동안 노동자들은 교육을 받는다. 이들이 보게 될 자본주의 병인 많은 것들에 대해서 설명을 해줘야 한다. 그들은 실수를 해서는 안된다.

클레차노프로 온 후에 당의 관리자는 이들 모두와 자신의 여권도 도벡 회장에게 준다.

“이 여권들은 실습생들의 안전을 위해서 보관해두는 겁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 실습생이요?

= 이사람들은 작업보다는 교육을 많이 받습니다.

- 오늘 하루 종일 가지치기하고 운반하는 것을 봤는 데요. 이들에게 임금을 지불하세요?

= 용돈정도 줍니다.

- 얼마나요?

= 그게 뭐 중요합니까?

“스타시우(스타니스와프의 약칭)는 한푼도 지불하지 않아요”라고 술로 약간 취한 의사가 끼어들었다. “공짜로 일해요. 이사람 농장에서 뿐만 아니라. 돼지 농장에 이 사람들 빌려준 것도 얘기해.”

주인장은 마지 못해 북한 노동자들이 또한 아는 사람의 돈사에서도 ‘실습’했다고 인정했다. “그 농장에는 2000두의 돼지가 있어요. 우리 손님들이 최신 사육기술을 배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어요.”

- 그럼 실습생들을 위해 보험을 가입했습니까?”

= 아니오. 내가 알고 있기로는 그건 대사관에서 담당하는 건데요.

의사가 다시 솔직하게 얘기한다. “보험이 필요없어요. 무슨 일이 있으면 내가 치료해요.”

지난 4년동안 북한 노동자들에게 다행스럽게도 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가장 큰 사고는 손가락 중 일부를 절단했던 일이다. 상처는 개인 병원 외과의사가 치료했고. 비용은 도벡이 지불했다.

서류상으로는 단지 베트남 사람일 뿐

- 몇명이나 이농장을 거쳐갔습니까?

= 현재까지 세그룹이 있었죠. 두번의 4명짜리 그룹과 한번의 3명짜리 그룹이었어요. 4개월에서 반년까지 다양하 있습니다. 봄에 새로운 그룹이 올겁니다.

외교관: “대사관의 아는 소식통에 의하면 이미 30명이 그의 농장에만 다녀갔습니다.”

클레차노프의 한 상점에서 만난 동네 주민; “몇몇은 계속해서 볼수 있어요. 그러나 이 사람이 그 사람인지는 나도 잘 몰라요. 모두 다 비슷하게 생겼어요. 그리고 거의 밖에 돌아다니질 않아요. 아니면 단체로 다니죠. 가게로 소금 또는 설탕을 사러가고 다시 돌아가죠. 아무하고도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관공서에서 알아보았다.

오브라조바 군의 군수 레흐 즈고다: “관내에 북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아마 폴-조친선협회의 어떤 교환프로르램으로 있는 걸 겁니다.”

- 교환? 누구하고 교환한다는 겁니까?

= 저도 깊게는 잘 모릅니다. 이 건에 대해서 깊게 관여하지 않아서요.

산도미에즈 시 부시장 마렉 크비텍: “관할 군들 중 하나에 북한 시민들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몇명인지는 모릅니다. 한시간 후에 전화를 다시 주세요. 시 노동청에 확인해 보겠습니다.”

시노동청에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산도미에스 사회보험 조합에서 알아보았다. 그곳에는 합법적으로 고용된 외국인은 보험료가 일정하게 지불된 기록이 있어야 한다. 담당 간부가 직접 확인해 보았다. “기록에는 단지 산도미에스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베트남 사람만 있어요.”

키엘체에 있는 주정부의 사회복지과는 주에 일을 하고 있는 모든 외국인들에 대한 등록기록을 보관하고 있지만, 지난 4년동안 북한사람의 흔적은 없었다.

도벡회장 대포를 선물하다.

늦은 저녁이 되서야 술도 바닥이 나고 이제 헤어질 시간이다. 주인장은 마지막으로 사진들과 평양에서 들고온 선물을 보여주었다. 초현실적인 풍경화 등….

“우리는 이런 선물들이 많이 있어요. 선물로 드릴 수도 있어요”라고 의사는 자랑했다.

평양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면 도벡 회장은 또한 평양으로 선물도 가져간 것을 알 수 있었다. 한 장의 사진에는 그가 배가 나온 북한의 중요인사에게 기념품 가게에서 파는 전형적인 나무로 만든 칼과 작은 대포를 선물하는 것이 보인다.

나머지 사진들은 대부분 유사하다. 김일성 동상들, 학교와 유치원 내부, 청결한 병원, 그안에서 웃고있는 의사들.

말수가 적은 지역주민 대표와 의사는 옷을 챙겨입었다. 북한의 ‘실습생’은 더이상 예의 바르게 예전처럼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다알았는지 그리고 숙소로 돌아가도 되는지 묻지 않는다.

- 그리고 한가지만 더 말해주세요. 여기서 자유롭게 느낍니까?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헌법은 시민들에게 완전한 자유과 선택의 권리를 보장합니다.

- 그말은 선생님께서, 예를 들면, 우리와 같이 바르샤바로 가서 과수원 청소보다 더 나은 일자리를 찾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까?

= 헌법은 나에게 그런 가능성을 보장하지만, 당에서 과수농업 학습을 내 과업으로 정해주었기 때문에 나는 내 과업을 완수할 것입니다.

- 그럼 만일에 선생님이 폴란드에 아주 남기로 결정한다면 선생님의 가족이 고초를 겪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까?

= 사실이 아닙니다.

마당으로 나가서 차에 탔을 때 도벡 회장이 창문을 두드렸다. “아직 선물이 있습니다.”

북한 노동자가 사과가 가득한 상자를 들고 왔다.

체코의 강제수용소 분원

2004년 체코의 주간지 < 레스펙트 > 는 제브락이라는 곳에서 의류공장에서 일하는 50명의 북한 여성들의 작업조건에 대한 기사를 내보냈다.

클레차노프에서와 마찬가지로 북한 여성들은 월급을 받지 못했다. 회사가 돈을 체코에 있는 북한대사관의 계좌로 송금했다.

북한여성들은 한 장소에 모두 같이 있었고 호텔-숙소-호텔의 단순한 경로로만 2명의 당기관원 감시하에 이동했다.

체코 경찰은 사건 수사에 착수했다. 체코 정부는 이들에게 망명의 자격까지 부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고려한다고 약속했다. 시끄러운 사건은 아무 결론없이 끝이 났다. 북한 여성들은 여전히 제브락에서 속옷을 만들고 있다.

마르친 코발스키, 피오트르 그우호프스키 기자>

광고

관련정보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